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밤길 운전 때의 에피소드

비가 무지하게 많이 오는 날이었어요.

경기도 화정에서 집 방향으로 오는 길인데요.

처음 운전해보는 길이었어요.

밤이었고요.

비가 무진장 쏟아져서 와이퍼 속도를 최대치로 올렸습니다.

차선이 제대로 보이지 않더군요.

네비가 알려주는 길을 가긴 하는데 설설 기어갔습니다.

차안에는 운전하는 저,뒷좌석에 7세 남아(아스퍼거증후군 추정되는-이것에 대해서는 제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가 타고 있구요.


애가 운전하는 중간중간에 네비를 보더니

"엄마,지금 차선을 변경해야 할 것 같은데요"

차선변경을 못하고 그대로 갔더니 네비가 어김없이 경로재탐색 들어갑니다.

재탐색된 경로로 또 설설기어갑니다.

넓은 길이 나타나는데 중앙선이 안 보여요.


어어? 느낌이 이상해요.

내가 지금 역주행하고 있는 건가?


역주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아이에게 거의 울듯하면서 말합니다.

"철수야,엄마가 지금 중앙선이 안 보여!"

역주행의 느낌이 확 오는 게 길 중간에 보면 노란색으로 빗금 쳐져있는 길있죠.바닥이 울퉁불퉁하고.

바닥을 지나는 데 울퉁불퉁한 느낌이 와요.

재빨리 길 안 쪽으로 붙긴 했는데 아이가 조언을 해줍니다.


"엄마,사이드미러로는 선이 보일 꺼에요.보이죠?"

손가락으로 가르켜줘요.

아,그래! 사이드미러! 왜 나는 이걸로 선을 볼 생각을 못했지? 아이가 알려줘서 중앙선에 대한 감을 잡고

계속 운전합니다.

한편으로는 소름이 끼쳐요.사이드미러로 바닥선이 보인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다행히 역주행할 때 마주오는 차가 없었어요.

곧 이어 중앙분리대가 나오더라고요.

그 길로 계속 갔으면 중앙분리대건 마주오는 차건 어디에건 부딪혀 박살났을 거에요.

뉴스에 나왔겠죠.


순간 아이에게 너무 감사하더라고요.아이가 역주행하고 있다는 걸 알려준 건 아닌데

운전에 도움을 준 건 확실해요.

10분정도 더 차를 모니 이제 몇 번 지나본 익숙한 길이 나오는데 그때 긴장이 풀리고 닥쳐오는,

온 몸을 휘감는 안도감이라니.


와서 아이한테 고맙다고,중앙선 보는 방법 알려줘서 고맙다고 몇 번이고 인사하고 감싸안아주고 칭찬해줬더니

"더워요"하더라고요.


집에 와서 남편에게 물었어요.

"당신 혹시 아들한테 사이드미러로 보면 중앙선 보인다고 알려준 적 있어?"

"아니"

또 놀랍니다.


얼마전에요.

애랑 같이 EBS프로를 보는데 예약시청 알림이 떠요.

1분후 예약한 프로가 방영되는데 채널이동하겠냐고 TV가 물어봐요.

이거 누가 설정했니?

철수가 해놨어요.

저도 TV에서 그런 게 되는 줄 그때까지 몰랐거든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디지털TV는 채널안내라는 간단한 TEXT를 받아와요.

리모콘에 채널안내 눌러보신 분 있으신가요.

채널안내 누르면 간단한 방영스케쥴이 나오고 거기서 프로그램 시청예약을 할 수 있어요.


"혹시 그럼 얼마전에 철수한테 TV예약시청 뜨게 하는 것도 남편님이 알려준 거 아니었어?"

"아니.내가 알려준 거 아닌데.애가 그렇게 하데."


애가 글을 읽을 수 있으니 리모콘으로 조작해서 이것도 보구,저것도 보고 싶으니깐

예약시청을 걸어놓은 거죠.어쩐지 전에부터 예약이라는 게 뭔지 계속 물어보더라고요.

콜택시가 "예약"싸인을 켜놓고 달리는 걸 봐서 그런 가보다 생각했어요.

우왕 이런 조작을 할 수 있다니.


여기까지 읽으시는 분들은 아들 자랑을 왜 길게 써놓냐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요약하자면 우리 아들은 그런 겁니다.기능은 되나 사람과의 뭔가는 안되는.

아는 동네 아저씨가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어요.담배갑을 바위위에 올려놓으면

아들이 주워서 읽습니다.

"담배에는 폐암 및 블라블라" 읽는 속도도 넘 빨라요.

(엄마들 책 읽어주기 귀찮을 때 대충 읽어주는 속도)

근데 왜 담배를 피우는 건지 궁금해하는.

정작 담배피는 아저씨가 그걸 챙피해하는 건 잘 모르는 거고.

앞으로 얘 인생이 어떻게 풀릴려는지.

어린이집에서는 얘가 특이한 걸 아니까 얘가 말할때마다 애들이 빵빵터지는데

얘는 "비웃어서 기분이 안 좋다,나가야겠다"하고 방을 나간데요. 

