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리본 봤어요. (스포일러 있습니다)

 

서스펜스와 긴장감이 대단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어서 봤는지, 나올 땐 어깨가 뻐근하더라고요.
엄청난 사건이 하나 꽝 있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불길한 기운을 계속 안고 가니까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어요.

 

아이들에게 극도로 순결과 복종을 강요하고, 무관심 속에 방치하고, 심지어 물리적 폭력과 성적 학대도 서슴지 않는데, 저에게 이 영화는 일종의 아동학대극 내지는 아동수난극이었습니다.

 

겉으론 평온해 보여도 실상이 저러니, 아이들이 제 또래를 괴롭히고 아버지에게 증오를 보이고 어른을 불신할 수밖에 없지요.

 

이 마을의 끔찍한 비극 뒤에 클라라를 비롯한 저 아이들이 있을 거라는 의심이 점점 확신이 돼 가면서, 그 진상이 밝혀질까 긴장이 고조되던 중, 결국 의혹은 풀리지 않고 영화는 아이들의 아름다운, 어쩌면 그래서 더 섬뜩한 합창으로 끝나더군요. 1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함께.

 

어른들 사이에 만연해 가는 불신과 반목의 기운에 1차 대전의 징후가 있다면, 아이들에게서 불현듯 비치는 잔인한 모습에서 2차 대전의 징조가 보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아무튼, 과문한 저로선 140분 넘는 흑백영화가 지루하기는커녕 이렇게 염통을 쫄깃하게 해 준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나마 긴장을 늦출 수 있었던 선생과 유모의 연애담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어깨가 결렸을 것 같아요.

 

덧) 극장에서 다 내렸을 줄 알았는데, 고맙게도 씨네큐브랑 하이퍼텍 나다에서 다음 주까지 하더라고요.

 

 

 

    • 선생과 유모의 연애담도 사실..
    • 사실... 뭔가요. 제가 놓친 게 있나요?+_+
    • 키드먼/ 대단하네요. 이런 장기상영 참 고마워요.
    • 앗, 뭐 별 건 아니고 그 둘이 그려지는 모습 역시 그리 말랑말랑하기만한 건 아니라고요. 특히 마차타고 소풍 가는 에피소드 보면 그렇죠.
    • 아 그런가요. 선생이 결혼도 하기 전에 단둘이 외진 곳에 가자고 하니까 유모가 꺼려했고 결국 선생이 마차를 돌리던 장면 말씀이시죠? 음 그렇군요. 전 그저 마을 상황과는 조금 순진할 정도로 동떨어진 두 사람의 연애담이라고만 생각했어요.
    • 근데 두개 관 만명 돌파면 정말 대박 중의 대박이네요. 하긴 오세훈도 봤다는데 그런 무지렁이도 구경 갈 정도의 영화라면.
    • 그런가요. 저는 선생은 정말로 선량한 사람으로 생각했구요, 유모가 그 장소를 그토록 무서워하는 걸 보면 유모가 예전에 거기서 무슨 일인가를 당했었던 것 같다고 짐작했어요. 아내가 멀쩡히 앞에 앉아있는데도 대놓고 유모를 희롱하던 영감탱이도 있는 그런 시골구석이다보니 그 동네는 여자애들이 멀쩡히 자라는 것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곳 같았습니다.
      아이들이나 여자들같이 힘 없고 밖으로 내놓고 말할 수 없는 계층들을 구조적으로 착취하고, 그들도 분노를 불태우는 그런...
    • 저는 그 시대에 아이들이 용케 멀쩡히 컸으면 그 유모같은 맥 없는 청소년이 되는 게 아닌가 했어요.
    • 호레이쇼/ 동감이 되네요. 폭력의 피해자는 또다른 가해자가 되거나 아니면 폭력에 대책없이 무기력해지는 인간이 되는 것 같아요.
    • 봄고양이/ 저는 선생이 무지할 정도로 순진하다고 생각했어요. 믿고 털어놓은 아이의 꿈 이야기를 어리석게도 경찰에 얘기함으로써 아이를 곤경에 빠트리잖아요.
      결혼 전에 외딴곳에 단둘이 소풍을 가자는 것도, 연인을 위한 선의이겠지만 그 시대 처녀에겐 조금 난처한 제안이고요.

      호레이쇼/ 도대체 제대로 보호받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죠. 선생도 아무 도움이 못 되고.
    • 아동수난극이라니요. 좀 간접적으로 드러나길 바라지만 영화는 꼭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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