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권] 강아지 맘마, 하루키의 여행법
16. 강아지맘마
요리책을, 그것도 강아지 자연식 요리책을 100권 책 권수 채운답시고 올리는 것이 좀 이상하지만, 권수를 채워야 하니! 6월이 반을 지나가는데 이제 겨우 16권째! 실제 읽은 책도 25권이 안 됩니다. 연말까지 100권 채우려면 3일에 한 권씩은 빼야 할 태세. 하긴 비장의 무기인 만화 감상문이 있다 음하하하
이 책은 자주 가는 강아지 게시판에 꾸준히 강아지 생식 포스팅을 올리곤 하시는 분들을 보며, 특히 동물병원에서 수억 쓰고도 해결을 못 한 강아지 난치병을 생식으로 케어하고 계시는 분들을 보다 '우리집 강아지도 생식시켜봐?' 하는 생각을 했을 때 샀던 책입니다. 사고 보니 생식이 아닌 자연식(생식, 화식 섞어서 먹이는.)책이어서 생식 하시는 분들에게 '화식은 생식에 미치지 못한다.'며 핀잔을 들었습니다만.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1) 자연식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
우선, 자연식의 장점이 나옵니다. 저에게는 당연한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자연식을 할 시간도 돈도 강아지 영양에 대한 지식도 결정적으로 부지런함도 모자라니, 자연식/생식이 좋은 것을 알아도 못할 뿐이었죠. 사실 생식 좀 해 보면 압니다. 사료가 제일 싸고, 편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명은 가격과 편리함으로 승부합니다.
그다음 소개 되는 '우리 집 개, 밥 얼마나 줘야하지?'에 대한 해결책, 강아지 체중과 활동량, 기타 상황을 고려, 매일 섭취할 적절한 칼로리가 제시회더 있습니다. 하지만 칼로리 다이어트를 해 본 입장에서 장담하는데, 칼로리 계산은 자주 할 만한 짓이 못됩니다. 그게 강아지 밥이면 더욱 그렇고요. 자연식 초반에 칼로리 계산 열심히 하며 하루에 이 정도 주면 되겠다, 적정한 '분량'에 대한 감을 잡은 후에는 분량에 대한 감으로 주는게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혹은 개의 응가를 보고 판단을 해도 됩니다. 응가가 무르면 밥이 많은 거고, 응가가 딱딱하면 밥이 모자란 것이고. 혹은 살이 찌면 밥을 줄이고, 좀 말랐다 싶으면 더 주면 되고.
다음에는 사료에서 자연식으로 전환하는 한 달간의 식단이 나오는데, 보면서 자연식 바로 주면 안 먹는 애들이 진짜 있나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료 먹던 애들을 자연식 주면 안 먹는다는 이야기도 있고, 반대로 자연식 먹기 시작하면 사료 안 먹는다는 소리도 있더군요. 하지만 식욕이 왕성하여 아무거나 거나 잘 먹는 제 똥강아지는 난생처음 먹는 생고기도 잘 받아먹고, 거나한 자연식을 주고 난 다음날 사료만 줘도 뺘샥뺘샥 잘 먹어서 뭐.
2) 강아지 자연식 레시피
이 책은 보통 일주일~이주일 정도 분량을 미리 만들어, 하루치 분량씩 나누어 냉동해 놓고, 매일 하나씩 꺼내어 해동해주는 형태로 급여하는 강아지 생식과는 달리, 매일 강아지 음식을 새롭게 요리해주는 자연식을 위한 레시피를 담고 있습니다. 참 손이 많이 가는 형태지요. 사람 먹는 음식도 매일 요리해 먹기 힘든데.
'매일매일 강아지 맘마' 파트는 치킨, 돼지고기, 소고기, 오리고기, 생선, 채소를 주 종목으로 하는 각각의 레시피가, '특별한 날 강아지 맘마'에는, 개 고양이 안 키우는 사람들이 보면 기함을 할 법한, 강아지 생일 케이크나 강아지 출산 기념 미역국, 강아지 여름 보양식 레시피가 소개됩니다. 전반적으로 럭셔리합니다. 예컨데 다음과 같습니다. '닭가슴살 스프링롤' '시금치 달걀 그라탕' '브로콜리 마파두부' '로즈메리 오리볶음' '오리 오코노미야키'.책을 흘끗 보신 어머니는 '그냥 사람 요리책이네. 뭐 이래 고급이냐.'며 혀를 차시더군요.
