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이지만 싫은 말

추석이라구 실컷 잔소리 들었네요.
듣다 듣다 못 참고 이제 그만해~~나 잘거야!! 하니까 엄마가 바로 그래 안녕 잘 자 해서 저도 명절 인사하고 잔소리 해방! 된 건 좋았지만
그래도 잔소리 듣는 건 싫어요...

특히 엄마가 나한테 기도해주는 내용을 듣고 있는게 싫어요.
그래서 평소엔 잘 안 듣고 그냥 흘려 듣거나 자버리는데 오늘은 다 들었네요.

엄마가 날 두고 하는 기도는 이십뿅년간 변함없이 똑같죠.

날 사랑해주는 올바르고 신실하고 건강한 크리스챤 청년을 만나 성 가정을 이루고
저는 언제나 순결하고 온유하고 지혜롭고 현명한 여자가 되는 것. 그래서 미래 훌륭한 엄마가 되어 성가정을 이루는 것.

현명한 여자.
현명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요.
지혜롭다는 말도 좋아하진 않지만
현명하다는 말만큼 기분 나쁘진 않아요.

내 남자친구가 업남 시절 나에게 현명하다고 칭찬했을 때 정말...다시 생각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건 결국 나보다는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는 말 같아서 싫어요. 싫은 소리 하지 않고 네네 하는 사람. 까탈스럽거나 유난떨지 않고 무던하고 무난하니 고집 안 세우고 양보할 줄 아는 사람.

남에게 잘 해줘서 남에게 좋은 일을 만들어주면 나한테도 좋죠. 저도 베푸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맘이 답답할 수 없어요.
열몇살적부터 쭉, 여자는 비엿취여야 인생 잘 살아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온 저로서는ㅠㅠ이 답답한 가슴을 어째야할지 모르겠습니다.
    • 비엿취'ㅅ' 뭔가 2초간 생각했네요. 동의합니닷.
      • 원래 한국말로 쓰는 단어인데 욕을 써도 되는지 안되는지 감이 안 와서요;
    • 현명한 여자에 대한 거부감에 공감해요.

      현명한 사람이다, 현자다 할 때의 현명과

      현명한, 지혜로운 여자가 좋아요의 현명은 다르다고 늘 느꼈어요.



      여자에 붙는 현명함은 대개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스스로를 희생하면서도 그것을 희생이라고 여기지않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전통적 가치관이 부당할지라도 (적어도 자기 세대에서는) 달게 감내하는, 배우자가 뻘짓을 해도 가족을 위해 용서하고 감싸안을줄 아는' 여자를 부를 때 쓰이는 듯해서.
    • 그 왜 만화 같은 데서도 별로 좋은 느낌이 아니죠, 이말.
      악당이 누군가 협박하다가 그 사람이 마지못해 받아들이면 씨익 웃으면서 "현명하군."
    • omg 어쩜 우리 어머니랑 똑같나요...모태신앙의 업보입니다ㅠㅠ 전 현명하다는 말이 외려 꽃게랑님이 말씀하신 배경 때문에 우둔하다고 느껴져서 싫어요. 어려서 그런지 똑똑하고 똑부러지는 비엿취(나물이름같아요) 가 되고파요.
    • 으앗 읽기만 했는데도 진짜 싫으네요ㅋㅋ 전 저 배우자 기도가 소름끼치게 싫어요!!! 기독교 쪽에서 부덕이랍시고 가져다붙이는 모든 형용사도 싫고요ㅋㅋㅋㅋ
    • 아 예전부터 진짜 싫었는데... 결혼하니 온통 주위서 하는 조언이 그 비슷한-_- 니가 참아라, 니가 맞춰줘라, 니가 잘함 된다..

      속으론떽떽대도 실지론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럭저럭 맞춰 살던 편인데도 아주 진저리가 나대요; 왜그리 여자만 감정노동에 혹사당해야 하는지 으구..
    • '현명한'은 왠지 노숙한 느낌이 나서 별로예요. '지혜로운'은 그에 비해 가부장적인 텍스트에서 여자를 추켜세우는 수식어로 쓰이는 듯한 느낌 때문에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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