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성) 빗속에서 춤추던 어떤 아이들에 대한 추억 (feat. DEUX)

 

사실 추억이라기엔 너무 짧은, 그냥 한 장면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아래 봄눈님이 <사랑은 비를 타고> 영상 올려주시면서 실제로 빗속에서 춤추는 사람 있으면 어떻게 볼까 하는 말씀에

갑자기 제 기억 속 한 장면이 떠올랐어요. 사실 별 거 아니지만, 저한테는 무척 애틋한 느낌으로 남아 있는.

 

때는 어언 중학교 시절. 1학년 때였는지 그 이상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여튼 저는 여자친구들과는 우악스럽게 잘 놀면서도ㅋㅋ

남자사람들과는 거의 어울릴 줄 모르던 그런 쏘녀였어요. 학교는 공학이긴 했지만, 분반이어서 더욱 기회가 없었죠.

수련회를 가면, 각반의 좀 논다하는 친구들은 다 나와서 춤을 추잖아요. 저는 그냥 자리에 남아 박수를 치는 아이들 중 한 명이었고ㅎㅎ

그 해에는 룰라의 3!4!가 워낙 인기였어서 여자반에서는 전부 3!4!만 하는 바람에

수련회 진행 측에서 노래 앞부분 한 절 정도만 틀고 끊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며 공연을 빠르게 진행시켰죠.

그러다보니 곡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당최 들을 수가 없고, 계속 같은 무대만 보면서 지루해지고 있었는데

아아, 계획적이었던 것인지, 마지막으로 나온 팀이 대박이었어요.

당시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가던 일진;; 남자 아이들 둘이서 듀스 메들리를 준비해왔거든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요. 그 열광의 도가니를요. 듀스 무대는 곡을 중간에 자르지도 않았고, 제 기억으로는 거의 네다섯 곡은 한 것 같아요.

그냥 그 녀석들 콘서트에 가까웠달까. 앞에 3!4! 무대는 그렇게 막 자르더니, 얘네들한테는 조명도 완전 빵빵하게 쏴주고.

저는 당시에 듀스보다는 솔리드를 좋아하던 쏘녀였는데, 음. 완전 반했어요. 듀스의 노래에도, 그 일진 녀석들에게도.

 

뭐 그렇다고 그 일진 녀석들을 개인적으로 막 좋아하게 되고 그런 건 아니구요, 춤 추는 남자의 멋에 대해 처음으로 깨쳐주었달까 그런ㅎㅎ

그렇게 폭풍 같은 장기자랑 시간이 지나가고, 하도 비명을 질러대서 목이 쉰 여학생들이 속출하고 그렇게 수련회가 지나갔어요.

그리고 드디어.. 수련회가 끝나고 학교로 돌아온 날 비가 왔어요.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집으로 향해 가는데, 저 말고도 주변에 같은 학교 학생들이 여럿 있었거든요?

근데 제 바로 앞에, 한 4-5미터 앞에 그 듀스 춤 춘 녀석들이, 우산 없이, 걸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녀석 둘이 갑자기 저들끼리 박자를 맞추더니 듀스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빗속에서요!

.

.

.

얼마나 멋있었는지 몰라요;;;;; 그리 길게 추지도 않았는데, 여튼 그 순간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제 기억에 박혔습니다.

비가 꽤 많이 왔거든요. 그렇게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데, 중학생이라지만 키가 훤칠하게 큰 남자아이 둘이서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교복을 입고 - 교복도 어떻게 입었는지 상상이 되시죠? 당시엔 바지통을 크게 입는게 유행이었어요..

넉넉한 바지통에 흰 와이셔츠는 밖으로 내어 입고.... 비는 주룩주룩 오는데.... 듀스를! 듀스를!

 

 

그게 끝입니다. 그 이상으로 아무 것도 없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그 둘 중 하나를 짝사랑하게 되었다던가 저언혀 없습니다.

그냥 그 장면이, 이상시리 마음을 설레게 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어요.

자꾸 더해지던 공부에 대한 압박감과 쏘녀다운 사춘기 감성으로 가득 찼던 그 시절에

소심한 나와는 달리 참 자유로워 보였던(동시에 위태로워 보였던) 날라리 소년들을 보며 느낀

어떤 동경과 부러움과 설렘이 뒤섞인 그런 감정과 함께요.

그러고보니 저는 그 시절 남자로 태어난 것을 부러워하던 여자아이기도 했네요.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운동한 다음 세숫가에서 윗통 벗어던지고 등목하고 그러는 거 되게 부러웠거든요.

 

 

 

그 동창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할까요. 스무살 언저리에는 그 중 한 명이 언더그라운드 힙합크루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었는데.

