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있음] 카페 드 플로르, 미드나잇 앤 파리, 케빈에 대하여 그리고 광주극장
제 기억력은 별로 좋지 않아서, 며칠만 지나면 어떤 것을 했다는 것 자체마저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그래도 무언가를 지불하고 경험했던 것들을 흔적도 없이 잊어버린다는 것은 슬픈 일이죠. 그래서 글로 남기려면 게으름과 싸워야 합니다. 참, 귀찮은 메커니즘으로 살고 있네요.
제목에서는 광주극장이 나중에 나올거 같지만, 3편의 영화를 전부 광주극장에서 봤으니 먼저 설명하는게 맞겠다 싶습니다. 광주에 마지막 남은 단관 극장인 광주극장이 있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거기서 흥행작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영화들을 상영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서 보게 된 것은 요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800명 수용 가능한 2층 있는 단관 영화관인데도 한 편 당 보는 사람은 20명 정도 되더군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마치 영화관을 전세 내놓고 보는 기분이라 몸은 편했지만, 그 큰 영화관 전체를 에어콘을 틀어 온도 조절을 하고 그래서 유지에 대한 걱정이 들어 마음은 불편하더라구요. 약간 덥기는 했습니다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서서히 몸의 열기가 떨어져 시원해하다고 느꼈구요. 그리고 광고가 하나도 없더라구요. 희미하고 노란 불빛 아래 하얀 스크린이 멍하니 있다가 5분 전과 영화 시작 전에 종소리가 울리고 바로 영화가 시작했습니다. (법규정인듯한 비상구 설명이 잠깐 들어가긴 했지만) 스크린 크기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17.3 x 7.3 m(용산 IMAX가 18.3 x 9.9, Megabox COEX가 17.4 x 7.4) 더군요. 광주에 있는 웬만한 IMAX 스크린 크기와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영화관 보다 그 만족감은 최고였습니다. 팝콘도 나쵸도 안 팔지만요. (사먹지도 않지만)
아무 생각없이 영화 시간에 맞는 영화 한 편을 봤는데, 그게 카페 드 플로르였습니다. 2중 구조를 그리고 있는 영화인데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 2개가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진행되다가 결론에 이르러 감독이 원하는 식으로 봉합이 됩니다. 그것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관객에게 달린것 같습니다만, 그것을 제외하고 난다면 꽤나 헛되고 감상적인 영화 2편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미 시간이 흘러, 구멍난 치즈같이 이 영화의 기억이 남아 있는데 기억나는 몇 가지 장면 중 하나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는 어머니에게 뛰어드는 아이들(엄마는 아빠와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과 지적 장애를 가진 남여 아이가 서로 껴안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Noooooooooooo-(끝없이 이어짐)'라고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미 스포일러도 썼다 싶어 하는 말이지만, 누군가와 함께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면 환생에 대한 여러 토론 및 그것의 사실여부를 떠나 삶 속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에 대한 대처와 같은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주장하는 근거도 부족하고, 그렇게 문제작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이 영화를 '누구 카페 드 플로르 보셨어요?' 하기는 애매하더군요. 하지만, 영화에서 장면 전환이 관객들에게 친절하지 않았다는 부분이 맘에 들기도 합니다. 아마 그런 것이 나쁜 남자를 좋아하게 되는 일면이겠지요. 저는 남이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에는 잼병이라 이 정도로 정리해야 겠습니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엄마와 남자아이가 종이배를 유럽의 거리에서 차도와 인도 사이의 물 흘러가는 곳에 흘려보내며 따라가는 장면은 감독이 정말 좋아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 자신감만큼이나 저도 좋았구요. 사실, 저 장면을 찍고 이 영화를 계속해서 만든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져 들었습니다.)