명색이 요리책이니 좀 번듯한 레시피가 필요하기도 했겠지만, 이 책의 저자가 일본 동물학교에서 동물복지학을 전공하고 펫 영양관리사 자격증을 딴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반려동물에게 호사스러운 대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잖아요. 일본 갑부집의 누군가는 정말 매일 고급 음식으로 자기집 강아지를 먹일 수도 있지요. 하여튼 결론을 말씀드리면, 이 책의 레시피대로 만들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레시피를 보면서 조리법에 대한 다양한 힌트를 얻은 것은 좋았고, 결정적으로 큰 깨달음은 얻었습니다. '개가 못 먹는 음식 제하고 육류:탄수화물:채소 비율 잘 맞추면 (6:2:2를 추천하더군요. 저는 하다 보면 7:0:3이 되기도.)사람 먹는 음식에서 간만 안 하고 조리하면 바로 강아지 자연식이군.'
너무 본격 요리라 '개밥에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어 좀 뜨악했던 레시피와 달리, 각 요리법에 쓰인 재료에 딸린 '펫 영양사's 영양정보'는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개들을 위한 영양지식이 거기에 있더군요. 특히 책 앞부분에 소개된 탄수화물, 고기, 채소 쪽의 개별 재료와, 그에 대한 설명이 나열 된 표는 '개한테 줘도 되는 야채가 참으로 많군.', '소면이나 마카로니,스파게티같은 것도 양만 잘 조절하면 줘도 무방하겠군.' 하는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보통 국수를 먹고 있자면 턱 아래 딱 붙어 '한입만 달라'며 눈망울 글썽거리는 똥강아지가 불쌍해 소면 한 가락 쓱건네면서도 못 먹일 음식 먹였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곤 했는데, 양만 잘 조절한다면 구지 그럴 필요까진 없겠다 싶더군요. 호방한 남성 견주가 전한, 기르는 큰 개를 끌고 홀로 산행을 하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중에 텐트 쳐놓고 석쇠에 스테이크를 구워 개 한점 본인 한점 나눠 먹는 기분이 얼마나 기가 막힌 지 모를 거라던 에피소드도 그렇고, 원래 개라는 애들은 사람 먹는 거 얻어먹다 대초원을 버리고 사람과 같이 살게끔 진화까지 해버린 늑대들이니, 사람 먹는 음식 같이 먹는 것이 오히려 이 녀석들 본성에 맞을지도 모르지요. 요새 사람들이 먹는 음식(빵, 과자, 인스턴트 음식 등등.) 대다수가 개에게 못 먹일 음식들이라 그렇지. 사실 사람이 먹어서 좋은 음식도 아니지만.
이 책을 읽은 이후 변한 것. 여전히 사료 먹입니다. 하지만 제가 먹기 위해 닭가슴살 샐러드나 각종 요리를 할 때, 기왕 사 놓은 고기와 야채를 미리 빼놓았다가 현미등과 섞어 강아지 맘마를 만들어 주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 내킬때만요. 자기 줄 요리를 하는 것을 알면 제 발밑에서 눈에 별을 박고 좋아서 어찌할 줄 모르는 강아지를 보는 흐뭇함은 덤입니다. 그리고 채소 잘 안 먹던 저희 집 강아지는 이제 파프리카나 버섯, 오이, 다시마 같은 것도 잘 먹게 되었고요. 어차피 소화는 잘 안 될 테지만 (개는 야채 소화 잘 못 시킵니다. 퓨레 수준으로 만들어주지 않는 한.) 몸에 탈만 안 일으키면야 살도 안 찌는 간식이겠다, 별 상관 없지 않을까 싶어요.
언젠가 제가 정말 정말 바지런해져서 청정한 자연식으로 매끼를 정성스럽게 차려 먹게 된다면, 제가 먹을 요리의 재료를 조금씩 덜어 강아지 자연식도 매일 만들어줄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지요. (과연 올까-_-?)
17. 하루키의 여행법
도서관 갔다가 집어온 책입니다. 듀게의 하루키 수필 추천글을 얼핏만 읽었던지, 어디선가 하루키 산문 중 여행기가 재미있었다 한 것 까지는 기억 나는데 <먼 북소리>나 <우천염천>등 정확한 책 제목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아, 그냥 하루키와 여행 두 단어가 들어간 책을 집어온 듯 합니다. 이렇게 보면 참 잘 지은 책 제목입니다 그려. 제목대로, 하루키가 여러 잡지에 기고한 여행기를 묶은 책입니다. 저는 하루키가 어떤 글을 쓰는지 거의 모르는 독자입니다. 또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고, 여행기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어, 좋은 여행기란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독자지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했습니다. '하루키의 글은 이런 건가?'. '여행기를 이렇게 쓰는 건가?'
