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성별.

소설을 마무리하거나 누군가에게 보일만큼 써본 적이 없지만, 첫머리 정도는 여러 번 끄적인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로봇이 나오는 이야기였는데 쓰다가 로봇의 묘사를 하려고 보니 아무 생각없이 로봇을 남성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로봇을 여성으로 바꾸어볼까, 했지만 그것도 이상했습니다.

 

제가 아끼는 만화 중에 '카페 알파'가 있는데, 그 만화의 주인공이 여성 로봇입니다. 그 전까지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로봇에 있어서 여성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쓸모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로봇이 자가복제를 하는 것도 아닐 것이고, 제가 지금까지 본 로봇 소재의 창작물에서 로봇들이 서로 성관계를 맺어 임신하거나 자식을 낳는 내용을 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글을 마무리 짓고 보니 도라에몽, 극장판에서 족벌(?)을 이어나가긴 했군요. 인간도 나노로봇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구요. 여기선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체라고 줄여봅시다) 그러고 나서 많은 로봇 영화들의 성별을 떠올리게 되더군요.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남성 로봇이 주인공으로 나오죠. 딱히 남성일 필요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사실 남성이냐, 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하긴 애매합니다. 하지만 결국 성우를 기용해야되기 때문에 성우의 성별을 따라 유추하는게 타당하죠) 듀나님의 소설의 로봇은 여성형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듀나님 소설의 로봇은 '첼로'인데 똑똑하게 유치원 보모를 하는 여성 로봇에 대한 인상은 강렬히 남아 있습니다. 어쨌던 간에 어째서 성별이 별 쓸모없는 로봇에게 성별을 부여해야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무성의 로봇을 상정해보았는데 인간과 의사소통을 한다는 전제에 있어서 까다로운 부분이 몇 개 있습니다. 첫번째로 목소리인데 기본적으로 학습의 형태를 띈다고 하면 다른 이들의 발음을 녹음해서 짜집기 식으로 말하게 된다고 했을 때 무성에 다가가게 되겠죠.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 호러블하게 들리겠습니다만. 그리고 개인 정체성의 문제인데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로 행동하는 부분과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로 행동하는 부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가 있겠죠. 간단하게 복식이라던가, 아니면 헤어스타일 같은 거요. 치마와 바지를 돌려서 입지 않는 이상은 무성이 아닌 중성적인 패션 감각을 가져야 할 텐데 그것은 훨씬 협소한 옷 입히기가 될 겁니다. 그런 로봇들이 잔뜩 있어 사회를 형성한다고 했을 때 어떤 것일지 궁금하구요. (개미 사회를 떠올리면 어느정도 가능은 하겠지만 최상위 계층이 성이 있으니..) 월-E나 R2D2 같은 개념적 캐릭터의 성별도 따져볼만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의문점.

 

아이보는 남성일까요 여성일까.

R2D2는 남성일까 여성일까.

과연 Siri와 (게임 포탈의) 글라도스와 터렛은 여성인가.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의 로봇들이 여성형이라고 생각하면 어떤가.

다른 여타 매체의 애매한 성별의 로봇들은 무성적인가.

 

그러고보니 잠시 '여성형'이라는 단어를 통해 -형 로봇이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여러모로 궁금한 점입니다.

    • 월-E는 에바 때문에 아무래도 남자애 같은데, 알투는 확실히 애매한 느낌이군요. (그래도 남자 꼬마애같다는 느낌은 있어요)
      • 픽사에서 이브가 남성이고 월-E가 여성입니다, 라고 했을 때 <월-E> 영화에 멘붕한다면 그건 성차별적인 걸까요?
        • '엄마 룩소는 여자입니까?'가 생각나네요.
          • 헉. 저는 아빠 룩소와 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

            1.애초에 에피소드 이름이 '룩소 주니어'다. (엄마 이름으로 쥬니어 붙이는 경우도 있나요? 몰라서.)
            2.둘이서 공놀이를 하는 전개.
            •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엄마라고 생각했거든요. 엄마가 나를 이렇게 들여다본다고 생각해서였을수도 있겠네요. http://postfiles6.naver.net/data17/2006/8/9/165/05-cksnews1.jpg?type=w3