미드나잇 앤 파리는 다음 날 케빈에 대하여와 연속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단관이라 그런지 스크린 하나에서 다음에는 다른 영화 이런 식으로 보여주더군요. 온도차가 다른 영화를 연속으로 보는 것도 재미났습니다. 그런데 단관에서 숨어 있다가 다음 영화 때도 보고 또 숨어 있다가 다음 영화때도 보면 어떻게 될까요. 확인하시는 분도 없어보였는데. 돌아다니면서 표 검사 할 것 같아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미드나잇 앤 파리는, 무척 재미있게 봤습니다.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희희덕거리면서 봤는데 영화니까 이 사람들을 그 유명한 작가로 봐야돼, 라는 협의에 대해 별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그저 그런 인물들이 살아있는 듯 나오는게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모두 잘 생기거나 이뻐서 눈이 계속 호강을 했죠. (약혼녀나, LD 판매하시는 분, 투어리스트까지.) 그래서 가끔, 사람 쳐다 보다가 자막을 놓쳤습니다. 딱히 영화 전체를 흐르고 있는 '과거 시대에 대한 열망' 같은 것에 휘둘리지도 않았습니다. 주인공이든 그 옆의 현학적인 친구이든 별로 진지하게 그런 것들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거든요. 적당히 대충 그런 시대에 갈만한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약간 얼간이처럼 보이는 주인공이 거기에 휘말려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은 착실히 그 시대에서 저질러볼만한 일들을 해보죠. 휴대전화 카메라 같은 것을 가져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여행에 대한 격식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저는 잠깐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과거 사람들을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어야 영화를 즐겁게 즐길 수 있을까란 걱정을 하며 나는 이 영화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관객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정도면 적절한 편이였구나 싶었습니다. 그래도 주인공의 글을 편집해준 아주머니는 어떤 분인지 지금도 모르고 있지만요.
사실, 주인공과 약혼녀, 그리고 그 주변 상황을 진지하게 생각하면 터무늬없이 비이성적이고 짜증나는건 사실입니다. 마치, 건축학개론에서 옛 첫사랑이 찾아왔는데 약혼을 때려치고 첫사랑과 연애를 다시 시작하는 급이죠. 게다가 그런 선택을 파리의 미묘한 예술적인 삶으로 덮고 넘어간다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애초에 그런 것이 주제가 아닌 과거 시대에 대한 팬픽 같은 것이였으니까요. 딱히 고리타분한 '어떤 시대 사람이든 과거를 열망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에 넘어갈 필요는 없겠다 싶었습니다. 영화로 만들어질만큼 그 과거는 매혹적인 면이 있잖아요. 그게 그걸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거지만. 저는 피츠 제럴드와 함께 그 시대를 살고 싶지 않은데 이후에 세계 대전과 대공황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주인공은 시대에 대해서 20년 토막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요? 뭐, 말하자면 그런 면면에 있어서 깊이 생각하면 지는 영화였습니다. 이야, 만 레이다! 으, 올곧은 헤밍웨이의 설교야, 그런데 너무 잘생겼어! 헤밍웨이가 자기 글보다 더 잘 쓴다는 확신을 가지래, 으악. 등이랄까. 그런 면에 있어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렇게 보이게 만든) 영화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이입은 못 하고 웃으며 봤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결말까지도! (주인공은 옆에 팽이가 돌고 있는지 확인해봐야 합니다!) 아마 주인공이나 애인이나 어느 쪽이 듀게에 상담글을 쓴다하더라도 좋은 말은 못 들을꺼에요.
케빈에 대하여는 미드나잇 앤 파리가 끝나고 10분 후에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이 영화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은 제목 뿐이었기 때문에, 무슨 영환지 처음에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밤에 베란다의 흰 커튼이 너울너울 거리고, 밖에서는 무슨 소린지 모를 반복적인 칙,칙,칙,칙,칙, (쉬고) 칙,칙,칙,칙,칙,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카메라는 흰 커튼을 조금씩 조금씩 확대합니다. 저는 귀신이라도 나올까봐 움츠러들어서, 그 다음 시퀸스를 잘 못 봤습니다. (그 뒤 시퀸스가 토마토 던지는 시퀸스였던거 같지만.) 저는 도입부에 영화의 장르를 파악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혹시 갑자기 놀래키려고 무언가 나올까봐 화면이 불안정해지거나 선연한 빨간 색 위주의 화면 조합이면 잔뜩 긴장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살인자의 부모' 비슷한 말이 TV에서 나와서 그에 대한 영화구나, 싶어 각잡고 봤어요. (처음에 밖에 빨간 페인트를 피로 착각하고, 무슨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인 스릴러 공포 영화인지 알았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하는데 감독이 공포 영화 잘 찍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이미 이 영화도 절반은 공포스럽지만.)
에바는 혼자 살고 있는데,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마치 외국인 혐오가 심한 곳에 사는 외국인처럼 온갖 눈초리와 심한 차별을 받아요. 맨 처음 나오는 건, 하얀 집 앞의 빨간 페인트 세례지요. 술을 마시고, 약을 먹으며 에바는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계속 행적을 따라가보면, 자신이 그런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항변하지도 않습니다. 나중의 과거 회상 장면을 보면 변호사 선임조차 안한거 같아요. 다 보고 나서 생각해보면, 어떻게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어떤 것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끝까지도, 주변 부에서 에바를 바라보는 관점에 희망적인 미래가 보이는 건 하나도 없거든요. 2년이나 지났지만 희망 고문에 가까운, 그런 몇몇 사건들만 보태지구요.
