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매우 부정적이고 삐딱한 '응답하라 1997' 잡담

* 스포일러가 있겠지요.


모처럼 아주 오랜만에 재밌게 챙겨보던 드라마였습니다.

그래서 게시판에 이런 글

http://djuna.cine21.com/xe/4452506 

도 적었었구요.


근데 지난 주부터 묘하게 기대감이 떨어지더니만. 이번 주엔 바닥 치기 직전까지 내려갔네요.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읽어보니 저완 전혀 다르게 보신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서 좀 소심... 하게 적으려다 그냥 막 적습니다;


1.

로맨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감정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르의 특성상 어차피 다 뻔하게 흘러가긴 하죠. 하지만 그러니만큼 에피소드의 효과적인 배치를 통해 그 뻔한 흐름을 적절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게 잘 만든 로맨스의 조건이 아닐까 싶은데요.

일단 '6년 점프'의 문제가 너무 크게 느껴졌습니다. 어제 방송분을 보면 모든 등장 인물들이 바로 지난 회, 고등학교 졸업 당시 시점에서 바로 옷 갈아 입고 직장만 잡은 채로 이어서 등장하는 것 같아요. 6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질 않습니다. 그러니 분명히 감정은 그대로 이어지는데, 그렇게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너무 쌩뚱맞아요. 이렇게 6년을 삽입해 넣으려면 차라리 그 동안 각자 연애도 좀 하고 세상에 좀 치이기도 하고 그래서 성격도 이래저래 변하고... 이런 설정이라도 잡아줬음 괜찮았을 것 같은데요. 이건 뭐 그냥 '6년 흘렀다. 하지만 모두들 다 똑같은 마음이었다'라고 해 버리니 등장 인물들의 생기가 다 죽어 버리고 클리셰 덩어리로 변신해버린 것 같은 느낌이...;


이럴 거면 차라리 그냥 6년 점프 같은 건 빼 버리고 그 시절에 다 결판을 내 버리는 게 나았을 것 같습니다. 현재 시점이야 어차피 후일담이니 6년을 건너뛰든 10년을 건너뛰든 별 차이도 없잖아요.



2.

그렇게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 하게 되니 시원 캐릭터가 자연 재해급의 진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니 자기가 거절해서 6년을 안 보고 산 사람을 (그것 자체는 본인 잘못이 아니긴 하지만) 우연히 만나자마자 노골적인 낚시질로 유인해서 강제 인증 유도하는 게 도대체 무슨 짓이랍니까.

그 후로 계속 윤제에게 대놓고 들이대는 것도 97년, 98년이었다면 귀여웠겠지만 어제의 그 시점, 그 상황에서 그러고 있으니 한 대 패주고 싶어지더라구요. 파렴치한 것(...)

참 반짝반짝 생기발랄하고 귀여운 캐릭터였는데. 정은지양이 여전히 연기 잘 해주고 여전히 귀엽게 해 주고 있는데도 자꾸 보면서 짜증이 나서... orz



3.

이렇게 불만이 커지고 나니 그 외의 다른 자잘한 부분들, 이전까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부분들에도 다 태클을 걸고 싶어집니다.

병원 계단의 그 의자 그림 설정. 처음 딱 보는 순간 실망했습니다. 당연히 고백하겠지? 누가 엿듣겠지? 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었는데. 그걸 두 번을 써 먹으니 작가들 참 게으르단 생각이 들고.

매 회 끝날 때마다 나오는 떡밥 놀이도 짜증이 나고. (마지막회 제목이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라면서요. 그럼 이루어지겠네요 뭐. -_-;;;)

시도 때도 없이 튀어 나오는 '상황에 맞는 그 시절 노래' 퍼레이드도 과하단 생각이 들어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와도 별 감흥이 없고.

등장 인물들의 나레이션이나 대사들도 자꾸 오그라든단 생각이 들고 막;

특히 윤제의 '무기. 내가 무기징역이다~' 는 너무 견딜 수가 없어서 같이 보던 가족분에게 '우하하하하하! 내가 무기다 무기! 무기 징역!! 크핫핫하하하!!!' 이러면서 뛰어 놀았...;



4.

뭐.....

그래도 이제 몇 회 안 남았고. 또 아직은 딱히 크게 막장스럽다 싶은 느낌까진 없어서 일단 끝까지 보긴 할 것 같습니다.

이미 캐릭터들에 정도 들었고. 정은지, 서인국, 신소율, 이호원 등등의 연기도 여전히 그럴싸하구요.

