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긴바낭) 부산에 왔어요 + 첫사랑이 살던 동네 + 인간은 도대체 언제 어른이 되는 건가요?

 

 1.

 

 오늘 해야될 일을 마치고나니 네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지요

 

 티켓을 사기위해 줄을 서있는 동안 서울 - 부산 케이티엑스 특실 좌석이 남아있다고

 빨간불이 깜빡깜빡 거리길래 이번엔 앉아서가나 기대를 했는데

 제가 줄을 서있다가 티켓을 구매하기 바로 직전에 그 불이 꺼져버리더군요 ㅠㅠ

 

 결국 이번에도 입석이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입석티켓도 구하기 힘들어서 몇 시간 동안 대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입석티켓이라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입석이라 걱정했던 것과 달리 중간중간에 자리에 나서  두시간 사십분 동안 책도 보고 아이폰도 만지작거리며

 지루하지 않게 올 수 있었네요

 

 2.

 

 집에 도착해서는 어머니께서 해주신 밥을 두그릇 먹고

 오랜만에 어릴 적 살던 동네를 한시간 정도 걸었습니다

 

 첫사랑이 살던 동네 근처에도 갔었는데 그곳은 많이 변하지 않았더군요

 

 제가 첫사랑이 살던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전화를 걸던 공중전화 박스도 그대로고 ㅎㅎ

 

 첫사랑은 카페 알바를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그 아이는 하루를 일하고

 알바하는 걸 부모님에게 들켜 그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죠

 

 첫눈에 그 아이에게 반했던 저는 카페 매니져님에게 사정을 해서 그 아이가 일을 시작하면서 적어놓은 전화번호를 알게 됐고

 몇 번 통화를 하고 좀 더 친해진 뒤에 그 아이가 예고도 없이 카페에 저를 보러왔던 어느날

 

 세상의 모든 시간이 정지해버리는 느낌을 태어나 처음으로 받았었죠 정말로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이었어요 그 순간에는 ㅎㅎ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요 그 순간이 ^^

 

 그 아이의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 아이에게 자주 전화를 걸던 공중전화박스 앞에 있던 상가에서 피아노학원을 하셨었는데

 어느날 밤엔 그날의 강의가 모두 끝난 그 학원에 그 아이와 몰래 들어가서 레몬소주도 몇 잔 마시고

 

그 아이를 졸라 제가 좋아하던 팝송을 피아노 연주로 듣기도 하고 그랬죠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정말

마법 같은 밤이었고 설레는 경험이었네요 ㅎㅎ

 

 하지만 그때는 역시 어렸기에 제가 서툴었고 그 아이가 외국으로 유학을 가려던 계획이 있었기에

 저는 상처만 잔뜩 안은채 첫사랑에 실패하고 말았었죠 ㅎㅎ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그뒤로 제가 풋풋한 사랑과 실연을 몇 번 겪는 동안에도 

 외국에 있던 그 아이와 종종 국제전화로 통화를 했었고 편지도 꽤 주고 받았었죠

 

 그러다가 제가 제대를 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 그 아이가 귀국해 칠여년만에 그 아이와 부산에서 재회를 했고

 심야영화로 원령공주를 함께 본 뒤

 - 그때 무슨 이유로 원령공주가 다시 스크린에 걸렸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만 저는 그걸 꼭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었죠 -

 밤새 바다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연애를 시작했지요 ㅎㅎ

 

 근데 그때도 저는 사회초년생이었고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라 그녀를 마음깊이 잘 챙겨주지 못했던 것 같아요

 - 다시 제 인생을 돌이켜보니 왜 이렇게 서툴기만 했던 걸까요 ㅠㅠ

 

 그래서 그녀에게는 상처만 줬던 것 같고 ^^

 

 그녀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미안한 마음도 크지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어쩐지 미안해서

 고맙다는 생각만 하려고 합니다 고마운 일들이 너무 많았죠 제 첫사랑이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못난 저에겐 아까운, 멋진 여자였어요

 

 아무튼 못난 저는 늘 조급하고 서툴기만 했네요

 

 그런데 오늘 첫사랑을 생각하다보니 최근에 제가 데이트를 했던 그분을 대했던 태도가

 첫사랑의 그녀를 맨 처음 만났던 어릴 때처럼 조급하고 서툴었다는 것이 떠올라 깜짝 놀랐습니다 ㅠㅠ

 

 저는 첫사랑과 헤어진 후 연애도 몇 번 하면서 여러가지 일들을 겪었고

 근래에는 연애를 할 때 담담하고 어른스럽게 관계를 잘 꾸려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왜 다시 연애를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어린 아이처럼 굴었던 걸까요?