학교짱들이었으니 인생이 아주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도 같지만, 그렇게 반짝반짝했던 순간들을 지녔던 만큼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만약 듀게에 제 기억을 공유하는 동창이 있다면! 되게 신기할 것 같네요ㅎㅎ

 

으음 글의 마무리는 역시 듀스 영상으로 ㅋ

 

 

 

 

    • 우와.. 글로만 읽었을 뿐인데도 영화 속 장면처럼 다가와요.
      • 저는 막 쓰면서도 그 장면의 느낌이 잘 표현이 안 되서 답답했는데, 장면이 그려지셨다니 다행이네요 :) 정말, 영화 속 장면 같았어요. 그 아이들이 춤을 추는 순간, 음악도 없는데, 그냥 그 거리와 그 순간이 다 특별해졌었던.
    • 우와...빗속에서 춤을 추는 소년들의 젖은 목덜미와 운동화에 튀는 물방울을 상상하며 단숨에 읽었어요. 지금이라도 쏴아 빗소리와 쿵쾅쿵쾅하고 나를 돌아봐가 들리는 듯해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 부끄럽습니닷ㅎㅎ 저도 글에 첨부하려고 듀스 영상 검색해서 오랜만에 나를 돌아봐를 들었는데, 꼭 그 시절마냥 가슴이 두근두근하네요. 쿠키님의 상상이 덧붙여지니까 제 기억 속 장면들도 좀 더 디테일해지고 좋은 걸요ㅎㅎ 소년들의 젖은 목덜미와 운동화에 튀는 물방울이라니! >.<
    • 듀스가 최고로 인정합니다.
      •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듀스가 최고b 그때는 듀스가 그렇게 좋은 줄 모르고 좋아했는데. 지금 보고 들어도 정말 너무 좋아요. 아아, 그 때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 듀스의 무대를 보러 공개방송도 다니고 할 수 있었을 것을ㅠㅠ
    • 스트릿 댄서를 다룬 모 영화가 생각나네요.빗속의 공연...
      그리고 진짜 몇년이나 전 일이지만,워크샵 선발팀으로 후배 차 타고 가면서 듀스 CD 틀어놓고 같이 따라불렀던 것도 기억나요.신났었죠.
      • 못지우게 대댓글부터...
          • 내용 수정하면 되는데 바보보리님;
            • 원래 그 부분만 지울 생각이었는데?
              삭제 완료!
      • 스트릿 댄서를 다룬 영화, 빗속의 공연이라면, 그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최근에 나온.. 뭐더라 제목이..;;
        • 최근은 아니었고....아 기억났어요.스텝업2-더 스트리트.사실 보면서 든 생각은 우리나라 비보이들이 내 눈을 너무 높여놨다였지만ㅋ
          자유롭고 위태로운 날라리 소년들에 대한 묘사가 은근 가슴떨리네요.아 나도 저런 기억 한두개쯤....없구나...ㅠㅠ
          • 고아원까지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 듀게는 사실 듀스게시판이었던걸까요?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지금!!)
      • 저 멀리서 누가 날 부르고 있어어~
    • 룰라의 3!4!도 사실은 듀스 이현도가 만든 곡. 3!4!유행하던 시절이면 듀스도 해체하고 김성재도 죽고난 다음인데 그 일진들 듀스를 정말 많이 좋아했었나봐요. 아 그때쯤 듀스 forever 음반이 나왔었던가.. 암튼 저도 듀스 참 좋아했어요. 근데 춤은 못춥니다. 몸치. ㅋㅋ
      • 컥!!!!!!!!!! 3!4!가 아니네요!!!!!!!!!! 2B님의 지적으로 제 기억이 고쳐지고 있어요!!!!!!!!!! 3!4!는 김지현씨가 없는 룰라였죠? 분명 제 기억 속에는 김지현씨 역할을 맡았던 저희반의, 중학생이지만 상당히 뇌쇄적이었던;; 친구가 존재하거든요. 듀스 해체나 김성재의 죽음 전이었던 것도 분명한 것 같아요. 대체 룰라의 어느 노래였을꼬. 어찌됐든 그 일진 친구들이 듀스 팬이었던 건 분명한 것 같아요ㅎㅎ 더불어 저도 듀스 팬이 되었고:)
        • 아무래도 날개 잃은 천사 일까요? 3! 4! 도 김지현씨 있었을걸요. 그 전 천상유애가 표절로 난리난리
    • 3!4! 할때도 김지현 있었어요. 채리나가 영입된 후라 채리나가 돋보였을뿐 .. 찾아보니 날개잃은천사가 95년도 듀스 마지막 앨범도 95년도.. 김성재는 96년도에 죽었네요. 3!4!는 96년도 후반.. 장기자랑 가서 따라 했다면 아무래도 3!4!보단 날개잃은 천사겠죠..엉덩이춤 많이들 따라했었어요. 듀스는 아마 굴레를 벗어나 춤췄겠군요. 그곡이 춤이 좀 멋지죠. 그러고보니 듀스는 일년새에 해체하고 멤버 한명을 잃고 했었네요.

      그건 그렇고 본의아니게 아해님 나이가 대충 짐작되는데 모른척 해드리겠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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