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영화제] 중노동을 보고 잡담 (스포)
별 만점이라도 주고 싶을 정도로 좋은 영화였습니다.
몇몇 인물의 스토리가 조금 뜨기는 했지만,
버릴 시퀀스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몰입하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실업이나 경제문제를 다루는 영화라면 뻔하고 지루할 수도 있었을텐데,
영화 내내 등장인물들에게 몰입하게 되면서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던 작품.
그런데... 이 영화를 마냥 좋다고만 하기엔, 도저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요소가 있습니다.
왜 이 영화가 부산이나 전주가 아닌 부천환타스틱영화제에 초대되었는가와도 일맥상통하는 문제.
스포일러
호러영화와 사회성짙은 드라마를 섞는다는 게 그렇게 드문 경우는 아닌 거 같습니다.
사실 인기있는 호러 영화들 중에는 노골적인 사회적 메타포를 담은 작품도 많이 있고,
걸작 호러라 불리는 작품들 중에는 귀신이나 살인마, 크리처의 호러 효과 만큼이나
주인공의 일상 생활에서 긴장감을 끌어내는 데 집중한 작품도 많았습니다.
거꾸로 현실사회를 그린 드라마에서 호러까지는 아니라도 스릴러의 문법을 차용하여
주인공의 운명이 어찌될지 긴장감을 조성하는 영화도 많구요.
하지만 이 '중노동'이란 영화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영화 시작부터 후반까지 쭉 드라마로 갑니다.
근데 클라이막스에서 호러적인 요소가 뜬금없이 하나 툭 던져집니다.
물론 그에 대한 복선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절대 충분하지도 않습니다.
그래놓고 그 호러적인 요소는 그냥 넘어간 채, 영화는 다시 드라마로 끝나버리니...
보고나면 참 좋은 영화라는 생각은 드는데,
대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어느쪽을 하고 싶었던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 시작부터 클라이막스까지 정말 뭔가 있을 거 같은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결과적으로 던져준 게 너무 뜬금없습니다.
a로 쭉 가던 영화라면 a'를 기대하든가,
최소한 b나 c 정도가 나올 거라고 예상할텐데.
"a"로 가던 영화가 "z"도 아니고 뜬금없는 "ㅎ"이 나온 꼴입니다.
그렇다고 벽에서 나온 그걸로 영화가 설명이 되느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a.아예 초자연적인 요소를 다 빼고,
그냥 순수하게 실업문제를 다룬 영화로 갔다해도 수작이 되었을 거 같구.
(중반에 사라진 재고품이나 인기척, 길가의 개 같은 것들도, 그냥 미스테리로 남겨놔도 좋겠죠.
초자연적인 요소 없이도 여전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요.)
b.아님 거꾸로 초자연적인 요소를 좀 더 적극적으로 끌어와서
본격적인 장르물로 파고 들었어도 수작이 되었을 거 같습니다.
(빈 가게를 살펴보는 장면이나 몇몇 씬들을 보면,
정말 본격적인 장르물로 만들었어도 충분히 훌륭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지금은 어느쪽도 아니에요.
이럴 거면 초반에 해고된 직원이 등장해서 총기 난사라도 하든가,
아니면 벽속에 "그거" 대신에 치정극에 얽힌 전주인의 시체라도 넣든가...
아, 아니죠. 그런 전개는 너무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지금처럼 간 거겠죠.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좋다 나쁘다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그냥 너무 뜬금이 없습니다.
이런 전개를 용납하지 못하는 제가 너무 꽉 막힌 걸까요?
그런데 왜 저는 이렇게 툴툴거리면서도 이 영화를 너무나 좋게 보았던 걸까요?
음, 모르겠습니다.
전 이 영화를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 영화를 본 사람들과 한 번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 그런 종류의 작품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본다한 들,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도 답이 안나오긴 마찬가지이겠죠.
그만큼 극중에서 보여진 정보가 제한된 영화이니까요.
과연 이 영화를 만든 제작진들은 무슨 생각이었을지,
솔직히 별 상관이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 번 들어보고는 싶네요.
p.s.
후반에 그 머리 갈라진 박제는 실제로 거기에 있는 박제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