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asahi.com/culture/update/0928/TKY201209270753.html
무라카미 하루키가 최근 자국신문에 한·중·일 영토분쟁에 관한 기고문을 실었다.
중국에서 일본 서적이 사라지자 일상에 스며드는 정치성을 염려한다고 한다. 그는 영토문제에 국민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실무적인 방법이 있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원인을 덮어두고 원만히 해결한 역사적 사례는 없다.
현실에서 피가 흐르고 있지만 그는 앞으로 피가 없는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고 한다. 일본 수뇌부에게 하는 충고가 고작 "값싼 술기운"이라니 숙취에서 깨어나면 영토문제가 사라지는지 묻고 싶다.
그는 담백한 에세이를 쓰거나 역사소설을 건드리는 대신에 책을 많이 파는 대중작가로 만족하면 좋았다.
이런 기고문은 종이와 지면을 아깝게 한다.
그는 역사를 마주볼 용기가 없다. 역사의 주변부를 돌면서 망각하거나 기억을 상실하거나 언제나 가장 편한 방법을 택한다.
조지오웰은 식민지 시절 인도에 영국경찰로 부임하면서 원주민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몰골을 거침없이 치밀하게 묘사했다. 대세를 따르거나 현실을 망각하면 편했겠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패배한 전공투의 후일담과 영혼까지 썩게 하는 허무주의 범벅의 하루키 작품과는 다르다.
한국에서 모 여행사가 <해변의 카프카>라는 여행상품을 만들어서 일본 투어를 했다고 작가가 외국언론에 자랑스럽게 인터뷰하는 것을 읽었다. 타자는 없고 자아는 상실되고 파괴된 인격만 남아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작품에 경도되어서 해외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삶에 대한 함축된 전망,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파헤치는 고전과는 달리 하루키가 유명작가 이름을 나열하는 것은 부족한 문화적 능력에 대한 알리바이라고 했던 언론이 기억난다. 그의 세계는 빈부도 없고 역사도 없고 기억도 없다. 오직 찰나적인 관계와 공허만 있을 뿐이다. 아, 잊었다. 포로노 수준의 섹스는 있다.
언젠가 그의 기고문이 리얼리즘에 가까웠던 적이 있는데 일본 원전정책에 대한 비판을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