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고백
가끔 섬뜩해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나이가 든다고 해서 성숙해지는 건 아니라는 걸 반면교사로 보여주는 분이죠.
단 한번도 자기 손으로 뭔가를 해본 적이 없는 좋지않은 롤모델 전형이랄까요.
몇가지 일화들이 있지만 간단히 넘어가고요. 모든 욕구가 손과 입에서만 맴도는 사람처럼 느껴진답니다.
하루종일 가만히 계시는데 노인들이 다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평생을 가만히 계셨죠. 가끔은 화석같아요.
그래서 할아버지를 잘 알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즉 일가 중에 할아버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물론 인간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은 물성 그대로 사람을 짠하게 만들기도 하죠. 그렇지만 저렇게 살아가게 될까봐 두려운 느낌이랍니다.
딱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는데 명절에 며느리와 할머니가 부엌에서 음식을 하고 있으면
보일러는 자신이 티비를 보는 안방에만 밸브를 풀어놓으세요. 아마 이 한줄로도 대충 어떤 분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
딱 자기 엉덩이 따뜻한 것만 알아서 철모르는 손자손녀들이 방을 오가며 춥다춥다 말하면 버럭
가만히 있으면 안 추운데 돌아다닌다며 안방 와 있으라 하는 분이죠.
이건 그냥 이기적인 면모 중 하나고요. 기타 재미난 것들이 많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생략.
여튼 할아버지 댁에 어느날 갔는데 할아버지가 새끼손톱을 기르고 계시더군요. 펄벅의 대지에나 나오는 아편하는 노인네처럼.
아버지가 왜 손톱은 기르고 계시냐며 언급하고 넘어가셨는데 뭐라고 대답하셨는지 기억은 나지 않아요.
그게 무슨 이유이든 전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어요. 지저분한 느낌이라.
그러고 꽤 시간이 흐른 뒤, 어느날 아버지의 손을 봤는데 아버지가 새끼 손톱을 기르고 계시더라고요.
저희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정 반대라고 해도 좋을만큼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아버지 손톱을 보는 순간 등 뒤가 서늘하더라고요. 이상한 혐오를 느꼈죠.
최근에 제가 별로 좋지 않아요. 제가 싫어하던 사람의 특성을 어느 순간 제가 너무 많이 가지고 있더라고요.
저 요즘 정말 추해요. 특히 요즘 제 문제점이 뭔지 아세요? 험담하기. 의심하기.
쿨하지 못하다는 걸 인정함으로 쿨해지려던 저의 쿨함이 단번에 찌질해졌죠.
아닌 척 하기 아는 척 하기는 이미 잘하고 있으니 쿨하기만 하면 저도 힙스턴데 질척해서 것도 아니에요.ㅋㅋ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스러운 지점이 최근에 너무 많아가지고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참지 말자. 난 너무 많이 오래 참았다 싶어서
어떤 관계들을 파탄을 내려고 칼을 갈고 있었는데,
제가 이런 문제들을 엄마에게 말하면 엄마는 늘 참아라. 그 애에게 그 말 하지마라. 적은 가까이 둬라. 한국 사회에서 튀는 건 좋지 않다.
손해본다 싶게 사는게 나중에 보면 이득이다 같은 원론적 얘기를 하시죠.
그런데 정말 어이없게도 나중에 보면 다 맞아요! 제가 전투했으면 뒷수습이 더 귀찮을 일이 많았어요.
엄마 말 맞다는 거 알고나니까 더 내 멋대로 못 살고 자꾸 찌질이가 되어가요.
남 말 많이 하고 다니고 꼬인 애들 복잡해서 싫어했는데 저 요즘 그래요.
왜 그러지 싶어요. 정리하고싶은 많은 인연들을 늘어놓고 어떻게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인 것처럼 해보려니까
또 그러는 틈틈히 호구는 되기 싫어서 떠보기도 하고 남들이 나에게 하듯이 계산도 해보고 와 인생 정말 짜증나네요.
요즘 저는 정말 멋 없어요.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의 면모를 내가 답습하면서 웃고 어울리며 있자니 뭐하나 싶네요.
그래도 알았으니 고치는 것만 남은거죠. 버릇으로라도 남지 않게 마음공부 좀 해야겠어요.
여튼 저는 요즘 찌질합니다. 얼마전 새벽에 우연히 발견하고 하이킥 백번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