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입니다.
요즘 장마철이라 날이 참 궂어요.
저희 집 강아지는 몇주째 산책을 못하고 있습니다. 슬슬 노견에 가까운 나이가 되는 터라 예전처럼 우중산책을 하는게 꺼려져요. 시골마을로 이사온 후 산책로가 온통 논길이고 흙탕길이라 후처리가 걱정되는 것도 있고 결정적으로... 몇 달 전, 비오는 날 산책을 나갔다 맞닥트린 배암의 충격을 잊지 못해서이기도 합니다.
전 그날 처음으로 야생 뱀을 봤어요. 비오는 흙길 위에서 걔가 뭘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력이 나빠서 처음엔 그냥 나뭇가지려니 했었습니다. 늘 도시에서만 살았던 터라 상상력이 부족한 탓도 있었어요. 설마하니 길가다가 파충류를 마주칠 수 있는 기회가 생길거라곤 정말 생각도 못해봤거든요.
감상을 말하자면 뱀은 정말... 뱀이더라구요. 무심히 보고 있다 그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등골에 쭉하니 끼치던 감각이라니.
헉 소리도 못내고 굳어있다가 멋 모르는 강아지 놈이 다가가려는 걸 보고 줄을 확 당겨서 끌어 안고는 허겁지겁 도망왔쳐 왔어요. 종간 근접조우가 저 보다는 그 녀석에게 더 위협적이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흠뻑 젖은 강아지를 끌어안고 현관으로 뛰어들어와 보조키까지 모조리 다 잠근 후였습니다. 근데 그걸 알면서도 공포심을 떨치기가 쉽지 않더군요. 두께가 기껏해야 손가락 두마디 정도 밖에 안되어 보이던 녀석이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도 그 소름끼치던 감각이 남아 있어서 비오는 날이면 집 밖에 나가지 않아요. 인터넷 찾아보니까 변온동물은 비오는 날엔 칩거를 해서 만날 가능성이 오히려 줄어든다고 하던데 한번 생긴 트라우마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더군요.
덕분에 저희집 강아지는 비오는 날이면 꼼짝 마라 입니다. 오늘도 나가자고 낑낑 거리는 걸 못들은 척 하고 있으려니까 슬금 눈치를 보더니 한숨을 폭 쉬고는 제 옆에 철푸덕 주저 앉아요. 머리는 앵돌아진 것처럼 먼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뜨끈뜨끈하고 질펀한 엉덩이는 제 허벅지에 딱 붙어 있어요. 삐진거야 내가 좋은 거야 둘 중에 하나만 해...
가엾은 마음에 등허리를 슬슬 쓸어주며 작업하다가 우연찮게 몰랑몰랑한 발바닥을 건드렸는데 움칫하더니 발을 치워요. 어라? 싶어서 다시 한번 손끝으로 발바닥을 간질간질 해봤더니 귀찮은 듯 털어내더니 발을 쓱하니 치워버립니다. 얘가 간지럼을 타나? 흥미가 돋아서 이번에는 앞발을 간질간질했더니 강아지가 고개를 휙 돌려 비난의 눈초리로 저를 바라보네요. 그래도 한번 돋은 장난기가 쉽게 가실리 없습니다. 다시 한번 발바닥을 간지럽혔더니 휙 하니 일어나 제 발치로 몸을 옮기는군요. 아. 절묘한 위치 선정이에요. 현재 작업하고 있는 노트북과 좌식 책상을 치우지 않으면 손이 안 닿을 위치인데 제 녀석은 계속 제게 몸을 기댈 수 있거든요. 종아리에 등을 기댄 강아지 녀석은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이 들락 말락하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계속해서 강아지의 발바닥을 다시 간지럽히고 싶은 욕구를 눌러참고 있습니다. 작업이 산처럼 남아서 밤을 새야 할 판인데도 욕구불만에 손이 근질근질하네요. 한번만 더 간지럽혀보고 싶어요. 한번만 더.
그래서 듀게로 왔습니다.
결론은 팔불출 개자랑이군요. 쓸데없는 소린 이만하고 작업으로 돌아 가렵니다. 근데 쓰고보니 저희 개의 사랑스러움에 대한 어필보다는 뱀 목격담의 분량이 더 많은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