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으로 소설가 읽기.

0.

소설가들의 산문집은 잘 안 읽는 편입니다. 왠지 소설가는 소설만 잘 쓸 것 같다는 선입견 떔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은 몇 개의 소설가의 산문집이라면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 김영하의 포스트잇 정도.


요 세 작품을 언급한 이유는 산문집을 읽기전에는 김훈, 김연수의 소설을 잘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김훈의 소설의 문체를 이해하지 못했고 김연수의 소설들의 이면을 잘 보지 못했더랬죠.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읽고나서는 아, 이 사람의 소설을 읽을 때는 이야기 뒤에 이야기를 또 읽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김영하는 제가 특히 좋아하는 작가네요. 하지만 최근까지 산문집을 읽어본적은 없었습니다. 소설은 장단편 다 읽었지만요. 그러다가 우연히 김영하의 산문집 포스트잇을 읽게 되었는데, 참 재밌어요.


새파랗게 날세워서 비꼬는 것들. 투덜거림이 잘 버무려져 있으면서도 짐짓 위악으로 감싼 유약함이 보여요. 대학생 시절 잘난 선배에게 느끼는 열등감도 솔직하게 적어놓고 가끔 콕콕 찌르는 말도 적습니다. 다음은 허영이라는 글의 일부입니다.




혼자하는 여행은 대체로 허영의 결과일 때가 많다. 자기애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그 졸렬한 결말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가끔 여행이라는 극적인 방식은 동원하게 된다. 그런 여행자일수록 주변을 시끄럽게 하고 자신의 허무와 고독, 결단력을 강조하고 과장한다. 인도나 유럽 같은 곳에선 이마에 내천川 자를 새긴 채 여기저기를 떠도는 이런 유형의 여행자를 자주 만나게 된다.




저도 이런 허영의 결과를 자주 접해왔기 떄문에 읽으면서 그냥 쿡쿡 웃었습니다. 물론 작가자신도 먼저 해봤기 때문에 알 수 있을 거에요.







1.

요즘 들어 스마트폰 만지다보니 문득 이런 글이 계속 기억에 맴돌더군요. 역시, 김영하의 산문집 포스트잇에 실린 글입니다.


(....)

1995년 무렵. 한 친구가 그랬다. "인터넷에서 뭘 찾을 수 있느냐고 묻지 마라. 인터넷에는 모든게 있다." 그 자리에 앉아있던 우리 모두는 입을 딱 벌렸다. 그 친구의 일장연설 이후로 우리는 하나둘 인터넷으로 뛰어들었다. 인터넷은 폭발할 것처럼 팽창했다. 무한하다는 정보의 바다에서 우리는 허우적거렸다. 몇 년 만에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황금의 나라 지팡고는 없다. 단지 황금색 장식을 좋아하는 나라가 있을 뿐이다. 모든게 있다는 인터넷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다. '모든게 있다.', '그것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있다'는 풍문으로만 가득한 인터넷은 신新 동방견문록이다. 떠버리 마르코 폴로다.


(....)


인터넷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을 가능하게 한다, 고 누군가는 말한다. 나는 의심한다. 인터넷 무료전화? 화상회의? 홈쇼핑? 이메일? 파일전송? 이런걸 말하는 거라면 동의할 수 없다. 그런거라면 단지 속도를 빨리하고 비용을 줄이는 것뿐. 과거에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던 것들이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인터넷 출현 수십년을 맞이하고도 우리의 삶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술 마시고 노래하고 신문을 보고 목욕을 하고 회의를 한다. 휴가철이면 여행을 떠나고 주말이면 맛있는 집을 찾아 외식을 한다. 대사관 앞에서 피케팅을 하고 악덕 기업주에 맞서기 위해 머리띠 두르고 파업을 한다. 물론 맛있는 집은 인터넷에서 찾고 여행지 정도도 인터넷에서 찾고 파업 진행과정도 인터넷에 올린다. 그러나 인터넷이 그 행위 자체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인터넷이 없다고 여행을 안 갈것도 아니고 미식의 기쁨을 포기할 리도 없고 하려던 파업을 멈출 수도 없다. 어쩌면 인터넷은 거대한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2.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도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라는 챕터가 있죠.