애가 애 같지가 않은 현상을 자꾸 접할 때마다

부디 사회나가서 좋은 사장님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 잘 읽었습니다. 제목과는 다른 아이에 대한 이야기였군요. 그냥 남 입장에서 보기엔 영화 속에 나오는 아이 같습니다. 좀 아이가 멋집니다. - -;;
      다른 아이들과는 달라보이니 세심하게 잘 교육하시면 좋겠네요. 사이드 미러 이야기는 굉장히 놀랍습니다.
    •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천재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혹시압니까 세상을 바꿀만한 아이일지

      세상에 많은 것들을 보여주세요
    • 운전중 이야기는 정말 놀랍네요. 리모콘 이것저것 눌러보는건 애들 대부분 할거에요. 예약 시청은 우리 애도 하긴 하더군요.(온갖 애니메이션에 다 걸어놔요;;)
    • 저기... 아들자랑은 돈 내놓고 하셔야 되는 거 아닌지... =3=3=3
    • 귀엽고 똑똑합니다 ㅋㅋㅋ 그리고 아이와 어른이라는 상황 떼고 보면 남자와 여자의 차이도 느껴지네요. 기계 조작에 능하고(관심이 있고) 정보에 의거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식의 사고방식엔 남자가 많으니까요.
    • 이 글 보고 저번에 쓰셨다는 글도 찾아서 읽어봤습니다.

      에.. 뭐랄까.. 어릴적 제가 생각나서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어릴적에 댁 아드님과 굉장히 비슷한 아이였어요. 어린 나이답지 않게 아는건 많은데 사람에게 관심없고. 어디가나 책만 찾아읽고. 유치원은 집에 돈이 없어서 다니지를 못했는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어언 10년정도를 반자발적 왕따로 살았어요. 그렇다고 뭐 괴롭힘을 당한건 딱히 아니었고.. 그냥 애들에게 관심없고 다른 애들도 저에게 관심이 없고 그런 상태였죠. 다행히 거의 늘 한명씩은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해보니 제가 하도 개념없게 굴어서 얘랑 친구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더군요.

      저도 학교가기 너무너무너무 싫었습니다. 당시 저에겐 학교가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었어요. 학교 도서실의 SF전집 말고는 초등학교 시절에 기억나는 것도 거의 없어요;;

      이런 저도 지금은 친구가 많은 편입니다-ㅅ- 나이가 들면서 책 밖의 세상이 하나씩 보이더라고요.. 대학교2학년 때까지도 사람 대하는게 너무 힘들었지만요.

      만약 아드님이 저와 비슷한 아이라면, 여러가지 다양한 체험을 해보고 싶어할 거에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는 것에 슬퍼하지 마시고, 음악 과학 공예 미술 등 다양한 체험을 해보게 도와주세요. 집중력과 의지력, 체력만 받쳐준다면, 큰일을 해낼 수도 있을 겁니다^^ (전 체력이 없어서 캐망...)

      그리고 아드님 보시기에는 좀 어려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 사놓으시면 앞으로 몇년간은 "이건 왜 이래요?" 하는 질문에 대답하기 좀 수월해지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http://www.yes24.com/24/goods/270260?scode=032&OzSrank=8
      • 불별님 댓글 좋네요. 남다르게 특출난 무언가가 있다는 건 다른 이들과의 괴리를 낳기 쉽죠. 상대적으로 반대되는 부분들에 소홀해지기 쉽고요. 부모가 아이의 특성을 헤아려 원하는 건 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고 부족한 점도 같이 발전할 수 있도록 안배해준다면 정말 훌륭하겠어요.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저쪽 동네 남자들의 공감 능력이 내 주변 남자들보다 그닥 뛰어난 것 같진 않은데 말입니다. 중요한 포인트에서 마음을 닫아 버리지 않고 경청하는 태도라던지, 혹은 중요한 포인트에서 딱 적절한 멘트를 친다던지 하는 게 정형화된 에티켓 같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있어요. 딱딱 포인트만 짚어줘도 다음으로 연결되고 또 그런면이 인간관계에서(특히 여자들이나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스킬이 되기 때문에 똑똑하다 싶을때가 많아요. 보면 코쟁이들은 어릴때부터 남자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교육을 시키더라고요. 한국 남자들, 외국 남자들 타고난 특성은 별반 다를바 없는데 후천적인 교육으로 대화(공감) 스킬이 생긴단 느낌입니다. (잘 안된다면 메뉴얼을 외워라 식..) 저런 점은 저쪽 동네가 참 현명한 것 같아요.
    • 그리고 어떤 분이 저번 글 댓글에서 <어둠의 속도>를 추천하신 것 같은데 아드님은 절대로 그 정도로 심한 것 같지는 않고요. 미드 빅뱅 이론을 한번 보세요. 거기 나오는 쉘든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건 거의 확실하죠. 아스퍼거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D
    • 페어런트 후드 라는 미국드라마 추천드려요.

