일본생활바낭

사나운 꿈을 꾸면서 깨어났습니다.

귀국해서 집에 가서 엄마를 만나고 다시 돌아오려는데 배를 놓치는 꿈이었죠...


어쨌든 일은 일, 드디어 예약접수 전화를 받기 시작하는 날입니다.

전 일본어를 어느 정도 대화는 할 수 있어도 여기 사람들 억양이나 발음을 다 알아듣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종종 되묻곤 하죠. 

불편해서 그런지 몇몇 사람을 빼면 제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화를 받으려니 영 걱정이 됐습니다.

전화는 더더욱 잘 안 들리기 마련이고 손님들은 자꾸 되물으면 짜증이 날 테지요...


잠깐 신기한 게, 일본 사람들은 어어어엄청 예의바른 것 같습니다.

몇번이고 대화 도중에 감사합니다, 신세지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천만에요, 당치도 않습니다 등등의 말이 들어가고 그러면서 몇 번이고 고개를 꾸벅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은 이쪽에 어울리는 것 같단 생각이 다 들곤 합니다. 뭐 조금 오버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쓸데없는 오해의 여지같은 건 확실히 줄어들겠다 싶긴 해요. 

물론 그런 예의바른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서... 

오늘 받은 전화도 그랬습니다.

꽤 연세가 있는 분이 빠르게 사투리가 섞인 말로 잔뜩 뭔가를 물어오는데,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는 겁니다. 게다가 하필이면 까다로운 요금표 질문...

어물어물하면서 예, 예.. 하고 있자니 '너 뭐하는 거야, 제대로 하고 있는 거냐'라는 요지의 호통이 날아왔습니다.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죄송합니다, 요금은 얼마얼마입니다 했더니 끊으시더군요.


잠시간 정신이 나갔다가 사무실 바깥 구석에서 소리죽여 울었습니다.

별것 아닌데 왠지 눈물이 나더군요.

서럽고, 슬프고. 

왜인지 그냥 눈물이 줄줄 났습니다. 

목놓아 울고 싶었지만 꾹꾹 참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좋은 분들입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사적인 사정은 도무지 털어놓을 수가 없죠.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저녁에 전화를 했더니, 역시나 어머니는 '참아','다음부턴 그런 데서 울지 말고 프로답게 일해'하고 일침을 가하십니다.

우리 어머니가 이렇습니다. 항상 제 응석을 받아주지 않는 엄격한 사람이죠.

어머니가 옳다는 건 알지만... 가끔은 위로해줘도 좋잖아, 세상에 딱 한 사람 엄마쯤은 날 달래줘도 좋잖아.. 하고 섭섭한 마음이 드네요.


뭐 그랬단 이야기였습니다.

다행히 상사분이 무척 현명하고 좋은 분이라, 어떤 실패도 저질러보라, 책임은 내가 질테니, 하고 말해주시는 분이어서 퍽 다행이었습니다. 


내일은 내일대로, 또 힘내야겠죠.


    •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뜰테니까요 : D
    • 이렇게 올리시는 글 모아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마나 적응 잘하고 계신지 그 발전상을 한번 비교해보세요. *_*

      저도 개인적 취향으론 작은 일에 사과하고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의미없는 인사를 하고 그러는 거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에서도 예의바르다는 말 참 많이 들어요.
      근데 좀 다른 맥락이지만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교수가 일본인들은 왜 작은 일은 책임지고 사과하지만 큰 일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가 (무책임의 소용돌이 이런 표현을 썼던 것 같아요)를 학문적으로 분석했는데 저는 그게 참 흥미로웠어요.
    • 그나마 상사분이 좋은 분이시라 안심이에요.



      에아님 어머님은 사랑을 살갑게 표현하시는 방법을 잘 모르셔서 그런게 아닐까요? 어머님은 아마도 그게 본인의 최선이라 생각하실거예요.



