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교수님 얘기가 대세인가요. 그렇다면 저도.
사실 예전 게시판에 올렸던 기억이 있기는 한데
이제 옛 게시판은 들어가지지 않기 때문에 새로 올려봅니다.
학창시절 교수님 중에 아주 원로인 분이 한 분 계셨는데,
어쩌다 보니 조교의 따까리 비슷하게 일을 하는 통에 직간접적으로 사사 비슷하게 받았습니다.
나중에 제가 수강하던 물권법 교수님으로부터
"내가 학부생때 그 분한테 배웠어.." 하는 얘기 듣고 진심 멘붕. ㄱ-;;;
1916년 함경남도 문천(원산과 함흥 사이 어디즈음) 출생이시다 보니 벌어지는 일.;;;;;
그러니까 이 분은.
1916년에 함경남도에서 태어나서
가곡에 나오는 "살기 좋다던 원산 구경"을 하시고.
1920년대말에 6년제 경복중학을 다니고 옆집 하숙하는 누나는 이화 다니다 공산주의에 뛰어들고.
1933년에 책 사러 갔던 곳이, 지금의 충무로가 아직 혼마치도오리라고 불리던 시절이었고.
교토제국대학 37학번으로 들어갔더니 리승기 박사(비날론 발명한 그 양반 맞음)의 방계 후배가 되고.(....)
해방 후에 교수가 되어서 동아일보사(지금 일민미술관 건물)에 원고 전해주러 갔다가 딱 마주친 인간이
이병주 '남작'(이완용이 아들네미라서 남작 작위가 있었습니다.)이었는데 그 이후로 본 적이 없고.(.....)
컴퓨터로 육필 원고들을 정서, 정리하고 있는데 뭔가 타임머신-_-이랑 앉아서 대화하는 기분이랄까요.
(원고가 좀 들쭉날쭉. 인명이나 지명이 어떤 건 한자로 어떤 건 일본어로 어떤 건 한글로.. 쿨럭)
이런 분이 2004년까지 강의를 하셨으니 [......] 해프닝도 많았대죠.
엄밀히 말해 명예교수로 학문활동만 하고 계셨는데, 학교 안에 사정이 생겨서 학부강의 교수가 모자라
강사 외에도 교수님한테 나와달라고 한 거였더군요.
고학번되면 안 그렇습니다만 요즘 애들-_- 갓 고등학교 나와 박스출하 신품 여자애들은
강의실에 커피잔...까진 그렇다쳐도 모자쓰고 문자질에 시끄럽게 떠들기까지 하거든요.
강의 중에 모자 벗는 건 조금 오래된 예의 문제고 약간은 엄격한 면이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떠드는 거는 옛날 기준이든 요즘 기준이든 예의가 아니긴 아니겠죠.
그런데 교수님도 옛날 분이라 별로 예의를 안 차리셨다고 합니다. (저는 그 수업에 없었음.)
걔속 떠드니까 한 마디 일갈이. "이년들이! 조용히 안해!"
.... 하아.
그런데 이 애들이 조용해진 것도 잠시뿐.
10분도 안 되어 계속 조잘재잘조잘조잘재잘재잘짹짹짹짹 하니까.
이 교수님. 그만 출석부를 주우우우욱 찢고 그 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댑니다.
고학번 조교가 얼굴이 퍼래져서 따라 튀어나갔다고 하더군요.(..)
꼬박꼬박 '군'이라는 호칭을 붙이던 분이라 저 얘기 들은 건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나중에 술자리에서 물권법 교수님한테 위에 쓴 얘기를 하니까.
옛날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 어쩌겠느냐. 라는 얘기를 하시던데 말입니다.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글에서는 하숙집 여학생 누나를 회고하며
학문을 배우는 신여성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옛날 관념 ㅡ 지독한 남존여비, 게다가 양반집 ㅡ 을 떨쳐내는 건 그만큼 어려운 건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완고해진 건지는 잘 모르겠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