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제가 자격없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저는 성공의 기억이 별로 없어요. 아주 없는 건 아닌데 제가 이루어 낸 것들이 미미하고 보잘 것
없어 보여 그것들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죠. 이런 일은 아주 쉬워요. 남들도 다 하는 건데, 남들은
더 잘했는데, 내가 하는 것 쯤이야 우습지 않은가. 이런 식이죠.
과거 내가 이걸 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따위는 잊어버려요. 남들에 비하면 내가 한건
고생도 아니었어. 아마, 남들이 그만큼 했으면 나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었을 텐데, 난 그만한
노력에 겨우 이정도니 비할 바도 아니지.
이런 식이면 점점 나를 바닥으로 내려치는 결말만 초래하게 되죠. 더더 바닥으로 끌어들여요.
남, 남... 남이 문제죠. 전 제가 되고 싶은게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흔히 하는 농담처럼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전 이 기억 따위 다 잊고, 전생에 대한 것도
필요없고, 나는 모르는 생판 남이 될 겁니다. 걱정, 두려움, 불운 등등...
모두 내다버리고요. 단 하나 가지고 싶은건 성품입니다. 그건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저는 예전의 저였던 사람을 현재의 저인 사람이 끌고 미래의
제가 될 사람에게 데리고 가야 해요. 가끔 그것이 너무 싫어서 중간에 무토막 자르 듯 딱 끊고
가장 나은 상태였던 때의 저만 미래의 저에게로 데려 가고 싶어요.
그럼 제가 현재로 끌고 온 '좀 더 나은 나의 과거'는 '미래의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까요?
거부하고 싶었던 과거를 끊어 내는 것이 과연 미래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요? 사람은 과연 변할 수 있을까요?
그럼 무토막처럼 잘려 떨어져 나간 가장 형편없고 불쌍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나조차도 싫어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