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님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있으신가요?


지금 제가 참여한 모종의 일 때문에 임권택 감독님 작품들을 하나하나 감상중입니다.
아니, 정정합니다. 하나하나 감상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실제로는 작품마다 패스트 포워드…도 아니고 스킵해가면서 주요 장면들만 체크중입니다.



그런데, 본래 좋아하던 감독님이기도 합니다만, 각 작품들마다 의외로 맘에 드는, 
"아니 이런 장면도 있었던가?"싶은 장면들이 하나씩 껴있더군요.


예를 들어 길소뜸의 초반, 김지미의 회상 장면에서 젊은 남녀의 뒷모습 누드 장면 기억하시나요?
김지미씨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배우가 이상아였죠. 
(기사 검색을 해보니 당시 이 장면 때문에 남친과 헤어졌다는 이상아씨 인터뷰가... -_-;)
이 장면 정말 아름다워요. 서비스씬 같은 느낌이 전혀 없이, 풋풋하고 아련한 이미지.


삭제된 버전으로만 봤다면 놓치셨겠지만, 티켓에서는 아예 김지미씨 본인이 그 비슷한 장면을 하나 찍은 게 있죠.
박근형 캐릭터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인데, 뒷모습이라고는 하지만 수위가 은근히 쎄요. 
길소뜸의 그 장면보다 살짝 작위적이긴 하지만, 극중에서 박근형의 캐릭터가 문학하는 사람이라 그렇게 어색하진 않죠.


연산일기는 어떤가요. 지금 과일촌 장관님이 광기어린 연산군으로 열연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고, 칭찬할 수도 욕할 수도 없는 오묘한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요,
특히 그 중에서도 여인네들을 이끌고 대비를 찾아가는 씬이나
처용무를 추면서 림보(?!)를 추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전 천년학을 개봉 때 놓치고 아직도 제대로 못봤지만,
중반의 그 유명한 꽃잎 내리는 장면과 엔딩 씬 부분은 기대보다도 훨씬 아름다웠습니다.
양방언의 음악, 특히 엔드 크레딧의 오케스트라 버전은 영화랑 안맞는다는 의견도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가 듣기에는 영화와도 어울리고… 계속 반복해서 듣게 되는 중독성이 있네요.
김수철씨나 김영동씨의 음악과는 조금 다르게, 살짝 현대적이고 헐리우드스러운 음악인데
그 서정적이고 서사적인 느낌이 임권택 감독님 영화랑 묘하게 잘 어울려요.


서편제도 오랫만에 보았는데, 초반 김명곤 아저씨 연애하는 장면이 제가 기억하는 것보다도 강렬하더군요.
(천년학에 김명곤씨가 그대로 출연했다면 어떤 영화가 되었을까요?)
풀숲 속에서 보듬고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 어떤 면에서는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도 떠올라요.
아, 그리고 베드씬도 빠질 수 없죠. 다들 - 특히 제 나이 또래의 남자분들 - 어릴 때 서편제 보고 와서
"야, 근데 초반에 그 베드씬 야하더라"는 무용담같은 코멘트 한마디씩 한 기억이 있을 겁니다.
전 그게 호기심 왕성한 어린 시절이라 그렇게 보인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오랫만에 그 장면을 다시 보니(이상하게 서편제는 다시 봐도 중간부터만 보게 되었거든요.)
제가 어려서 야해보인 게 아니라 정말 야한 장면이더라구요.
물론 그 장면이 뜬금없는 서비스씬이 아닌 영화 맥락에서 꼭 필요한 연출임은 말 할 필요도 없구요.


만다라의 클라이막스(사실상 엔딩)라거나,
기억했던 것보다도 박력있고 세련된 장군의 아들 시리즈, 하류인생의 액션 장면들이라거나,
아다다의 서글프면서 묘하게 아름다운 엔딩이라거나…



일전에 천년학 개봉 당시 듀게에서도 임권택 감독님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글 올라왔었죠.
오랫만에 그 글 검색해서 읽어보니 이런 저런 생각 나더군요.
그 때 "바빠서 천년학 놓쳤어요"라고 징징댔는데 
몇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못보고 있었다니 저도 참 게으릅니다.



여러분들도 기억에 남는 임권택 감독님 영화 장면 있나요?
아, 제가 일하는 모종의 일 때문에 올리는 글은 아니에요.
제가 필요한 장면들은 이미 대부분 확인이 끝났거든요. :-)

다만, 이렇게 생각치 못한 "명장면", 혹은 "인상적인 장면들"을 발견하다보니
다른 분들이 기억하는 "임권택 영화의 한 장면"에는 뭐가 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 저는 장군의 아들 마지막에 하야시일파의 회식장소(?)에 난입한 김두한의 격투장면을 가장 좋아합니다. 테이블 위로 뛰어 올라간 김두한의 앞뒤로 길게 내려진 갓등이 서로 움직이는 장면요.
    • '없어요'라고 쓰려다 생각났습니다.
      '춘향전'에서 방자가 뛰어가는 장면인가? 영사속도 조절하는 그런 걸 뭐라고 하죠? 꽤 아방했는데.
    • 저는 춘향뎐의 이도령과 춘향이 서로 놀던 장면이요.
      조상현 창과 '완벽'하게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너무 오래 전에 봐서 그렇게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 전 장군의 아들 1편 엔딩장면이 제일 좋았습니다!
      김두환은 민족 영웅은 말할것도 없고 서울의 수호자는 더더욱 아니었어요!
      그저 형사가 부르면 가던 길도 멈춰야만 하는 일개 깡패였죠~
    • 〈춘향뎐〉에서 방자가 춘향이 부르러 달려가는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판소리의 가락과 가사와 카메라의 움직임과 방자의 몸짓과 편집이 딱딱 떨어져서 만들어 내는 리듬이 황홀했어요.
    • 없어요 라고 쓰다가 문득 생각나써봅니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서 강수연씨가 시골 보건소 간호사로 일할때 거기서 만난 구급차 운전기사랑 정사장면... 하고 국어선생님으로 나온 과일촌씨가 자신을 생각하면서 쓴 시집의 시가 나레이션으로 깔리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장면이요.
    •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속눈섭이 긴 여자>에서 임권택 감독이 유일하게 카메오로 나왔던 장면이죠. 영화보다 그 장면에서 와와 나왔다! 이랬던 기억이 ㅋㅋ 그때는 히치콕을 흉내내고 싶으셨던 모양.
      그런데 어떤 작업중이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 룽게님이 쓰신 장군의 아들 갓등 숏에 한표 추가합니다. 끝내 주는 격투씬이에요. 요즘 깡패 영화에서는 절대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장면.
    • 전 개벽을 좋아하는데...대부분 다 좋고, 이덕화가 이혜영과 짧은 평화를 즐기는 장면, 김명곤이 칼춤 추는 게 기억나네요.
      천년학의 꽃비 장면도 좋죠. 다행히 전 개봉 때 볼 수 있었어요^^
    • 그러고보니 개벽에서 최시형교주가 어느 움막의 방에 지친 몸을 털썩 뉘이는 장면이 있었죠. 그 화면은 정말 대단했어요. 거의 유일하게 기억나는 한장면
    • 3pmbakery/ 모 영화제의 오프닝 영상 작업을 돕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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