다 읽고 난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작가의 말'인 것 같습니다.
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그렇게 세밀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짤막하게 적어 놓을 뿐이다.
(...)
어쨌든 그때그때 눈앞의 모든 풍경에 나 자신을 몰입시키려 한다. 모든 것이 피부에 스며들게 한다.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다. 내 경험으로 보건데 그러게 하는 쪽이 나중에 글을 쓸 때도 훨씬 도움이 된다. 반대로 말한다면, 일일이 사진을 보지 않으면 모습이나 형태가 생각나지 않는 경우에는, 살아 있는 글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취재 여행을 가더라도 작가는 겉으로 보기엔 편하다. 현장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만 잠자코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다. 사진을 맡은 사람만이 바쁘게 뛰어 돌아다닌다. 그 대신 작가는 여행지에서 돌아오고 나서부터가 힘이 든다. 사진은 현상을 하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작가는 그때부터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서 메보한 단어에 의지해 머릿속에 여러 가지 현장을 재현시켜 가는 것이다.
대개 귀국해서 한 달이나 두 달쯤 지나고 나서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경험적으로 그 정도 간격을 두는 것이 결과가 좋은 것 같다. 그 동안 가라앉아야 할 것은 가라앉고, 떠올라야 할 것은 떠오른다. 그리고 떠오른 기억만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굵은 라인이 형성된다. 잊어버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다만 그 이상 오래 내버려 두면 잊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아 문제다. 모든 일에는 어디까지나 '적당한 시기'라는 것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여행기를 쓰는 것은 나에게 매우 귀중한 글쓰기 수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여행기에서 원래 해야 할 일은 소설의 원래 기능과 거의 마찬가지다. 대개의 사람들은 여행을 한다. 예를 들면 대개의 사람들이 연애를 하는 것과 같은 문맥으로. 하지만 그런 문제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이 있었단다, 이런 곳에도 갔었단다, 이런 생각을 했단다 하고 누군가에게 얘기해도, 자신이 정말 그곳에서 느낀 것을 그 감정의 차이 같은 것을 생생하게 상대방에게 전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에게, "아아, 여행이라는 건 참으로 즐거운 것이구나.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 "연애란 그렇게 멋진 일이구나. 나도 멋진 연애를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그보다 더욱 어렵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어떻게든 하게 만드는 것이 프로의 글이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거기에는 기술도 필요하고, 고유의 문체도 필요하며, 열의나 애정이나 감동도 물론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기를 쓰는 것은 소설가인 나에게도 아주 좋은 공부가 되었다. 처음엔 좋아서 썼지만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다.
(...)
그러나 어쨌든 여행을 하는 행위가 그 본질상 여행자의 의식의 변혁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여행을 묘사하는 작업 역시 그 움직임을 반영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 본질은 어느 시대에나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여행기라는 것이 지닌 본래적인 의미이기 때문이다.
- <하루키의 여행법> pp. 6-9
그러니까, 제가 가장 흥미를 느꼈던 부분은 '하루키가 어디를 여행했나.'가 아니라, '하루키는 여행한 경험을 어떻게 글로 쓰는가'였던 것 같습니다. 하긴, 저는 창작가들의 머릿속이 언제나 궁금합니다. 더구나 저야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아무리 기가 막힌 여행기를 읽어도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잘 안 들 타입이거든요. 아니다 다를까, 책을 읽고 난 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여행지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읽기는 꽤 재미있게 읽었어요. 영화를 직접 보는 것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남긴 감상문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하는 저이니, 여행도 직접 하는 것보다 잘 쓴 여행기를 읽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도 종종 여행기를 읽을 것 같아요.
첫 글은 하루키의 말을 빌리면 '문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일종의 성지'와 같은 이스트햄프턴 여행기였습니다. 유명인들이 끼리끼리 모여 사는 곳답게, 유명한 작가며 배우들 이름이 줄줄 나오고 그에 걸맞는 고급스러운 장소며 분위기에 대한 묘사가 이어져 '우와~' 하며 읽다가, 뜬금없이 등장한 무명작가 올그렌씨의 씁쓸한 사연에 잠시 멈칫했습니다. 뒤의 글에서도 종종 그렇고, 멀쩡하게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씁쓸하거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담하게 툭 던지고 쓱 빠지는데, 이게 이 분 글 특징 중 하나인가 했습니다. 그 담담한 태도 덕에 크게 불편할 만한 이야기도 덤덤히 듣고 지나갈 수 있어 마음이 좀 편하기도 하고, 이래서는 안 되는 이야기 아닌가 싶은 마음에 불편하기도 하고, 좀 애매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계속 읽어 나가는 데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유유하게 잘 가다가 뜬금없이 덜컹.
