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심플하게 보는 인민혁명당 사건
인혁당, 그러니까 인민혁명당 사건은 많은 분들이 좋은 글을 쓰셨으니 조금만 뒤져보면 다 알 수 있을 거여요. 닭모이 김형욱이라던가, 유신이라던가, 한국 법조계 암흑의 날이라던가. 그렇지만 여러가지 편견이나 지식이 골아프게 하기 일쑤죠. 그러니까 아주 심플하게 사건의 맥락을 소개해드릴께요.
뜬금없지만 조선시대 배경으로 생각해볼께요. 아무래도 공산주의 이야기가 들어가게 되면 색안경을 끼게 되니까 일부러 옛날로 잡아봤어요. 우선 먼저, 찬탈을 통해 누군가가 임금이 되었답니다. 뭐 세조도 있고 인조도 있는데 세조 쪽이 어울릴 거 같아요. 그렇게 나라의 통치권자가 되었지만, 당연히 그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꽤 있었어요. 웬지 사육신이 금방 떠오르겠지만, 사림이라던가 재야 유학자라는 느낌이 더 어울릴 거 같아요.
그렇게 긴장감이 고조되던 찰나 빠앙 하고 터진 거여요.
"역모다!!! "
당시 임금의 오른팔이던 도승지 김형욱(나중에 닭모이 되었다는 소문의 그 분)이 역모를 꾀하여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흉악한 역적의 무리들이 있다고 발표를 한 거여요.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랏줄에 묶여 의금부로 끌려갔습니다. 그래서 46명씩이나 우르르 잡아가두고 보니 뭐 그 사람들 하는 직업이란 게 신문기사, 강사, 회사원, 농협직원, 서점 직원 등등이었지요.
그런데 조사를 해보면 해볼수록 이들 혐의란 게 없는 거여요. 뜬금포 역모란 게 다 그렇죠 뭐. 그래서 수사하던 의금부 도사(검사)들은 "이건 좀 아닌 거 같아요." 하며 수사를 거부하고 사직을 하기까지 했답니다. 게다가 조사를 해보니 없는 혐의를 뒤집어 씌우면서 자백하라고 심하게 고문을 한 사실마저 밝혀졌습니다. 호랑이를 때려잡는다던 의병장 김덕령도 죽인 고문입니다. 그렇게 당했으니 당연히 없는 죄도 불어댈 수밖에 없었지요. 이 사실이 알려지고 시끄러워지자 당연히 윗님께서는 어떻게든 기소를 하라고 의금부를 달달 볶아댔지만, 혐의가 워낙 희미한지라 그냥저냥 어찌저찌 사소한 죄목으로 붙들어서 1~3년의 귀양(...)형만 정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뒤. 그 때 세조(...)는 자기 맘대로 나라를 다스리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자기 말 잘 안 듣는 의정부(...)도 해산시키고, 자기더러 찬탈자라고 욕하던 재야의 선비 장준하를 스삭 해버리고 계엄령을 선포했죠. 당연히 선비들과 유생들은 이건 아닌 거 같아요! 하고 들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이 때 "10년전 그 역모를 하던 무리들이 재결성해서 역모를 한다!" 고 빠앙 터졌습니다. 이것이 인민혁명단 재건위 사건이어요. 임금(...)은 자기를 반대하는 선비들과 유생들은 역적들의 조종을 받고 있는 것이라 선포하고, 그 역적들을 색출해낸답시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수수 잡혀들어갔죠. 얼마나 신속했던지 어떤 분은 잠깐 마실간다고 나갔는데, 그 길로 돌아오질 않았대요. 그대로 잡혀갔던 거거든요. 근데 10년전 역모 사건 때와 달랐던 것은 의금부에 양심적인 사람이 없었던 거죠.
이 사건이 3심까지 가는데 10개월 밖에 안 걸렸어요. 법정도 그냥 법정이 아니라 '비상'법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비상하게 빨랐지요. 당연하지만 10년전과 마찬가지로 국문장에는 살타는 냄새는 물론 욕탕에는 물이 넘쳐흐르고, 죄인들은 만신창이가 되어갔지요. 그러면서도 잡혀간 사람들은 억울하다고, 억울하다는 말은 잊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역모가 그러하듯이 - 증거가 뭐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재판은 막무가내로 진행되었습니다. 재판부는 앵무새처럼 사형, 사형, 사형을 세 번 외쳤고 증거고 뭐고 혐의고 뭐고 애매한데도, 판결이 내려진 지 18시간만에 8명이 가족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답니다.