      거기에 맥스라는 아스퍼거 아들을 키우는 부모가 나오는데,

      훈육의 어려움이나 부모로서의 고민,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떡할까에 대한 고민도 나와요.

      아스퍼거 아이들을 위한 행동발달 선생님도 나오고요.
    • nixon,Spitz/사이드미러 얘기가 놀라우시다니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구나,싶네용.

      늘보만보/아들자랑같아서 안 할려고 했는데 ㅎㅎㅎ 결국 얘에 대한 모습은 어떤 심한 격차가 나는 두 영역밖에 안 되서리.엄마들한테는 절대로 저런 일화를 얘기하지 않습니다ㅋ.엄마들 반응을 알기기 때문에요

      불별/네.실은 애가 어린이집도 안갈려고 굉장히 애쓰고 있어요.어린이집이 너무 너무 너무 가기 싫데요.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안간다고 밤마다 자기전에 얘기해요.추천해주신 책은 한번 읽어볼께요.근데 저는 수능때 과탐에서 한개 맞은 기록이 있기에 제가 이해할지는ㅜㅜ.아스퍼거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니 희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가드너님 말고 아드님이 직접 읽으시면 됩니다 ㅎㅎ
        그리고 이 블로그 글들 한번 읽어보세요. 가드너님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아주 중요시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거 신경 안쓰고 잘 사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http://fischer.egloos.com/3514050
        http://fischer.egloos.com/3642464
    • 아이가 재능을 보이는 것 같은데요, 천재성은 어느 순간 훅하고 사라집니다. 영재교육 태크를 타시는 게 좋을 것 같구요... 다만 이것도 부모가 잠깐 정신파는 사이에 훅하고 날아가버리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는 직/간접적 경험담입니다. 부모님이 교육계에 종사하며 몇몇 학생을 옆에서 제가 본 케이스.)
    • 덧글들을 보니 좀 걱정되는 글들이 보이는데요, 일단 "남자아이가 더 기계 조작이나 이과쪽에 소질이 있다"와 "이공계적 재능은 대인관계나 사회적 적응과 독립적이거나 관계가 적다" 정도의 입장을 보이는 글들이 많네요. 이 두 가지 모두 거의 편견/선입견에 가깝고 실상은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 요즘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습니다. 제가 가드너님이라면요 일단 이과쪽 책이나 남자아이들이 호기심을 보이는 것들에만 아드님을 접하게 하는 것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단 책은 두루두루 다양한 것들을 많이 읽는 것이 나중에 무슨 길을 가던 도움이 되구요, 놀이도 다양한 것들을 해보는 것이 좋아요. 그리고 대인관계를 힘들어한다고 해서 사람만나는 걸 그냥 피하게 하지는 않으실거죠?
      • 죄송합니다. 댓글 단 사람이라 대답하겠습니다. 일단 모든 경우가 같다가 아니라 그러한 경향도 있단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학계의 최신 연구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차이가 나타나는 시점에서 상대적으로 여아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채로워진다던지 남아들의 흥미가 탈것이나 공룡 등으로 꽤 일관되게 흘러간다던지를 보면 보편적으로 타고나는 남녀의 차이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런 발달 과정에서 남자와 여자를 나누어 편견을 갖도록 하는 교육은 분명 조심해야겠지만 아이 개별이 타고 난 성향을 무시하는, 무조건적으로 일관된 교육도 위험하단 입장입니다. brightlight님 말씀처럼 아이가 다양한 것들을 접하게 도와주는걸 바탕으로 아이의 특성을 살펴 잘하는 부분은 직접 탐구해 답을 찾아가는 길을, 어려워하는 부분은 사려깊게 배울 수 있도록 돕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 싶어요. 단순히 생각만으로도 굉장히 어려워보이는 일이라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는건 더 무시무시하겠구나 싶습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만큼 어려운 건 없는 것 같아요.
    • 유리에 유막제거 하시고 발수코팅제 (불스원에서 나오는 레인ok 는 절대 피하시구요. 다른 건 괜찮습니다. 제가 추천하고픈 건 아쿠아펠)
      꼭 바르시기 바랍니다. 언제까지고 요행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죠. 그리고 와이퍼도 점검하세요. 아무리 폭우가 와도 차선이 안보이는 건
      비정상이고 정말 위험합니다.
    • 귀여운 아드님께 고마와 하시되, 윗분 지적처럼 유막제거가 먼저일 것 같습니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백미러를 보면서 차선 지나가는 풍경을 즐기던 아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조언인 것 같습니다. 그 순간에 백미러를 미처 생각 못하는 운전자가 위협적이긴 한데, 다행히 귀한 아드님 덕분에 소중한 경험하셨네요. 두번째는 찾아보시면 흔하디 흔한 에피소드일 거고요.
      부모 입장에서 자식의 (종종 사소한) 특별함을 우려하거나 자랑스러워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부모가 미리 7살 아이한테 '증후군' 이름을 붙일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평범/보통/정상'의 범위는 항상 생각보다 넓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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