              무슨 우와사인거 같은데, 이 룩소 주니어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발표했을 때, 각종 어려운 기술들에 대한
              질문일 거라고 해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제일 첫 질문은 '어른(엄마)룩소는 여자입니까?'하는 거였다고 하더라구요.
              • 그 질문을 한 사람의 성별이 또 중요할 것 같군요 ㅋㅋㅋ... 여자가 보면 엄마로 보이고 남자가 보면 아빠로 보이려나?
                근데 위에도 추가했지만, '룩소 주니어'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빠가 맞을 듯한 생각이...

                후훗. 찾았습니다. 아빠가 맞는 것 같군요 ^^

                http://pixar.wikia.com/Luxo,_Sr.

                근데 또 추가적으로는 모델인 된 것은 존 레세터의 '엄마'라고 적혀있군요 -_- 머야.;;;
                • 아니 "father"라니... 아이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엄마인지 알았더니.
                  상대 멘붕 시키는 질문 던지려다 역멘붕 당하고 있습니다.
                • 백열전구가 좀 따뜻하긴 하죠 후후후후;;;;;(응?)
          • 전 당연히 여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고 물어보면 골룸.
        • 저 같으면 그런 소리 들었을 때 멘붕..은 아니고 '엑!? 그런 거였어?!' 하고 잠깐 깜놀.하고 말 것 같긴 하지만..... 무엇 때문에 멘붕하게 되는 건지 좀 더 정확하게 말씀하시지 않으면 뭐라고 말하기 힘드네요. 그냥 '생각과 달라서 멘붕'이라면 전혀 성차별적인 건 아닌 듯 한데..
          • 저는 무슨 뜻인지 알것같아요 '나는 젠더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을 무의식중에 사물에 적용하고 있는 것인가'같은 질문이오. 음..어렵네요..
          • 뭐, 잘 생각해보면 남/여는 이성애적인 관점이고 남/남이나 여/여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겠죠. (...)
            성차별이라는 단어는 실제 성별적 차이로 인해 나타나지 않는 범위를 성별 지칭을 통해 가상인식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착각을 거칠게 줄여서 써본 거에요.
            (그러니까 성별이 달라진다고 해서 차이가 없었어야 될 부분들에 대한 문제)
    • 전 지스카드가 여자여도 이상할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여성/남성은 확실히 너무 인간적인 개념이어서 로봇에게 어떻게 적용시켜 보아도 좀 어긋나네요.
      로봇 시리즈 말인데, 몇편인가 기억은 안 나지만, 여성 로봇이 등장하긴 해요.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인간을 공격하는 로봇이죠. 인간의 범위를 너무 협소하게 설정해 놓아서 솔라리아 악센트를 사용하는 사람만을 인간으로 생각하고
      그 외의 인간은 공격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참 그렇네요,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에서 로봇끼리는 '친구'라고 부르고(영어로는 뭐라고 부르나요? comrade? friend?)
      인간은 로봇을 '소년Boy, 소녀Girl'라고 부르잖아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지구나 솔라리아에서는 외관을 그렇게까지 인간과 흡사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하고, 다닐이 최초의 예외인데 왜 굳이 보이, 걸, 이렇게 부른다고 아시모프는 생각했을까요? 우리말 "얘"에 해당하는 영어가 없어서?
      • 저도 기억나요. 글래디아가 솔라리아에 다시 찾아갔을때 나왔던 로봇인데, 지금 찾아보니 이름이 랜드리네요. 제 책으로 5권인데 편수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네요.
        로봇이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건 결국 외형이라는 얘기가 놀라웠던 기억이 납니다.
    • 사실 들어올 땐 'robota'니까 원래 여자죠, 하려고 했는데 어려운 질문이네요...음음
    • 사람들은 어떤 대상에게 성별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대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 질 것 같아요.
      • 어떤 연유로 부여하는지, 왜 부여하는지가 궁금해요. 음, 각각이 다를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2명의 사람이 1명의 로봇과 삼각관계를 이루는데 로봇의 성별을 다르게 착각하는 시나리오가 왠지 모르게 떠오르는군요.
    • 사실 이 문제의 간단한 해결책은 두가지 정도 있습니다.