      아무튼 차츰 성장하고 계십니다요! 끼니 거르지 마세욤 ;ㅁ;
    • 異人// 노래 가사가 생각나는군요. 내일은 해가 뜬~다~♪
      loving_rabbit// 제가 보기엔 책임을 지고 사과한다기보다, 책임 회피를 위해 지금 사과한다는 쪽에 가까워 보여요. 오늘 이야기를 들었는데 왜 일본 버스는 천천히 달리는가-> 버스가 질주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버스회사, 버스기사 등등이 줄줄이 책임을 지게 되니까... 라는 이야기였어요. 더 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작은 일부터 굽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뭐 정치 쪽은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 글루건// 상사님은 정말 대단한 분 같아요. 정말이지 연륜이란 게 느껴지는 분이시더라고요. 많이 불안했는데 그분이 계시니 좀 안심이 돼요.
      어머니는 야속해요 ㅠㅠ
      에고 끼니 때우기가 힘들어요. ㅠㅠ 장보러 한번 나가려면 다른 사람이 나갈 때 같이 붙어서 나가야하고;; 게다가 제가 한 번에 살 수 있는 물품도 한정되어 있고... 돈은 돈대로 없고 보존해둘 데도 없어서 오래 가는 것만 사야 하고 헉헉... 이건 이것대로 큰일이네요; 오늘도 식량이 없어 쩔쩔매다 다른 분이 나가실 때 빌붙어 갔어요. 제일 싼걸로만 고르고 골라 식재료를 샀네요(카레라든지... -_-;;) ㅠㅠ 김치찌개 먹고싶어요 흑흑
    • 전화상담은 일본에서 꽤 까다로운 지라, 트래이닝 거치고 하기도 합니다. 목소리톤도 조절시키고 그러더라고요.
      원래 상담직이시라면 모르겠으나 어렵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이럴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도움도 한번 청해보시고요.
    • 일본 가셔서 좀 사시다 보면 일본어 많이 느시겠네요! 멋있어요!! 일본생활기 흥미진진..
    • 호호아저씨// 뭐 일본인 직원들도 전화는 힘들어한다고는 해요.
      정말이지 말이 막 꼬이고(경어와 보통 일본어와 한국어가 막 섞여서 혀가 배배꼬이더군요;;) 어물어물하고 자꾸 예? 예? 를 반복하고;
      조언은 이것저것 들었고 뭐든지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이 방침인 듯해요. 다행히 그리 책임을 캐묻거나 하시진 않는 것 같아서 그냥 열심히 해보는 수밖에요.
      being// 사실 좀 건방지지만(!) 일본어는 나름 좀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자만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네요.... OTL
    • 전화업무는 국가막론 자국인에게도 어렵습니다.
      일본의 경우 일부러 신입을 굴리는 용도로 더 쓰기도하고요.
    • 우셨다니... 목놓아 울 곳이 있으면 좋겠네요. 그런 곳이 한군데는 필요하더라구요. 저야 여기서 댓글로 토닥토닥해 드리는 것 밖에... 정말 잘하고 계셔요.
    • 충분히 잘 하고 계신데요. 앞으론 더 잘 하실 수 있을 겁니다.
    • Johndoe// 흐암 여긴 사람 손이 부족한 곳이라서요.. 게다가 곧 성수기인지라 어서 실전에 투입되지 않으면 안된답니다. ;_;
      일본의 경어는 특히나 어렵네요. 혀가 막 꼬여요. ㅠㅠ
      스위트블랙// 제 방에서도 목놓아 울긴 어렵네요 혹시 들릴까봐.. 게다가 한번 울면 계속 침울해지니까 될 수 있는대로 울지 않으려 애쓰고 있어요.
      kona//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김전일// ㅇ_ㅇ...? 언젠가 김전일님을 위한 도시락 후기를 올려보도록 할게요. 아 링크는 어디다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 댓글 주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전 이만 자러ㅠㅠ 졸리네요 흐아암 다들 좋은 밤 되세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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