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생각난 옛일 하나

pc방 알바하던 시절 얘깁니다.

살짝 맛이 가서 카운터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는 pc가 몇 대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자리에 앉으면 돈을 내지 않아도 컴질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자리 앉는 손님은 따로 체크해서 돈은 다 받고 그랬죠..

근데 자주 오던 초딩 여자아이 하나가 그 트릭을 간파하고는, 제 눈을 피해 그 자리에서 몰래 컴질하다 도망가는 사례가 발생합니다.

처음엔 좀 뭐라고 그러다가, 사장도 알면서 내비두는 분위기길래 저도 그냥 냅두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장사가 그리 잘되던 pc방은 아니었던지라..

더이상 제재가 가해지지 않음을 파악한 그 아이는 이후 pc방을 지 놀이터처럼 드나들기 시작합니다.

키배중이던 제 옆에 붙어앉아 수다를 떤다거나 장난을 거는 일도 많아졌구요.

아마 5학년인가 6학년인가 했을텐데.. 키도 크고 예쁘장한 편이었죠.

전학 와서 친구가 없어서 심심하다거나, 집에 가도 아무도 없다거나,

학교에서 선생님이 애들에게 이상한 짓을 하다가 짤렸다거나,

근데 원조교제가 머에여? 라거나 ... 하는 대화를 주로 했습니다. .......

자기 생일인데 우리집에 놀러올래요 하길래 좀 어이없어진다거나,

전화기 가지고 장난치는 걸 뺏으려 했더니 다리 사이에 끼우고는 꺄악 변태야 거리는 걸 팔을 꺾어서 뺏는다거나 ....

뭐 그런 일들이 조금 있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이래저래 컨디션 안좋고 짜증 잔뜩 나있는 날이 있었는데,

4학년 여자아이들 여럿이서 지들끼리 '맞다니까-' '아니라니까-' 하며 싸우더니

제게 와서 묻습니다.

아저씨 저 언니 좋아하는 거 맞죠? 그죠?

...........뭐?

맞잖아요. 그러니까 맨날 공짜로 하고 가도 머라고 안하잖아요.


짜증이 있는대로 치솟아서 저는 하두리 캠질중이던 그 아이의 pc 전원을 거칠게 꺼버리고는

너 나가. 해버립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린 그 아이는 이후 두 번 다시 오지 않았어요.




그러고 3년쯤 지난 후던가..

빨간머리 펑크걸이 되어 담배를 피고 있는 그 아이와 길에서 마주칩니다.

멀리서 저를 알아보고는, 못볼 걸 봤단 듯이 침을 한 번 뱉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어요.





아 쫌 슬퍼지네. 아저씨가 미안..


    • 전 bebijang님이 아저씨인 게 더 충격. 이제껏 아가씨인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별 근거도 없군요.
      • 쿨럭;;; 음.. 제가 상처를 드렸나요 ㅠ
        • 헐. 저도 당연히 여성분인 줄 아셨어요. 아니 너무 의심치 않았는데. ... 제가 왜 그랬는지 저도 모르겠네요;
      • 심했죠.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 다시 5년 후... 질풍노도 사춘기를 거쳐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분위기 급변 청순미인이 된 그 아이와 마주치고
      '저기 그때 알바하던 오빠 맞죠?'
      '어... 넌 설마...'
      두근거리는 순간이 흐른 뒤 그 아이는
      못볼 걸 봤단 듯이 침을 한 번 뱉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어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님하 나한테 왜그래요ㅠ
    • 그 침에 가래가 섞였느냐 순수한 흰 침이었느냐에 따라 감정의 종류와 깊이가 나뉩니다.

      ...뻘플 죄송해요
      • 흰 침이었던 것 같습..!! 죄송합니다.
      • 사실은 그 반대일지도 응?;;
    • 그 4학년 애들의 오지랖...아 슬프다.어린 아이들이라 별 수 없다 싶기도 하고.
      씁쓸하네요.아저씨 미워.

    • 빨간머리앤 이야기인가요?
      샹크스가 잘못했네요...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그 아이는 원래 삐뚤어질 아이여서 님한테 그런게 대한것일까요? (왠지 대화랑 행동이 예사롭지 않아 보여요.)
      아니면 님한테 받은 충격으로 그렇게 된거는 아니겠죠?
      원조교제 물어본게 아저씨가 자기 좋아하는 줄 알고 물어본거가? 잔망스러운 계집애일듯.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세요. 어쩌갰어요. 이미 벌어진 일인데.
      • 환경이 좀 안좋았던 것 같더라구요.

        원조교제 얘기는 학교에서 듣고 와서 물어본건데..

        마침 거기 있던 강아지와 햄스터를 가리키며 얘네 둘이 같이 노는거야 라고 대답해줬었..
        • ㅋㅋㅋ 강아지와햄스터~~^^
    • 어쩐지 대부분의 질문이 알면서 물어본게 아닐까 하네요. 갑자기 전원을 꺼버리시다니, 아이가 순간적인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만.... ;;
      그나저나 참 안타깝네요. 가게의 비밀을 이용할 정도로 머리 좋은 아이가 그렇게 되어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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