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조세희, 다자이 오사무.

 

이 세 작가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건 아니고, 최근에 읽은 책들 중에서 제일 좋았던 책이

[내가 훔친 여름],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사랑과 미에 대하여]라서 제목에 나란히 써봤습니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식견이 많이 부족한지라  뭔가 제대로 된 감상문은 못쓰겠지만

셋 다 재미있었어요. 읽고 나서 각각 다른 느낌으로 나름의 울림도 있었구요. 소설에서 재미와 울림은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그리고 세 사람 다 문장을 굉장히 잘 쓰는 작가들인 것 같았어요. 다자이는 외국사람이라 똑같이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조세희랑 김승옥은 그 시절에 이렇게 세련된 문체를....;; 이 사람들 나왔을 때 작가 지망생들 중에 충격 받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김승옥씨의 [내가 훔친 여름]에는 표제작이랑 [60년대식]이라는 중편?장편?이 실려있었는데 둘 다 신문연재 소설이더라구요.

근데 그 연재지의 특성(?) 때문인지 중간에 작가님이 좀 멘붕이 오신 듯한 느낌이......작품이 좀 난잡해지고ㅋㅋㅋ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이제 김승옥 전집 중에 강변부인만 보면 다 보는건데 지금은 하나님을 위해 글을 쓰고 계신다고 하더라구여..이게 말로만 듣던 영자 희귀템 회수인가....

뭘 쓰시든 작가님 마음이지만 이왕이면......싶은 마음이 들어서 좀 많이 섭섭해요.

 

조세희씨의 난쏘공은  고등학교 다닐때 지문으로만 접해봤던 책인데 그땐 아무 생각이 없었고....

나이가 들어 읽어보니 와 이걸 왜 여태 안읽었지. 굉장히 무겁고 슬픈 이야기를 담담하고 투명하게 쓰셨더라구요.  글이 지금봐도 존나짱 세련되서 깜짝 놀랐어요.

 

좋았던 구절 하나 붙여볼게요.

 

[대기 속 물질의 아주 작은 알갱이들이 빛을 운반해오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흰 벽이 저녁놀빛을 숲쪽으로 받아 던졌다.
돌아간 할아버지의 늙은 개가 그 숲에서 기어 나왔다. 달아오른 몸으로 나를 받아들이려고 했던 여자아이가 늙은 개를 불렀다. 개 밥그릇을 개집 앞에 놓아준 여자아이가 늙은 개의 목을 꼭 껴안았다. 난장이의 큰아들이 끌려나갈 때 난장이의 부인이 그런 몸짓을 했었다. 공원들은 밖으로 나가 울었다. 지섭은 올라올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사랑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때 수위가 철문을 밀어붙이는 것이 보였다. 이팝나무숲을 끼고 돌아온 아버지의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섰다. 내일 아무도 모르게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보자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약하다는 것을 알면 아버지는 제일 먼저 나를 제쳐놓을 것이다.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밝고 큰 목소리로 떠들 말들을 떠올리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中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다자이 오사무의 [사랑과 미에 대하여]는 지난달에 초판이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이에요.

어느 출판사에서 다자이 오사무 전집을 내 줄 생각인가봐요. 저는 [인간실격]이랑 [나의 소소한 일상] 밖에 못읽어봤었는데 아주 고맙습니다.

읽는데 쉼표가 너무 많아서 처음엔 숨이 깔딱거려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한부분 옮겨적어 볼게요. 읽어보세요....

 

[난 알아.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 정도, 훤히 알고 있지. 그걸 모를까. 난, 버러지같은 인간이야.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어. 목숨을 주겠어. 아아, 믿어주지 않을까. 그거지? 꼭 그게 아니더라도 대강 그런 거겠지. 하지만, 잘 들어. 진실이라는 건, 속으로 생각만 해서는 아무리 깊이 생각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굳은 각오를 하고 있다 해도, 그냥 그것만가지고는 가짜야. 속임수지. 마음을 잘라내어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성실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해도, 별 다른 의미는 없고, 잠자코 있으면 그건 거만이야, 혼자 우쭐한 거야, 독선이지. 진실은, 행동이야. 애정도, 행동이야. 표현 없는 진실 따위, 있을 턱이 없어. 애정은 가슴속에 있고, 말 이전의 문제라는 거, 그것도 결국, 수사적인 거잖아. 잠자코 있다 한들, 몰라. 그렇게 세상이 너를 상대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진리는 느끼는 게 아냐. 진리는, 표현하는 거야. 시간을 들이고, 노력해서 만들어내는 것이지. 애정도 마찬가지야. 자기 속을 빤히 들여다보인다는 생각이나 허무하다는 감정을 억누르고, 사람들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게 애정의 바람직한 형태야. 사랑은, 최고의 봉사야. 티끌만큼이라도 자신의 만족을 생각하면 안 돼.] 

 

쉼표 진짜 레알 많지 않나요... 역자 왈 쉼표를 다용하는 다자이의 원문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ㅎㅎ

 

다자이는 진짜 세기의 찌질이에요...수퍼 찌질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가 떨어졌다고 심사위원인 설국작가 그 사람한테 [이개새끼 씌빡 그래 니는 가부끼나 보고 새나 키우고 고상하게 산다 이거지 죽여버릴거다]  이런 편지나 보내놓고 몇년 뒤에 급전이 필요해서 꼭 아쿠타가와 상의 상금이 받고 싶었는지.. 또 그 작가한테 편지를 보내서 [헤헤 열심히 잘썼음다 상좀줍쇼] 이러고 앉았네요...ㅋㅋㅋㅋ

근데 이 작가님 너무 좋아요. 일인칭 작품들 속의 모든 화자가 여자든 남자든 늙었든 젊든 다 자기 자신 같고, 하나같이 중2중2하고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고) 한심하고 사랑스러워요.

이번에 나온 이 책의 번역자가 작가에 대해 많이 공부한 사람인 것 같았어요. 중간중간에 작품해설도 잘 되어있고, 뒤에 붙은 설명글을 읽으니 다자이의 인생이 한눈에 조망되네요ㅎㅎ

수록작 중에 [여학생]이라는 게 있는데.....이게 진짜 징글징글해요. 저 나이때의 여자아이 머릿 속에서 3년 정도 먹고 자고 한 것 처럼 징그럽게 잘 써놨네요...추천드립니다.

 

 

한줄요약: 김승옥조세희다자이오사무 짱 좋다구여!

 

 

 

 

    • 다자이오사무는 지독히 원래 그런 사람인데 안변하고 살았고 살아졌어요.
    • 제 십대 이십대를 사로 잡았죠. 김승옥.

      무진기행도 많이 보니 무뎌지더라구요. 전집을 나오자마자 샀는데 즉시 맨 윗쪽으로 놀려놨어요. 강변부인, 보통여자 아이구
    • 세 분 모두 좋아하는 분들이에요. 특히 김승옥씨 문장은 정말 좋아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저도 말씀하신 세 작가 모두 정말 좋아해요. 덤덤하고 강렬하죠.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글도 비슷한 느낌이라 좋아하구요.
    • 조세희씨 만나본 적은 없지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최고의 소설을 써주셔서요.
    • 난쏘공 다시 읽어야겠어요.
    • 김승옥도 좋아했지만...난쏘공 정말 대단했어요. 문체도, 내용도 모두 충격적이었어요, 이렇게 쓸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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