전기, 수도, 가스와 더불어 가전제품의 등장으로 가사 노동 부담이 줄어들면서 여성들의 삶이 완전히 변모했고, 그로 인해 남성들의 삶도 크게 달라졌다. 가전제품은 훨씬 많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 할 수 있게 만들었다.

(....)

인터넷이 우리가 여가를 보내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웹서핑을 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들과 채팅을 하며, 스카이프로 대화를 나누고, 5000마일이나 떨어진 누군가와 전자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인터넷 덕분이다. 또 인터넷을 이용하여 보험, 휴가, 음식점에 관한 정보는 물론이고 채소나 샴푸가격까지 찾아보는 것도 무척 쉬워졌다. 

(....)

하지만 인터넷이 생산분야에서도 그렇게 혁명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일부 사람들의 경우에는 인터넷으로 인해 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나도 그중의 하나이다. 

(....)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인터넷이 생산성에 그다지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인터넷이 생산성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었으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솔로가 말한 바와 같이 "말만 떠들썩하고 정작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물론, 책에서 단순히 인터넷을 쓸모없는 기술로 치부하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기술은 흔히 개발되서 나서 수십년이 지나야 최대한으로 사용된다'고 서술합니다. 다만 현재로선 인터넷이 우리가 느끼는 것만큼 혁명적인 기술은 아니다라는 거죠.






3.

최근에 스마트폰에 대해서도 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저는 작가의 산문집이 좋아요. 작가를 이해하기도 좋고 힘뺀 문체도 편안해서요.
    • 그냥, 오빠가 돌아왔다, 에서 멈춰야 했다.
    • 푸른나무 / 재밌죠. 김연수의 방위시절 얘기를 산문집 아니면 어디서 접하겠어요.
      김전일 / 전 왠지 끝장을 봐야겠더라고요. 한번 낚였으니 끝까지 낚여보겠어 이런 심정
    • 이 글 보다보니 책 읽고 싶네요ㅠ.ㅠ 안 읽은지 너무 오래 됐다...포스트잇은 제 기억으론 거의 10년전에 나온 책인것 같은데, 맞나요? 저런 위악과 비꼼은 실제로 참 멋있어 보이기도 했죠. 머리 좋은 사람의 날카로운 세치 혀 같은 것들이 멋있어 보이는 데 (저에게는) 가장 일조한 작가기도 하고. ㅎㅎ 음...김영하의 여행자 시리즈로 나온 하이델베르크와 도쿄...중에서는 도쿄편이 더 나았던 것 같아요.

      김연수의 수필집이 최근에 시와 소설에 관해서 각각 한권씩 나왔던데 역시! 무슨 말을 하는건지! 정말 모르겠더라구요...김연수 난독증이라는 병을 새로 만들었습니다만, 저같은 분이 또 계실려나 모르겠어요. 인기가 워낙 좋아서.
    • 최근엔 김중혁 산문집 뭐라도 되겠지 이것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 개미/ 오래전에 나왔는데 제가 읽기는 최근에 읽었어요. 그래도 재밌더라고요. 있어보이는 냉소하기는 요즘에도 종종 보이는 것 같죠. 저도 사실은 아직도 저런게 멋있어요. 좀 더 세련되게 해야겠지만. 김연수는... 네.. 소설은 당췌 저도 잘 모르겠어요.
      봄눈/ 김중혁 웃음 코드는 약간 애매해서, 읽을까 말까 했는데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 김영하 산문을 좋아해요. 유머감각도 있고. 소설은 아직 잘 본게 없네요. 오빠가 돌아왔다 정도 가볍게 읽었고요.나머지는 무겁거나 지루한 느낌 좀..
    •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절판되어서 구하지도 못하겠다, 자전거 여행을 사봐? 하게끔 만드시는 글입니다 헤헤. 요새 본의아니게 작가들의 산문집을 연달아 (4권째?) 읽고 있어서 다른 책들은 어떤지 좀 궁금하네요.

      저는 원래 소설보다 산문을 훨씬 더 좋아하는데, 작가들은 글빨이 좋으니 더 좋은 산문을 쓰겠거니...이런 생각 정도로 소설가들의 산문집을 보는편이라.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9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1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3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7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4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2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9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8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4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