여기까진 그래도, 정말, 그냥 백보 양보해서 정신나간 짓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더 잔인한 일이 벌어졌답니다. 돌아간 사람들의 시신을 가족들에게 돌려주는 대신, 모조리 화장해버린 거여요.
이유는 간단했죠. 다행히 시신을 돌려받았던 가족이 있었는데 관을 열고 보니 완전히 만신창이였던 거여요. 손톱발톱 다 없고, 발 뒤꿈치는 시꺼멓게 타들어가 살점이 없고. 이게 밝혀지면 시끄러워질 게 분명했으니 아예 증거를 인멸하려고 든 거죠.
그렇게, 참으로 기막힌 일이 벌어졌답니다. 조선시대처럼 이야기했지만 그렇게 먼 이야기도 아니어요. 40년 밖에 안 된 일이고, 당시 시신을 넘겨주지 않으려고 버티던 분은 다리를 다쳐 아직까지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거든요.
8명의 생명을, 그리고 이후 감옥에서 돌아가시거나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뜬 분들을 생각하면. 또 역적이라고 고초를 겪었던 그 분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슬픈 일이어요. 모든 역모들이 그랬지만 이렇게까지 얼렁뚱땅한 일이 없었어요. 증거가 밝혀졌다고 주장들을 하는데 그게 참 애매해서... 차라리 꿀로 주초위왕이라고 썼던 기묘사화라던가 허균의 난이 그럴싸하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왕조시대라고 해도 임금이 맘대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 목숨이 귀중하니까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있었고, 당연하지만 증거도 없이 사람을 몰아세우는 건 참으로 나쁜 일이어요.
그리하여 이 사건 이후 대한민국의 국격은 바닥에 헤딩을 했으니...
세계적으로 한국은 저어기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의 어딘가의 섬 구석마냥 독재자가 맘대로 사람을 죽여대는 나라와 동급으로 여겨졌지요. 그 전에도 재야의 사람이 납치되거나 의문사를 당하는 일이 벌어진데다, 이건 아주 대놓고 법질서의 이름을 내세워 사람들을 죽였으니까요.
이 사건의 가장 무서운 것은, 나라가 얼마든지 없는 역모를 만들어내서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다는 거고,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찍 소리 못하게 되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나라 안팎에서 욕 뒤지게 먹으면서도 그 국가의 지도자란 사람이 한 말은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거였고 여기에 부응하여 연설을 한 게 김종필이었습니다. 아마도 실정에 맞는다는 게 납치, 감금, 고문, 살인을 말하나봅니다.
사실 이 사건은 보면 볼 수록 머리에 열이 올라 편안하게 쓰지 못 합니다.
너무 기가 막히거든요. 마치 신분으로 차별하거나 전쟁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사연을 보는 거 같아요. 그나마 조선시대나 되면 '사화로 죽었다.'라고 피냄새 안 나는 심플한 글자로 읽게 되지만, 이 사건은 그 때 많은 사람들, 가족들이 흘렸던 눈물과 피가 아직까지 생생하게 살아 냄새를 뿌리고 있으니까요. 읽으면, 보면, 가슴이 아파요. 마지막 순간까지 억울하다고 외치던 사람들. 빨갱이라고 놀림받고 돌팔매질 당했던 가족들. 마지막 순간 작별도 못하고 한줌 재로 돌아온 사랑하는 사람. 다시 못 볼 사람들. 평생 몸과 마음의 상처를 끌어안고 고통스럽게 울던 사람들.
더 어이없는 일은요, 그렇게 공포정치를 해서 나라를 꽉 잡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는 거여요. 억누르면 억누를 수록 사람들은 고분고분해지기는 커녕 더욱 심하게 반발을 했죠. 그 해 여름엔 암살시도가 있었으며 전국에서 유신반대시위가 일어나지요. 그리고 5년 뒤에 아시는 바 대로 누군가의 목숨과 함께 유신이 끝장나죠. 어디선가 박근혜 전 대표가 일찍 부모님을 잃어 불쌍하다, 라고 하던데. 그러게 말여요. 독재정치 안 했더라면 총 맞을 일도 없었고 가족들과 잘 살았을 텐데.
유교에서는 자식이 부모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신고하는 것을 잘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불효로 보기도 했지요. 뭐 그럴 거여요. 그건 옛날이니까.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근본은 유교가 아니라 민주주의여요. 무엇보다도 국민에게 선출되는 대통령이라면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잘못된 권력남용의 예를 놓고 어떻게 생각하는 지의 견해를 밝혀야 하죠. 그런 비극인데다가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사건이 다시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도 말이지요.
페북에 올린 글 재활용합니다. 랄까 여기 올린다고 하다가 깜빡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