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옛말에 사람이란 관뚜껑에 못을 박아야만 그 사람이 어떻다는 말을 할 수 있다 했는데 그 말이 맞는 말이야. 내 조카딸도 따지고 보면 못살다 간 것도 아닌 성싶네. 그리고 이서방도 복 없단 말은 못할 것 같애. 흔히 사람들은 팔자치레라고 말을 하는데 따지고 볼 것 같으면 육례를 갖추고 만난 부부라도 필경엔 남남 아니겠느냐 그거지, 여기 앉은 사람들이야 내 조카딸 근본을 아니 하는 말인데 그러니까 형수뻘 되는 사람이 그런 처지가 아니었거나 또는 이서방 모친이 그런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허혼을 했다 한다면은 물론 이서방하고 내 조카딸은 은앙새겉이 잘 살았겠지. 그러나 만났다간 헤어지고 헤어졌다간 또 만나고 그 끈질긴 인연하고 기구한 세월이 반드시 음,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 맘이 더 굳게 떨어질 수 없게 되었다면은 반드시 박복했다 할 수 만도 없을 것 같애."


제 기억에 토지에 '사랑'이라는 장 이름이 두번 나왔던 것 같아요. 인실이 얘기 나올 때랑 이 장면.

어젯밤 물어봤던 대지의 장면이랑 같이 요즘 머릿속을 맴도는 대사에요. 가을이 오고 있어서 그런지.


이어지는 이 대사도 참 좋아해요.


"형님, 거 풍월 아는 소리외다."

"아암 풍월 알구말구. 내 비록 늙고 못생긴 마누라, 자식 하나 생산 못한 마누라지만 그 할망구 하나 보고 살긴 살았으되, 그러니 사람에 미친 일은 없으나 나는 미치는 성미야. 약촐 캔답시고 산에 미쳐서 다녔고 또 미친 일이 많았지. 남이 보기에는 헛일하고 고생한 보답 없다 하겠지만 내 마음에 열심이면 그게 보람이요, 미치는 거지."


풍월을 아시는 공노인.

요 대사 읽을 때면 주갑이아제도 생각나고... 요샛말로 하면 모태솔로 대마왕인 주갑이아제지만, 정말 가진 것 없고 헐렁벌렁하고 만만해 보인 인생이지만 주갑이아제야말로 참 풍월을 아는 인생이었던 것 같아요. 제 인생의 모델은 주갑이아제. 어렸을 때 토지를 읽고 이 얘기를 했다가 엄마한테 등짝을 맞았더랬습니다ㅋ

    • 월선이 죽을 때의 장 제목이 사랑인 건 알았는데 같은 이름의 장이 또 있는 건 몰랐네요. 토지에 나오는 여러 사랑들은 어찌나 다 부서질 것처럼 아름답고 아련한지. (오타같은데 은실이 아니라 인실인가요? 등장인물이 하도 많아서 은실이라는 이름은 기억이 안 나네요ㅎ)
    • 으악 인실이를 은실이로 만들었군요.
    • 인실이.. 인생은 실전이다 이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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