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연애얘기 듣는 것의 곤욕스러움.

언제부턴가 저에게 종종 연애상담(!)을 하러 오는 후배 K군이란 친구가 있습니다.

남의 연애관련 얘기 듣는 걸 군대간 남친이 휴가나와서 군대이야기+축구이야기+게임이야기를 삼단콤보로 늘어놓는 걸 듣고 있어야하는 20대 여자만큼이나 싫어하는 저로서는 큰 곤욕이 아닐 수 없었는데, 이 친구가 워낙 외곬이라 그나마 저한테만 이런저런 자기 얘기를  털어놓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애상담계의 선무당을 자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특별한 도움이나 충고를 해준 건 아니고 대부분 들어주기만 했지만요.

 

이 친구가 뭐 아주 잘 생긴 친구는 아닙니다만, 마른 체격에 키도 적당히 크고, 꾸미기에 따라서 외모경쟁력도 있어 보이는 친구인데

다만 지극히 소심한 스타일의 청년입니다. 낯선 사람이나 불편한 환경에 있으면 불안해하는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더군요.

말 주변도 없는 편이고요.  그리고 자라오면서 주변 환경에 여자랑 자연스럽게 어울릴만한 접점이 없던 것 같더군요.(뻔한 패턴;)

 

제가 쭈욱 들어본 바로는 자존감이 낮은 게 제일 문제같았습니다.

직접 대놓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여자한테 사귀어 달라고 너무 "구걸한다"는 느낌이 들었달까.

흔히 말하는 "밀당"의 기술이 젤로지요.

 

처음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처자들한테 큰 용기를 내서 대시했었는데, 모조리 거절당해서(그것도 몇 번은 상당히 굴욕적으로)

자기말로는 크나큰 내상을 입었다더군요. 그래서, 자기가 주제를 모르고 과욕을 부렸기 때문에 안 됐던 거라고 자책하면서 이제 자기는

자기 분수에 맞게 절대"욕심"을 부리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냥 고개만 끄덕끄덕해주었습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냐...

"현실적인" 눈높이에 맞추어 그 뒤에는 한 명만 집중공략하신 모양인데, 아무 성과가 없이 끝났답니다.

자기가 여자랑 사귄건지 노예노릇을 한건지 모르겠다고 나지막히 투덜대면서요.

(이런 말은 상대쪽 말도 들어봐야 알겠지만) 거의 모든 데이트비용을 자기가 다 냈고, 거의 다 자기가 만나자고 했음에도

상대는 전혀 마음을 열지 않았대요. 열번 만나자고 사정사정해서 두 세번 만남을 가지는게 고작이었고, 손거나 팔짱끼거나 같은 가벼운 신체접촉 하나 허락해주지 않았고, "그냥 니가 날 얼마나 위하는지 보자"같은 태도였다는군요. 헤어질 때도 그랬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이제 "내가 좋아하는 여자는 안 된다! 나를 좋아하는 여자면 누구라도 상관없다"라고 하더군요.

그 때도 그냥 이야기만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찾아왔을 때는 "마침내 나를 좋아하는 여자가 나타났다"라고 말하는데 전혀 낯빛이 기뻐보이지 않더군요.

말을 들어본 즉슨,  자기에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보이는 여자가 드디어 나타났는데, 정말 미안하지만, 도저히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분 얼굴을 우연히 본 회사동료 중에 좀 짖궂은 사람한테는 "잘 어울린다" "잘해 보라"라는 식으로 놀림감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어느 정도길래 그러냐고 물었더니,  치질때문에 병원을 찾았을 때, 자기를 진찰한 남자 항문외과 의사(-_-)를 닮았다고 합니다.

보니까 

도저히 이성적으로 끌리지 않는다<-> 외모로 사람 차별하면 안 됨+다른 건 좋은 사람임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갈등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남녀관계는 친구사귀는 거랑 달라서 상대에게 매력이 느껴지지 않으면 억지로 지속할 수 없다" "니가 우유부단하면 그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라는 권고적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소심한 친구라 알아서 잘 에둘러 말하겠지 싶어서요.

그랬더니 이 녀석이 무슨 일로 제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냈는지, 이번에는 상당히 직설적으로 말한 모양이에요. (뭐 대충 OOO씨는 저에게 도저히 여자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같은 정도?)

 

그 일로 어제 저를 찾아와서는 그 때 그 사람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얘지더니 나가버렸고, 그 뒤로 그 사람과 연락이 두절되서 미안해서 신경이 쓰인다는 겁니다.

 

솔직히 이제는 저 녀석이 또 무슨 떡밥으로 나를 괴롭힐려나 싶어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심정이 들기도 하는데 또 하는 얘기 듣고 있으면 딱합니다. 다음 번에는 "포기하며 편해"를 처방해 줘야 하나. 아니면 "너도 이제 나쁜 남자"를 처방해줘야 하나.

아니, "그렇게 간절하면 해당분야 전문가의 상담을 받고, 이제  나한테 오지 마" 싸인을 보내야 하나 싶네요.

 

    • 자기일은 스스로 해야 성인, 을 처방하면 안되나요;
    • 그분은 이미 애인이 있거나 결혼한 여성분에게 상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nomppi님이 이미 좋은 조언 많이 해주셨겠지만, 이성에게서 상담을 받으면 어필하는 테크닉이나 외양의 꾸밈새, 연애에 대한 여자의 심리 등에 대해 좀 더 실질적으로 조언을 받을수 있을터이니.. 저 남자분은 그 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네요.
    • 한번만 제대로 연애를 하면 다~나을병일텐데...ㅠ
    • 너도 이제 나쁜남자~ 랄랄라~

      ...
    • 아.. 남 일 같지가 않네요. ㅠㅠ
    • 차라리 고도의 염장 애인 자랑질이 듣기 편해요~연애얘기가 아닐지라도 불평불만이 계속되면 듣는 사람이 지치죠;;;
    • 역지사지해보면 알텐데...본인이 분수에 맞는다고 생각해서 들이댔던 분이 딱 본인의 지금 심경일텐데 뺨맞은 복수를 엄한데다 하는군요.

      그리고 본인이 거절한 그분이 객관적으로 그분에게 적당한 조건의 사람일걸요.

      뻔한 싱글의 눈높이차이네요
      • 저도 글 보면서 떠오르는 사람들이 몇 있네요. 최고의 킹카퀸카만 찾아다니면서 이 세상 사랑노래는 죄다 쓰고 가뭄에 콩나듯 대쉬해오는 사람은 수준낮다고 욕하고.주제도 모르고 감히 어딜 넘보냐고 욕하지만 사실 그 사람들이야말로 딱 비슷한 수준인지라 그네들 아니면 연애가 어려울텐데 걍 만년솔로해라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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