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전,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광해'
1.
낮에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전을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현대 미술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가 듀게에서 추천 리플들을 보고 보러 갔어요. 예상치 못했던 큰 감동을 받고 왔습니다. 모든 전시물에 감정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듯했어요.
'러버보이'라는 작품을 볼 때부터 가슴 한 켠이 아리더니, 퍼즐 작품들 앞에서 울컥하던 게, '초상'이라는 미디어 작품 앞에서 더 강해지고, 구름 낀 하늘을 나는 새 사진 앞에서 눈물이 터져 버렸습니다.
미술 작품들을 보면서 이토록 크게 공명을 느낀 적도, 위로를 받은 적도 처음이었습니다. 그 외로움, 소통하고픈 욕구, 세상에 뚫고 들어가 자신과 자신의 욕망을 증명하고픈 욕구, 그 모든 것들이 제 안에서 쿵쾅거리다 터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입구와 출구가 같아 들어올 때 지났던 '시작'이라는 작품과 '북녘'이라는 작품을 다시 지나야 했습니다. 들어갈 땐 큰 감흥 없이 지나쳤던 작품들인데 나올 땐 '시작'이란 작품의 발들이 제 얼굴을 몸을 때리는 게 마치 작가의 손길인 것 같고, '북녘'의 그 열망 어린 불빛들이 제 등을 따숩게 밝혀주는 듯했습니다.
매일 학교 앞을 지날 때마다 보았던 침대 빌보드 작품도 이제는 예전과 다르게 보일 것 같습니다. 듀게 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아니었으면 이 전시 지나쳤을지도 몰라요.
2.
그 뒤에는 동생과 함께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보았습니다.
김소희, 이승헌을 4년 전 '원전유서'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 땐 워낙 극의 스케일에 압도되어 배우들 연기에 크게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그 땐 연극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고요. 두 배우가 유명한 배우였단 것도 최근에서야 알았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들이 내뿜는 에너지를 온몸으로 전달받고 왔습니다.
극 자체도 좋았습니다. 원작의 내용을 대폭 압축하면서 인물들의 심리만 극도로 강조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개인적으론 이런 각색도 맘에 들었습니다. 스텔라의 마지막 행동이 바뀐 것도 괜찮았고요.
블랑쉬의 첫 대사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오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정거장을 더 가면 천국이라던데...' 대충 이런 대사였는데, 스텔라의 집이 천국일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그곳이 묘지였다는 그 아이러니가 전체적으로 나무의 느낌을 살려 커다란 나무 관의 느낌을 주는 세트 구성으로 구현된 것도 좋았습니다.
공연 뒤에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는데 평소 잘 듣지 못했던 배우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건 좋았지만, 질문들이 썩 실하지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3.
연극을 보고 동생과 저녁 먹고 집에 오던 길에 갑자기 삘 받아서 집 근처 극장에서 '광해'를 봤습니다.
워낙 호평이 많아서 기대가 컸는데, 대실망이었습니다. 광해군의 큼지막한 업적을 다 천민 대타의 공으로 돌리는 것부터가 굉장히 가볍고 무책임하게 느껴졌어요. 연애나 춤, 요리 같은 것도 글로 배우면 비웃음 사는데, 정치는 일주일 남짓한 기간 동안 책 디비면 뚝딱 된답니까? 이런 설정이 요즈음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건 알겠지만, 그걸 안다는 걸 너무 티내면서 쉽게 다루는 태도가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일일이 강조점을 짚어주며 '여기서 감동 받으면 된다'는 식의 대사나 연출도 많이 오그라들더군요. 후반부에서는 그냥 영화 빨리 끝나기만 바랐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보이는 가장 큰 장점은 '웃긴다' 정도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