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매매적 국제결혼, 자손에 대한 열망. 호주제도
1.
지난 주말에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았는데, 한 남자가 자기 부인을 때려 죽인 이야기더군요. 사건을 재구성하는 재연을 봤는데, 피해자를 재연하는 배우가 암만 봐도 외국인 같더군요. 보면서 "피해자가 외국인이었던 걸까, 아니면 방송국이 극악의 원가절감을 한걸까" 궁금해했는데... 비극적이게도 전자였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조선족 아내를 "사 와서" 살다가 의처증을 품고 그만 죽인 사건이었던 겁니다.
전부터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저런 국제결혼을 왜 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가장 강력한 이유는 두 가지인 것 같고, 그 둘 다가 남편이 아닌 그 부모에게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내 자식이 평생 결혼 못하고 총각귀신으로 죽는 꼴은 죽어도 못보겠다. 누구든 좋으니 장가를 가야한다."는 생각. 둘째는 그 결과 "애를 낳아서 우리 집안의 대를 이어야겠다". 그 외의 이유는 사실 별로 이해가 되지 않아요. 노골적으로 성욕의 문제라고 보기엔 차라리 그 돈이면 자본주의가 막가고 있는 이 나라에서 돈으로 성욕을 해결 못할 것도 아니고, 결혼 못한게 남보기 부끄러워서라기엔 그런 인신매매적 결혼이 남보기 자랑스러울 것 같지도 않습니다.
둘 다 별로 동의가 되지 않는 이유들인데, 겨우 그런 이유로 먼 나라에 와서 결국 목숨을 내놓게 된 이들에게는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명복을.
2.
나 죽은 후에, 내 후손이 없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전... 그냥 상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어른들과 이야기하면 늘 혼납니다. 니가 아직 어려서 그렇지 나중에 나이 들고 정말 죽을 때 되서 생각해보면 그런게 정말 아쉽다고요. 결혼해서 애가 있어도, 딸이면 결국 시집가서 남의 성 가진 애를 낳을거고, 그렇다보니 아들이 하나 있어서 내 성을 이어주고 나를 기억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네요. 물론 딸도, 딸이 낳은 아이도 내 자손이지만, 성이 같냐 아니냐가 생각보다 그 대상에 대한 친밀도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고요. 요즘 남아선호사상이 매우 줄어들었다는 걸 봐서는 젊은 세대에게는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론인 것 같습니다만, 모르죠. 지금 그렇게 말하는 어르신들도 젊을 땐 '후손 따위...'라고 생각하셨을지도...
3.
요즘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들으면 학을 뗄 그놈의 가문 이야기, 대 잇는 이야기 등등을 핵심적으로 제도화 했던 것이 호주제도였습니다. 모든 집에는 호주가 있고, 호주 외의 모든 사람은 "호주의 xxx"로 정의되며, 당연히 장남이 호주가 되고, 결혼한 여자는 자기 집안 호적에서 파여서 남편 집안 호적으로 이사가고. 이런 저런 문제가 많은 제도였고, 결국 그 보수적인 할아버지들이 모여있는 곳인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해 역사 속에 묻어버렸습니다.
당시 반대의견을 냈던 재판관들의 코멘트 중에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호주제는 명목상 살아있긴 하지만 지난 민법 개정으로 호주의 권한이나 책임은 거의 없어졌다. 이혼 등을 겪은 일부 가정에서 적용상 다소 무리가 있을 뿐인데 이건 개정하면 된다. 이미 사회 관념이 변해 과거처럼 호주가 맘대로 하는 세상도 아닌데, 부계혈통주의가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이어져내려온 전통이고, 세계적으로도 사실 많은 나라가 부계혈통주의를 따르고 있는데, 서류상이라도 그냥 두면 좀 어떠냐? 평등의 잣대를 전통문화에 마구 들이대면 전통문화는 몽땅 해제되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호주제도는 가족관계라는 실체를 표시하는 기술일 뿐이다. 그 기술이 가족관계의 본질을 만들진 않는다. 서류상으로는 여자가 남자의 호적에 '남자 밑으로' 들어가는 등 불합리해보일지라도, 실제 관계는 그렇지 않으면 된거 아니냐?" 라고 했는데, 호주제도가 없어진지가 몇 년이 된 지금까지도 호주제 시대의 사고방식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어르신들을 보면, 그나마 호주제가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더 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려 국가가 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해주고 있는데 말이죠. 당시 소수의견을 낸 재판관들의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했거나.. 아니면 모르는척 했거나.. 둘 중 하나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