하지만 그렇게 재밌게 보던 드라마의 시청이 갑자기 의무 방어전 같은 느낌이 되어 버려서 슬픈 건 어쩔 수가 없네요. orz



+ 키스 한 번에 감기 옮기는 것도 분명 아다치 미츠루 만화에서 보았다... 라고 생각했지만 그거야 뭐 꽤 흔한 설정이니까요.

사실 제가 원하는 결말은 이러다가 결국 시원과 윤제가 매우 평범한 이유로 자연스럽게 헤어지고, 시간이 좀 흐른 후에 다시 만나 친구가 되고. 둘 다 다른 사람 만나서 잘 살고 있으며 동창회 말미에 그 사람들이 찾아와서 인사하고 헤어지며 끝난다는 식의 전개입니다만. (아다치 미츠루의 모 단편 비슷한...; 전 이 동창회 설정도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하고 있는 아다치 빠입니다;)

이미 현재 시점에서의 떡밥 놀이가 있으니 윤제가 아니면 선택의 여지 없이 윤제 형과 결혼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럴 거면 그냥 윤제랑 결혼하는 게 나을 것 같긴 해요. -_-; 


++ 애프터스쿨 주연양은 딱 보는 순간 얼굴이 굉장히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잘 보니 눈썹 염색 때문에 얼굴이 휑해 보이는 거더라구요. 처음엔 좀 무서웠습니다.


+++ 오늘 네이버 인기 검색어에 '키다리 아저씨 결말'이 종일 버티고 있었던 걸 보면 이 소설도 이제 흘러간 고전인 모양입니다.

    • 저도 1번때문에 좀 위화감이 느껴졌어요..
    • 저는 뭐 어제도 그럭저럭 재밌게 보긴 했습니다만, 지적하신 부분 다 어느정도 동감합니다. 아까도 재방 보면서 그럼 그동안 윤제나 시원이나 윤제 형이나 다들 수절(응?)하며 지내왔단 건가, 저 우연히 듣기 설정은 좀...; 하면서 봤거든요.
    • 제가 쓴 글인줄 알았....모두 동의합니다. 저도 남은 2회는 의무방어전 치르듯이 봐야할거 같아요.
      로이배티님 쓰신대로 어제는 모든 설정이 눈에 거슬리더만요. 3일장 치르는데 번거롭게 2번 부산에 가는 설정도 이상하고, 성재와 할머니 에피소드도 억지스럽고....
    • 저도 비슷한 느낌이예요. 고딩때 에피소드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였었죠. 그래서 공감을 얻은 거일테구요. 그중에 큰 줄기였던 삼각관계에 대한 피로도도 쌍여가는 마당에 6년 점프된 비현실적인 상황과 변함없이 이어지는 삼각관계가 버거워져요. 고딩시절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성인이야기는 프롤로그로 한두회 담담하게 다루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 로이배티님 남자다잉~~
      빠가 까로 변태할 때 간혹 우하하핳 뛰어놀기도 하죠.

      까이지도 못하는 아오안 드라마들 헷헷ㅎㅎ

      은지양 사투리 부산 맞나요? 서부경남 진주쪽 사투리 같아 보이던데
      • 사투리 감별 능력은 없는 서울사람입니다만, 정은지는 부산 맞고 서인국이 울산인 걸로 알아요.
    • 공감합니다 있을 수 있는 지적이고 저도 느꼈던 부분들입니다.

      근데 전 확실히 한 번 빠지면 일단 봐주는게 있나봐요. ^^;
    • 나름대로 두근거리며(?) 적었던 글인데 공감해주시는 반응이 많아서 안심했습니다. 감사. (제가 원래 한 소심합니다;)
      다 애정이 있으니 까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우하하핳하고 뛰어 놀았지만 아직 까로 완전히 변신하진 않았구요. ^^;
      남은 두 회는 충분히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방영 시간 길게 잡고 한 주에 한 편씩 방영한다는데. 거기에서 잘 풀어서 깔끔하게 끝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 어제 준희 때문에(... 나름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1번에 절실히 공감합니다. 아니 무슨 '반피'들도 아니고 대학 들어가고 졸업하는 그 풍랑의 세월 속에서 친구 6명 중에 5명이 고등학교 때의 연애감정이 그대로 살아있다 못해 순수한 그 자체로 있다는 게 허이고 참. 고등학교 때는 공감가고 애들 노력하네. 힘들겠다. 싶던 모습들이 나이 먹은 후에도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대로니까 나이 헛먹었네. 라고밖에 안보이더군요. 중간에 다른 연애도 하고 뭐도 하고 하다가 오랜만에 만나니까 묵은 불씨가 되살아났다. 라면 좀 이해라도 해보겠는데 이 아이들은 그 시절 그대로 냉동되었다가 단지 신분만 상승된(... 채로 6년 후에 해동 시켜 놓은 것 같아요.
      고등학교 처음부터면 대부분 9년간 연애나 짝사랑을 해 온 아이들인데 피디가 애들을 순결한 그대로 놓아놓고 싶은 강박이 있다면 최소한 그 세월의 피로라도 나와야 하는게 아닌지. 9년간 짝사랑을 하려면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준희야 너에게 하는 말은 아니야)
    • 정말 떡밥때문에 이젠 짜증이 살짝 나더라구요.
      2화 남았다니 더이상 장난질은 안 하겠죠? ㅡ.ㅡ;
    • 맞아요! 대공감!
      지난번까지는 뭐 그럭저럭 괜찮았는데..6년의 대점프...
      구구절절 공감가네요..
    • 구구절절 공감입니다...