영화에서 거짓을 만들어 주제를 시사할 때, 저는 '이건 영화니까'하고 회피할 준비를 합니다. 사실과 영화는 다르고, 영화는 일부러 그런 것을 생각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사실과 멀리 떨어질 수가 있죠. '케빈에 대하여'의 케빈도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기 때문에 다른 답의 여지가 없을 수도 있구요. 하지만, 케빈은 그럭저럭 잘 만들어진 범죄자입니다. 저에게 케빈의 가장 핵심적인 대사는 이것입니다. "There is no point. That is point." (네이버 대사에서 발췌) 그렇기 때문에 저는 케빈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태풍이나 허리케인, 또는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파악한다면 영화 전체의 내용은 죄 없는 에바가 우연에 의해 끔찍한 상황에 맞닥들이며, 갈 곳 없는 분노들을 온당히 받아들이는 드라마가 됩니다. 최대의 피해자는 에바 자신이면서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렇게 가면 몇 가지 논제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되돌릴 수 없는 일어나버린 일에 대해서 어떻게 보상을 하고 문제 해결을 할 것인가, 또는 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별 논리와 생각 없이 돌팔매질 당하는 당사자와 그런 사회적 '해결책'에 대해 어떤 대안이 있느냐, 가 있겠죠. 어떤 것이든 쉽게 결정 내릴 수 있거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답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반대로 케빈이 순수한 괴물이 아니라, 삶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다른 결과로 수렴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에바나 프랭클린에게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따르는데,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부모'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과격하게 비사회적 자식을 사회화시키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 받아야 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겠죠. 누구도 삶을 2번 또는 3번 살지는 않으니, 예측하거나 경험에 의해 케빈을 '사실은' 이렇게 길러야 했다라는 결과론적 주장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신은 세계구급인 비이상성을 가진 자식을, 세계구급의 성인聖人인 부모한테 붙여주는 식의 친절함을 가지고 있지 않거든요. 그래도 관객들은 케빈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케빈을 대하는 부분에 대해서 아쉬워할 부분이 조금씩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저도 몇몇 부분에서는 그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에바의 난폭한 면이나, 프랭클린의 (에바의 감정에) 무관심한 면이 그러겠죠. 그런 것들이 어떠한 해결 없이 케빈은 (비정상적인 부분과 함께) 성장해가며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잘 조율된 행성인 지구에 생명체가 나타나는 것과 같이, 잘 조율된 환경과 성향 속에서 케빈이 종국의 결과를 맞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케빈은 어째서 그랬는가, 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위의 케빈이 한 말처럼, No point is point.니까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는 것이 목적이며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 번에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사실은 그게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케빈의 실체를 알고 있는 것은 에바밖에 없습니다. 케빈은 에바 앞에서만 가식을 떨지 않았거든요. 또한 에바는 애초부터 케빈을 싫어했습니다. 아기일 때부터, 끊임 없이 울며 자신을 괴롭힐 때부터 '이유 없는 적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바는 케빈을 싫어한 나머지, 프랭클린에게 별 말을 하지 않고 사랑할 대상인 실리아를 낳기까지 합니다. 케빈이 한 행동이 도가 넘었을 때를 제하고 본다면, 에바는 케빈을 '동등한 객체'로 생각했지만 (애가 아니라 그러한 행동을 한 이유는 증오 때문이다라는 추론 등의) 그 이후 사랑으로 나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스킨쉽이나 정말 사랑한다는 식의 표현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케빈은 에바에게 행복한 삶에 대한 걸림돌이었을 뿐이죠.
그래서 케빈은 에바도 다른 이들로부터 이유 없는(?) 증오를 경험해보길 바라며 그 계획을 성공시킵니다. 제가 이러한 생각까지 도달한 이유는 일부러 넣은 듯한 동치되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에바가 감옥에 잡혀있는 케빈을 면회하러 가는 장면 중 하나인데 거기서 케빈은 입 속에서 모아두었던 손톱을 하나 하나 꺼내어 철제 탁자 위에 나열합니다. 에바는 참지 못하고 나오죠. 다음 장면은 에바가 슈퍼마켓에서 10개들이 계란 한 판을 사는데 에바를 증오하는 누군가가 그 한 판을 전부 깨놓습니다. 계산대에서 에바는 그것을 발견하지만 도망치듯 계산하고는 그걸 가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집에서 그 깨진 계란 껍질과 계란을 그대로 조리해서 먹습니다. 계란 껍질이 들어있으니 먹다가 입에서 계란 껍질을 하나 하나 꺼내어 식탁 위에 둡니다. 그 두 장면은 매우 비슷해서 서로를 떠올릴 수 밖에 없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에바에게 온당하지만 온당하지 않은 증오를 받은 케빈이 손톱을 뜯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온당하지만 온당하지 않은 증오를 받은 에바가 계란 껍질을 입에서 꺼내 나열하면서 케빈의 어떠한 감정적 핵심을 강렬한 공유하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 후, 면회를 통해 처음으로 에바는 케빈을 안아주게 되죠. (케빈이 자기 방에 놔둔 단 한 권의 책이 로빈 훗이라는 것은 애증스러우며 아이러니컬합니다.)