 

 역시 인간은 한살 한살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는 성장하지 않나 봅니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크게 놀라서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근처 편의점에 들러 담배 한갑을 살 수 밖에 없었어요 ㅠㅠ

 

 3.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만 누군가 굳이 저에게 종교를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이렇게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를 위로해주는 것이 저에게 제일 큰 구원이라고 이야기하겠지요

 

 그리고 저는 평상시엔 담배를 피지 않습니다만

 요즘처럼 우울한 날엔 가끔씩 바깥공기를 쐬며 담배를 피는 것이 큰 위로가 되더군요

 어릴 적 어른들이 했던 담배가 유일한 낙이자 친구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 거지요 ㅎㅎ

 

 우울할 때 술은 좀 위험하더군요...

 

 술은 한동안 마시지 말아야할 이유가 너무 많은데 술 권하는 사회에 살다보니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술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마시게 되는데

 연휴가 끝나면 한달에 한번 정도 가볍게 마시면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요즘처럼 우울한 가을에는 음악도 큰 위안이 됩니다

 아주 예전에는 음악을 무척 많이 들었는데 근래에는 음악을 들을 때 감정이 마구 출렁이는 느낌이 싫어서

 가끔 집에서 일을 할 때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 것 말고는 음악을 거의 듣지 않습니다만,

 이런 계절에는 스스로를 위로해주기 위한 음악이 필요하더군요

 

 음악이라고 해봐야 새로운 음악들을 찾아서 듣는 건 아니고

 예전에 좋아했던 음악들 몇 곡을 반복해서 듣는 수준입니다

 아무튼 저에겐 그런 오래된 것들이 큰 위로가 되거든요

 

 4.

 

 첫사랑에 실패해 눈물짓던 어린 소년이었던 저와 나이가 든 지금의 제 모습의 간극이 겨우

 늙어버린 육신이라는 멘붕을 극복하고

 

 다음 행선지로 향한 곳은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였습니다

 

 한적한 산과 야특막하고 허름한 단층주택에 둘러쌓여 있던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 주변은

 아주 많이 변했더군요

 

 학교 주변에 있던 산이 깎여져 나가고 큰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 학교를 포위했고 학교의 담장들 옆으로

 큰 도로들이 나있었습니다

 

 저는 아무도 없는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가보았는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덕분에 수용해야될 학생들이 많아져서 그랬는지

 제가 재학하던 시절의 교사만큼 큰 교사 하나가 더 신축되어 있었습니다

 

 신축교사의 면적만큼 운동장의 크기는 줄어들어 있었고요

 

 신축교사가 차지한 면적을 차치하더라도 운동장의 크기는 어릴 적 제가 느꼈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게 느껴졌습니다

 

 반에서 키가 제일 작은 아이 중 하나였던 저는 어느 순간 제 자신도 깜짝 놀랄만큼 키가 자랐고

 그후로 이제 어른이 되라는 종용에 부딪혀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결국 저는 아직까지도 어른이 되지 못했네요 인간은 과연 언제 철이 들고 어른이 되는 걸까요?

 

 이제 운동장이 이렇게 작아보이는데 얼마나 더 자라야 어른이 되는 걸까요?

 

 5.

 

 올봄에 저희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사실 저는 할머니와의 추억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만

 그런데도 부산에 내려오면 늘 계시던 할머니께서 계시지 않으니

 기분이 좀 묘하네요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장지로 가는동안 유골함을 제가 들고 있었는데

 그때 겪었던 묘한 일이 떠오르네요 여기에 쓸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누군가의 부재라는 건 인간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것 같아요

 

 6.