      간만에 괜찮은 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흑.
    • 영화 건축학개론처럼 90년대의 추억 때문에 거품이 낀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도 맥주와 영화, 드라마는 거품은 거품대로 즐기는 맛이 있으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보았어요. 눈에 뭐가 씌였나ㅋㅋ

      서울말 갑자기 쓰는 건 정말 못견디겠더군요. 현실에선 부산 친구들 만나서 서울말을 썼다간 뼈도 못추림ㅋㅋ
    • 공감공감이요. 어제는 보면서 좀 짜증도 나더라구요. 90년대 이야기 정말 좋았는데, 6년 점프한 뒤부터 이야기나 캐릭터들이 매력이 없어졌어요. 직업적 리얼리티도 잘 못살리고 다들 일편단심 사랑 하고있었다는 설정도 전혀 이입 안되고.. 내가 이 드라마에 기대한건 이런 질질끄는 삼각관계가 아니었는데;; 앞으로 2주간 챙겨보긴 하겠지만 기대는 다 접으려구요.ㅜ
    • 저도요! 저는 9회말 2아웃을 생각하며 그렇게 남편으로 낚고 싶다면야 다들 딴 연애 좀 하고 오던가..라고 생각했건만..다같이 수절하고 지조를 지키는 모습 보니까 짜증났어요. 여러분 주변은 그런가요? 제 주변은 단 한명도 안그랬거든요.-_-대통령 후보까지는 봐줄 수 있었는데 이건 정말 견딜 수 없었어요. 그래도 잉구기의 가느다란 목선 본 것으로 이번 시간 만족합니다.ㅋㅋ
    • 1번 같은 경우는 보면서 저는 아마도 제작진들은 90년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시절에서 한발짝도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인가보다.. 하고 결론을 내렸어요. 추억에 집착하면 퇴행이 되는구나, 이런 생각? 무기징역 같은 대사도 저도 좀 오버라고 생각했고요.

      전 무엇보다 아다치 미츠루를 지나치게 참고한 것이 거슬려요. 너무 많은 에피와 국면전환에서 h2가 생각나서 몰입이 안될 지경. h2를 보면서 아 이 사건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 하고 포스트잇 붙여놨다가 그대로 쓴 느낌? 평행선을 긋던 감정이 '장례식'으로 재회해서 급전환되는 것도 그렇고, 불량배가 쫓아오는 걸 남주가 뛰어나가서 막아주는 것도 그렇고, 주요 설정과 수돗가 씬은 말해서 무엇하겠느냐만은.. 아, 제가 h2빠라서 더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일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도 이 드라마 좋아해요. -_-;; 너무 심하게 잘난 두 형제 설정은 좀 빼고요. 제일 좋아하는 건 여쥔공의 부모님. 그 부분은 정말 잘 만든 것 같아요!
    • 저도 보면서 과열된 반응이 거품이라 느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에피까진 한 번 보면 빠져들어서 봤거든요. 근데 어제 에피는 좀 실망스럽더라고요. 보통 사투리 쓰는 애들은 고향친구 만나면 바로 사투리 쓰잖아요. 근데 윤재와 준희가 서울말 쓰는데 이건 뭐 다른 드라마같기도 하고.



      그리고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게 대학생활인데 제작진들은 그냥 '다녔다치고'로 대충 넘어가더니 아직도 시원이 남편 낚시중..그리고 검사에 의사에 영화감독 준비.. 응답하라1997의 고딩들은 그냥 내 친구, 나 같았는데 그들이 그린 현재는 너무 이상적이라서 갑자기 멀어진 느낌이에요. 여기저기 극찬하는 이들을 보고 약간 '읭?'스러웠는데 이 글 보니 반가워서 말을 쏟아내게 되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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