하여튼 첫 글이 저런 럭셔리한 장소로 시작하길래 다른 여행지들도 화려한 곳이려나 했는데, 바로 이어지는 곳이 벌레 습격사건의 무인도, 그다음이 짠차카가 울려 퍼지는 멕시코 뭐 그렇더군요. 계속 읽다 보니 결혼 후 40대가 넘고 나서는 호텔에 투숙하는 '어른'의 여행을 즐기게 되었지만, 원래는 배낭 하나 메고 가난하게 쏘다니는 것을 즐기셨다길래, 그래서였나 싶었습니다. 여행광이시더군요. 여행기 읽는 것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는, 그래서 결국 유명 작가가 되어 여행한 후 쓴 글로 돈을 받는. 멋진 인생입니다.
멕시코 대여행은 글이 길기도 하고, 평소라면 읽다 때려치울 법한 중간 이동 여정이나 풍광 묘사가 많아서, 올해 안에 100권 읽어야 한다며 꾸역꾸역 책을 읽어가는 와중이 아니었다면 중간에 읽기를 그만뒀을 겁니다. 사실 이 책 전체적으로 종종 그랬습니다. 글이 재미없다는 쪽이기보다, 제 쪽 문제가 컸습니다. 원래 짧던 제 주의력 유지기간이 더 짧아졌어요. 그것도 훨씬. 진짜 문제다 싶을 만큼. 읽기 좋은 잘 쓴 글일지라도, 좀 길어지면 진득하게 붙어 읽어내는 것이 어려웠어요. 글에서 자꾸 달아나는 주의를 글로 다시 잡아 묶기 위해 많은 인지적 노력이 필요했죠. 좀 자괴감도 들었어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책을 읽어내는 것은 훌륭한 주의력 훈련이 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원래 꾸준히 책을 읽고 억지로라도 글을 쓰기로 한 것은 우울증 재발 방지 방책 중 하나로 택한 것인데, 책을 읽으면 덩달아 주의력 훈련도 하게 되니 이래저래 저의 뇌에는 좋은 일이에요.
정신이 딴 곳으로 흘러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내용도 많았어요. 특히 유머러스한 장면들. 예를 들어 사진작가 에이조가 돌 맞아 죽을 위험을 감수하며 정면에서 주민 사진을 찍다 결국 예전 경력을 살려 파파라치샷으로 일을 처리하게 되는 과정을 묘사하며, 하루키가 '저러다가 정말 맞아 죽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사진작가 노릇 하기도 힘들겠구나 싶었다. 난 소설가가 되길 잘했다. 문학 비평가도 (아직까지는) 내게 진짜 돌멩이까지 던지지는 않았다.'라는 장면이라던가. 특히 이 문장은 '잔인한 오후'님게서 미리 소개해주셨던 터라, 에이조의 수난사를 낄낄대며 읽다가 이 문장이 딱 나왔을 때 '아하 이거구나' 싶어 즐거웠지요. 책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한 장면들에서는 어지간하면 다 좋았습니다. 읽다 보면 하루키는 좋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막 들어요. 스트레스에도 강하고, 성실하고 현실적이면서도 사회성 좋고 종종 유머 넘치는.
우동 맛여행은 깨알 같은 삽화가 가장 좋았어요. 그다음 좋았던 부분은 '<하이패션>에서 꼼 데 갸르송 쇼에 대한 기사를 써 달라고 의뢰해 왔지만 나는 그런 건 잘 모르고 우동에 관한 글이라면 쓸 수도 있다고 가볍게 농담조로 말하다 보니 ,정말 우동에 관한 취재를 하게 되어 버린' 이후, '마츠오씨도 지금은 <하이패션>에 근무하면서 꼼 데가 어떻다느니, 잇세이가 어떻다느니 하면서 잘난 척하며 떠들어대고 있지만 고교 시절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우동집에 들러 콧물을 훌쩍거리며 우동을 먹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거나, 지역 우동 권위자에게 취재 차 찾아갔더니 '하이패션에서 대체 무슨 (우동) 취재입니까?'하며 의아해 한다거나 하는 부분들. 음식에 대한 묘사가 많은 편이 아니건만, 뭔가 음식에 대해 잘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도 특이했습니다. 그리고 매끄럽게 글을 마무리한 후, 뜬금없이 '그리고 나카무라 우동은 정말 굉장했다!'고 덧붙인 것도 좋았습니다. 덕분에 다시 앞을 들춰보았어요. 손님이 면을 직접 삶아 먹던, 와일드한 그곳이더군요.