      하나는 결국 로봇은 인간의 필요에 의한 '피조물'이라는 것이고 로봇의 거의 모든 속성은 인간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되죠.
      로봇의 성별은 왜 필요한가? > 인간에게 필요하니까. 섹스로봇이나, 유아돌보미 로봇, 심리상담 로봇(안정을 위한 동일성별) 등이요.

      다른 하나는 로봇의 성은 로봇성입니다, 라고 말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건 답을 해놓고도 답이 아닌 거겠죠. 아니면 답이지만 불필요한 답이거나.
      -
      제가 이러한 질문으로 추구할 수 있는 것은 무성의 형태를 구현한 후 다시 성을 덧입히는 사이에서 일어나는 부과효과들입니다.
      로봇 자체는 이미 성이 결여되어 있죠. 마치 듀게에서 글과 댓글을 하나도 달지 않은 사람의 ID를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무성적입니다.
      그 성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고, 성을 부여하기 이전의 이유와 성을 부여한 이후의 로봇에 대한 행동양태의 분석 같은 부분이요.
      이 헛생각을 떠올리며 가장 깨달음을 얻은 부분은 헐리우드 영화의 로봇(특히 주인공)은 짜증날 정도로 남성이 많다는 거였죠.
      (여성 로봇은 성매매의 오브제에나 쓰일때가 많습니다.)
    • 최근 본 괴상하(지만 재밌)는 만화 중 세계제복이라고 있습니다.

      거기 1권 마지막에 나오는 안드로이드는 여성이죠.
      • 처음듣는 거라 검색해보니 재미있어 보이네요.
        세계가 흐뭇히 멸망해가는 내용의 만화를 무조건 좋아하는 편이라.
        혹시 책 표지의 인물이 그 안드로이드인가요?
    • 퓨처라마의 벤더는 확실히 남성형이겠죠... 뭐, 로봇포르노도 보고 그러는 걸 보면...
      • 남성만 포르노를 본다는 편견을 버리.. 라고 하기엔 제가 그 소설을 안봐서 모르겠네요.
    • 로봇이 양성생식이라도 하지 않는한 외형이나 행동방식만 여성형/남성형 로봇으로 구분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인간은 완전히 무성적인 존재와 소통하는데 익숙하지 않을테니까요. 그런 존재에 아주 익숙해지는 먼 미래가 아닌 다음에 말이지요.
      • 제가 언급한 카페 알파와 일본 애니 일상의 등장 로봇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인지하고 있죠. 하지만 그렇게 인지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 성적 특성을 가지게 되는건 아니구요. 예컨대 트랜스젠더와 같이 외부조건적 성을 뛰어넘는 성의 변별 조건은 뭘까요. 자기인식?

    • 글쓰신 분이 이미 중간에 정리하셨습니다만, 저도 이 문제(로봇에게 성별의 의미는 뭐지? 어떻게 정해지는 거지? 등등)는 결국 인간이 자기 자신을 피조물에 투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창작물에서 개미를 캐릭터화할 때 남성으로 상정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보면 여전히 어떤 피조물이든 프로토타입은 남성이라고 여겨지는 거죠 뭐.
      • 세대가 지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프로토타입을 무성으로 생각하는 시대가 오겠죠?
        과거의 여성중심 사회에서 그러한 창작물이 가능했으면 기본적으로 어떤 성으로 정했을 지 궁금하네요.
        (그러고 보면 모계 중심 사회에서의 주신은 여성신일 가능성이 높기도 했고..)
    • 로봇에게 sex가 없다고 gender까지 없을 이유는 없다고 봐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으니 경우에 따라 성역할이 필요하겠죠. 극단적으로 AI의 '지골로'가 그렇고..
      • 성을 분할하는 방법이 있었군요. 하지만 gender는 sex에 의거에서 나온 결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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