 

 사실 저는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렵습니다

 

 연예인들은 인터뷰할 때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저는 가끔 제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살려고 하고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서울에 올라가면 마음 다잡고 그간에 해오던 제가 좋아하는 저의 일들을 더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위로해주기 위한 어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것을 반드시 성공시켜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에겐 아주 큰 스트레스인 이사도 준비할 겁니다

 

 여행은 가고 싶었다 가기 싫었다하는 마음이 늘 반복되는데

 이곳에 나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없다면

 짬이 날 때 다녀오는 게 좋겠지요 가기 전에는 망설여도 다녀오면 늘 좋더라고요

 

 아 그리고 연휴가 끝나면 광희시장에도 가볼 생각입니다

 가죽쟈켓과 관련해서 덧글 남겨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차례를 지내고 할머니 산소에 갈 예정입니다 내일도 차안에 있어야 할 시간이 꽤 되는지라

 벌써부터 두렵습니다 ㅠㅠ 그래도 다녀와야겠지요

 

 여러분들은 명절 전야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야심한 새벽에 올리는 글이라 몇분이나 봐주실진 모르겠네요   

 멋진 듀게회원님들 어디서든 명절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맛난 것도 많이많이 드시고요

 

 명절이라 힘드신 분들도 분명 계실텐데 ㅎㅎ 스스로를 잘 다독이고 위로하면서 즐겁게 즐겁게 보내시길 바랄게요

 

 그럼 저는 내일 새벽에 다시 이곳에 일기 쓰러 오르겠습니다...

 - 조만간 다시 일기는 일기장에 쓰도록 할테니 너무 뭐라고 하지 마시길 ㅎㅎ

 

    • 일하는 곳에 찾아 온 그애가 남자인줄 알았는데 여자였군요 마음 읽어집니다 최고라고 할수도 있겠어요.
      어느 정도 차면 더 이상 나이먹는거 두렵지 않죠.
      옛날 동네 초등학교 길 운동장 그땐 길었는데 아주 짧게 보이죠 그런데 그게 몇번 더 가면 어릴 때 그대로 보입니다 줄어든게 아니었어요 저나 나나 안변합니다.
      • 저나 나나 안변하는군요 몇번 더 가봐야겠어요 명절 잘 쇠세요 가영님 ^^
    • 남들은 차례로 분주할 시간에 저는 댓글을 달고있네요. 글이 재밌어서 쓰신 글 검색해서 읽어봤어요. ^^ 재작년 어떤 소설을 읽다가 감성이 충만해져서 당시 관심있던 사람한테 갑자기 전화해서는 연극티켓이 있는데 같이 보자고 했다가 거절당한 기억이 나요. 2년 밖에 안됐는데 그분은 결혼했고 와이프는 임신중임을 카톡 프로필 사진을 통해 안 뒤 연락처에서 삭제한 게 올 봄이었네요.



      육체는 시들어가도 들뜬 마음은 똑같은 건 누굴 좋아할 때마다 느끼네요. 그 간격이 너무 길어져서 문제지만 올 가을 추억없이 넘긴 것보다야 낫지않습니까? 고향 공기 맡고 서울 올라와서는 즐거운 일상으로 복귀하시길 바랍니다.
      • 지난 글도 찾아서 읽어주시고... 감사합니다 샘물님 저는 지금 할머니께 성묘드리러 가는 길 ㅎㅎ



        그 들뜬 마음 이제는 그만 느끼고 싶어요 명절 잘 보내세요 샘물님 따뜻한 댓글 감사드려요 ^^
    • 추석과 상관 없이 오늘 내내 기운 없이 처져 있었는데 글 읽고 많은 위로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전에 쓰신 글들도 검색해서 읽어야겠어요. 앞으로도 글 많이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 두서없는 글 어떤 부분이 precisely wrong님에게 위로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명절 하루 잘 보내셨나요? 저는 성묘 다녀와서 저녁 먹고 샤워하고 다시 넷북을 켰네요 이제부터 비로소 여유로운 시간입니다 ^^

        행복한 밤 보내시길 바랄게요 듀게에서 자주 뵐 수 있기를
    •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몇달전의 제 모습과 오버랩이 되네요.
      시간이 약이 더군요. 그리고 바람이 다시 솔솔 부니 그사람은 서서히 잊혀지고 이젠 정말 새로운 사랑을 하고 싶어요.
      요즘은 책도 읽고 취미생활도 하고 자기 자신을 좀더 가꾸면서 살고 있습니다. 조급해하시지 마시고요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떨어지는 시기가 올거에요
      • 감사합니다 joje님 조급해하지 않겠습니다

        님에게도 저에게도 또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겠죠 joje님은 이미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품고 태어나셨으니 스스로를 잘 보듬어 주시길 바랍니다 이 가을도 금방 지나가버리겠죠? 그리고 또 이 계절을 사무치도록 그리워할 시간이 올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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