생각해볼 바가 많고 뭉뚱그려 하나로 치부하기에는 복합적인 내용의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횡설수설하게 되네요. 완전 다른 소리를 하자면, 케빈과 실비아는 참 훈훈한 외모였어요. 에바와 케빈은 얼굴이 닮아보여서 정말 모자처럼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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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도 반갑네요.
광주생활 6년동안 광주극장과 광주 비엔날레는 제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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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극장 자체에도 슬슬 정이 가서 알아보니까 우리나라에서 꽤 오래된 극장 중 하나라고 해서 더 애정이 가려해요.
아마 그 만족감을 다른 영화관 가서는 느낄 수가 없으니 여기로 갈지도. 흥행작을 별로 보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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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믿음과 신뢰로 경영을 하는 건가요? 아니면 몇 몇은 이미 공짜로 보고 있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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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매가 필요없으니까 보통 구입하면서 들어가긴 하죠. 그런데 연속으로 2회정도 표 같이 구입하고 다음 영화시간 사이에 마실 것 사서 들어갈 때 따로 검사하는 게 없던 걸로 기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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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두 번 다 거의 시간이 다 되서 들어가서, 20분 전에는 입장을 합시다, 라는 설명 문구에 뻘쭘했는데 그 뻘줌함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나 겪는 거였나요! 낚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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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도 약간 추워서 무릎담요를 구비해놓더라구요. 광주극장에서 영화볼 땐 왠지 신용카드보다는 현금을 쓰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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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저도 전부 현금으로 봤네요. 무릎담요라, 연륜(?)이 느껴지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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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극장은 겨울에 아주아주 춥고, 무릎담요를 하면 아주 추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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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겨울에는 따뜻하게 입고 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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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은 제휴같은거 없이 할인이 안 된다는 건가요?
보니까, 조조할인이 있긴 한데 11시가 시작이라 11시 조조인건지 아예 없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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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가능할 때 조조를 최대한 챙겨봐야겠네요. 그렇다니 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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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극장 정말 부지런함과 상영일정이 딱 일치해야 다녀올 수 있어요. 한 관에서 계속 상영하지 않으니까요.
오늘 케빈에 대해서 보러갈 예정인데 상영하는 시간에 딱 맞춰서 일이 발생하는 바람에 다음 기회에.
단 이틀, 하루에 한 번 특별상영했던 조지 해리슨은 다행히도 보고 왔네요.
케빈에 대해서는 곧 가서 볼 예정이라서 잔인한 오후님 글은 읽다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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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해리슨 단 이틀하는 거였나요. 사전 지식 없는게 슬슬 후회되기 시작하는데요.
저도 파닥파닥 9월 6일 한다고 하니 보고 싶습니다만 그 쯔음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제가 스포일러 빼고 글 쓰는걸 잘 못해서 (빼고 쓰면 내용도 뭣도 없는 글이 되어서) 보고 오신 후에 글을 보시는게 좋을 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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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극장이, 제가 <케빈에 대하여>를 본 대구의 동성아트홀과 비슷한 입장이네요. 오래된 단관영화관인 점도 그렇고, 주로 예술주의적 상업영화나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한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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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종횡으로 관련이 있을꺼에요. 광주극장에서 무가지 책자를 가져왔는데, 동성아트홀도 "한국 시네마테크 협의회" 회원 단체라고 되어있어요. 얼마나 관련있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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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었어요~ 좋은 소개네요. 케빈에 대하여 꼭 보고 싶은데 상영관이 가까이 없어서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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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슴인지라 모든걸 쓰겠다고 [내용없음] 달고 썼음에도 불구하고 핵심적인 부분은 전부 피해갔네요.
이런 영화를 걸어주는 영화관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어디서 상영했으면 좋겠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