<태엽감는 새>의 배경으로 떠난 몽골 여행기인 '노몬한의 철의 묘지'는, 처음에는 잘 안 읽혀서 미뤄두었다가, 다 읽어가는 책인데 기왕이면 완독하자는 생각에 나중에야 집중해서 읽게 된 글인데, 그래서인지 저는 이 글이 가장 좋았습니다. 거의 20년 전 당시 중국 사정을 전하며 유머 섞어 '대단한 중국'을 묘사하는 부분을 읽자니, 얼토당토않은 사건이 터진 중국 기사 밑에 등장하곤 하는 '역시 대륙!!'식 리플의 하루키버전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몽고쪽 여행기는 상당히 빠져서 읽었습니다. 일본이 벌인 전쟁이라는, 한국인인 저에게는 '어떤 태도로 이야기하나 보자.'는 감시조로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주제를 다루는지라 각성이 절로 된 탓도 있고, '일본이라는 밀폐된 조직 속에서 이름도 없이 소모품으로 아주 운 나쁘게 비합리적으로 죽어간' 그때 그들과, 자신들도 역시 그리 될지 모른다는 작가 본인의 쓸쓸한 고민이 담긴 글이다보니, 저도 덩달아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전쟁터를 돌아보며 오는 길에 만난, 늑대만 만나면 죽이는 몽고인들에게 죽은 작은 몸집의 암컷 늑대 이야기는 너무 리얼하게 그려져서 가슴이 막 쓰렸어요. 그 후 피곤한 몸을 누이며 잠을 청하던 하루키가 자신의 내면에서 터져나온 깊은 공포에 떨며 일어나 밤을 새우는 장면이나, 일본에 돌아오니 여행을 떠난 2주 사이 새로운 수상이 임명되었던 수상이 바로 갈리고, 김일성이 죽는 등 (대체 언제적 글이야!) 세상은 멀쩡히 진행되고 있었다는 걸 묘사하는 글의 흐름도 좋았고요.
그리고 마지막의 '아무리 멀리까지 갔더라도, 아니 멀리 가면 갈수록 우리가 거기서 발견하는 것은 단지 우리 자신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는 부분을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난 여행이 싫어. 그 고생하며 돈 들여 거기까지 갔건만 결국 허할 뿐인 내 모습을 봐야 하잖아.' 여행지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나의 모습이라는 게 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여행을 많이 안 해봐서, 여행의 참맛을 몰라서 그렇겠거니 싶습니다. 여행 중독에 걸릴 만큼 사람들이 여행에 빠지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겠지요.
아메리카 대륙 횡단기는,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너무 소소하게 이어져서 의외였다가, 미 대륙을 횡단하는 건 그만큼 단조로운 여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디서 본 러시아 횡단 철도 여행도 지루하고 또 지루했다던데, 대륙 횡단기는 다 그 모양인가 싶더군요. 라스베가스에서 조금 딴 돈으로 바로 중고재즈 LP를 사는 하루키 모습에는 정말 성실한 사람이라는 감탄이 절로.
고베 도보여행은 집중이 잘 안 되었지만, 이 여행기 이후 <언더그라운드> 집필을 시작한 모양인데, 그래서 그런가 일상의 밑에 숨어있는 폭력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실 이 여행기에서 제일 인상적인 부분은, 홀로 식사를 하면서 헤밍웨이의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를 읽는 부분이었어요. 여행기 전체적으로도, 여행 중간에 들고 간 책을 읽는 부분들에서는 다 시선이 멈추더군요. 하루키는 멀쩡한 일상에 있다가도 쉽사리 책 속 세계에 푹 빠질 수 있는 사람인가 봐요. 책과 소설을 잘 읽어내시는 분들도 비슷할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일상에서 책 속 세계로 이동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현실에 아주 가까운 실용서적이나 좀 들어가봐도 논픽션 정도에서 놀곤 하죠. 그래서 세계의 이동을 순식간에 이뤄내는 분들을 보면 좀 부럽습니다. 세상의 날 것에 가까운 끔찍함에 스쳐갈 때, 거기에 짓눌리지 않을 수 있는 생생한 사람일수록 잘해 내는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주 어릴 때의 저도 그랬거든요. 그래서 하루키도 부러웠어요. 여행을 다니다가도 쉽게 책 속에 빠져들 수 있는 그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