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영화 은교 감상 (스포)
영화 은교를 봤어요. 소설을 읽지 못했는데, 박범신 작가의 다른 소설 '외등' 같은 걸 떠올리면 영화에서도 같은 작가의 비슷한 결이 느껴지고 소설 '은교'가 짐작됩니다. 적절한 어휘인지 알 수 없어 조심스럽지만 낭만적이에요. 보기 전에는 늙음과 젊음에 대한 영화일 거라 짐작했는데 보고나니 그러면서도 우선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영화의 첫 부분, 늙은 이적요가 은교의 무릎에 누워 빠진 오수에서, 젊은 자신과 은교를 꿈꾸는 장면을 보다가 내내 우문을 곱씹었습니다. 이적요가 늙었기 때문에 은교의 젊음을 사랑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이적요가 늙은 것과 무관하게 젊은 은교는 사랑인 걸까... 명확하게 구분되는 건 아닐 거에요. 그러나 생의 충동으로 가득한 젊음만큼, 늙은 육체에도 생생한 욕망이 있다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서지우처럼 이적요는 늙었으므로, 사람들이 추문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므로, 또한 성을 배제하지 않는 욕망이므로 타인에게 불편하게 다가오는 게 사실입니다.
영화에서 사람들이 지적한 약점은 제게도 보였지만 기본적으로 '은교'란 이야기가 재미있었어요. 이적요가 특별히 가련하지 않은 것처럼 서지우도 특별히 가련하지 않았어요. 별이 다 같은 별이라고, 사천개의 거울이 다 같은 거울이라고 생각하는 이 공대생이 이적요를 얼마나 완벽의 반열에 올려놓고 존경을 하든, 그 자신의 재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꿈을 꿔왔든 안타깝게도 그는 아둔한 인물이에요. 때문에 그는 이적요의 욕망을 이해하거나 이적요가 쓴 소설 '은교'가 어떤 의미인지 모릅니다. 이적요의 욕망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음이 늙지 않고 집요하게 생의 충동과 사랑을 원한다는 것은 좀 무섭지만 진실이겠죠. 그 자신도 은교도 이해하고 있는 어떤 것을, 서지우는 몰라요. 서지우가 지적하지 않아도 이적요는 늙었고 그런 자신을 알고 있어요. 저는 애초부터 이적요가 은교를 현실에서 탐할 수 있었다 해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이적요가 비겁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는 분명 자의식이 강하고 어떤 허위의식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가 가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액션을 취하지 않은 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그랬을 수도 있죠. 이적요는 대신에 오수에 빠져 젊은 자신과 은교를 환상하고, 그건 뚜렷하게 자신의 나이듦과 현실을 인식하는 거죠. 그리고 대신에 글을 씁니다. 자신의 글로 '은교'를 사랑했기 때문에, 반드시 현실에서 은교를 탐하는 액션이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게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실재는 어느 정도 의미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걸 이적요가 비겁해서라고 보기 보다는 저로서는 늙은 이적요에게 가능한 방식으로 은교를 사랑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저 추문이라고만 칭하는 서지우의 아둔함이 노엽고 다른 소설도 아닌 '은교'를 빼앗은 게 분노스러운 거죠. 게다가 현실에서 그는 실제로 은교를 탐하잖아요. 이적요의 말대로 젊은 게 상이 아니고 늙은 게 벌이 아닌데, 서지우는 영원히 젊을 것처럼, 젊음과 늙음 사이에 이승과 저승만큼의 거리가 있는 것처럼, 이적요의 욕망을, 사랑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로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거겠죠 아마. 이적요는 자신의 늙음도 알고 은교에 대한 사랑과 은교의 젊음도 아는데, 서지우는 이적요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은교'라는 소설을 빼앗은건 이적요 입장에서 보면 잔인한 건데 서지우가 몰라서 그랬던 걸 어쩌겠어요. 서지우는 남의 소설로 소설가가 된 것처럼 예술가가 아니고 그저 범인인데요. 이적요가 노인인 동시에 예술가라는 걸, 서지우가 모르는 걸 어쩌겠어요.
이적요가 정말로 서지우를 죽이려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서지우가 감히 이적요의 차를 맘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위험에서 벗어나 있었을텐데 그는 이적요의 괘씸함이 낳은 시험에 아무렇지 않게 걸려들던걸요. 글쎄, 몇 년을 그 집에서 이적요 아래에서 밥하고 시중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소설을 훔칠 때만큼이나 이적요의 것을 사용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건 서지우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는 둘의 관계가 예전 같을 때도 아니고요. 아차, 하고 달려나가던 이적요나 은교에게 자신이 서지우를 죽였다고 고백했던 것, 육필 원고를 불태우는 걸 보면 정말 서지우를 죽일 마음은 아니었을 거라고 봐요. 그냥 사고인데 진실은 모르니까, 이적요가 감당할 짐이 된 거죠.
마지막에 은교가 찾아와, 말로 아무리 해도 느끼지 못하는 게 있는데 사천개의 거울이 다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그 공대생이 어떻게 그걸 알 수 있었겠냐며 소설 '은교'에 대해 고마움을 표할 때. 울먹이는 은교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적요는 울잖아요. 서지우가 못한 이해를, 은교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은교'가 이적요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그 마음에 고맙다고 말한 거죠. 그래서, 이 영화가 사랑 이야기인 거겠죠. 그게 과연 가능할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어떤 부분에선 남성 판타지가 과하다 싶을 때도 있어요. 낭만적이란 건 그런 의미로 쓴 거에요.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라는 것에 대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늙음과 젊음을 떠나 이적요가 인식하듯 육체는 늙고 동시에 생에 대한 충동과 사랑은 여전히 생생하게 젊죠. 영화 '은교'가 그 괴리를 사는 인간을 그려내는데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술에 대한 아둔함이 늙음과 젊음에서 오는 아둔함과 겹치는 것이 재미라면 재미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라는 걸 이해했다고 생각해요..김고은은 영화에서 정말 예쁘더군요. 만만치 않은 이 아가씨가 얼마나 반짝반짝하는지, 그런데 열일곱의 소녀가 이럴 수 있는지 아무래도 의문스러웠어요. 또 아무리 분장을 해도 박해일의 영화 속 움직임은 그리 나이든 사람의 것 같지 않더군요. 말투나 다른 건 보다 보니 적응이 됐는데, 그게 참 아쉬웠어요.
다 보고 나니 보기 전처럼 그렇게 이 영화가 불편하진 않아요. 그건 아마 애초부터 이적요가 예술가의 방식으로 은교를 사랑하리라는 걸 보다가 이해했고 그게 맞아서인 것 같습니다. 인생 말년에 혹독한 앓음을 만난 이적요도 조금 가련하고, 평범하고 아둔한데 잘못된 자리에 가버리고 사고로 죽는 서지우도 조금 가련했던 것 같습니다. 이적요가 이해하는 걸 서지우가 이해 못하고, 이적요가 이해하고도 내려놓지 못하는 '앓음'을 서지우가 쉽게 탐하고...늙음과 젊음은 이적요와 서지우를 놓고 지독하게 명백하죠. 결국은 그냥 인간 이야기 같았어요. 쓰다 보니 별 내용도 아닌데 길어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