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좋아하는, 혹은 과거에 좋아한 사람과 했던 일 중 특별히 기억나는게 있으신가요? 대상을 한정하는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연애감정을 넣는 것이 읽는 사람도 설레고 특히 저같은 솔로는 심통나고 좋겠죠 ;ㅁ;
저는 한사람만 두 눈을 감은 다음, 눈뜬 쪽이 눈감은 사람 손잡고 산책하는걸 제일 좋아했어요. 혹시 눈감고 걸어 보셨나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은 상상보다 훨씬 무섭더라구요. 답답해서 눈뜨고픈 충동을 꾹 누르고 집중하며 어둠 속을 걷는 거죠. 눈뜬 사람은 감은 쪽에 속도를 맞추며 "이제 내리막길이다, 열 시 방향에서 사람이 걸어온다, 누렁이 지나간다." 등의 세심한 안내멘트를 계속 해줘야 해요.
설명은 장황하지만 막상 해보면 간단하고 유치해요. 우리도 조금 창피해서 인적 드문 저녁에만 그러고 놀았지요ㅋ <곰하고 약장수 놀이>라고 이름도 지어서 가는 길엔 내가 눈먼 곰, 반환점 찍고 오는 길엔 바꿔서 곰 데리고 5일장 가는 약장수 역할극도 하고...
추울땐 손을 잡고, 여름엔 더우니까 새끼손가락만 걸고서 서로의 꽁무늬를 딸랑딸랑 잘 따라다녔는데, 시간이 흘러 지금은 소식도 모르는 사이가 되었네요. 각자에게 아주 맞는 짝은 아니었지만, 요즘같은 저녁날씨에 산책길 따라서 익숙한 바람냄새가 나면 웃고 떠들던 그 때가 가끔 생각나요.
이제 듀게 분들의 추억 자랑해주세요! 저 지금 아메리카노 한 잔 타놓고 부러움 폭주용 침 흘릴 준비하고 있어영 ㅠㅠㅜ
아주 추운 겨울날 밤에, 여름 바지를 입고있었어도 헤어지기가 싫어 학교 운동장 벤치에 같이 앉아 오들오들 떨던 기억,,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처음 살며시 따뜻한 손을 잡고 잡히던 날의 심장 터짐,, 첫 키스를 했는데 눈떠보니 세시간이 지나있던, 무언가 초현실적이었던 새벽,, 그리고 일어선 그가 잘 걷지 못했는데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던 스무살 시절,,
신랑하고 연애할 때, 12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사귀기로 결정한 다음날 제가 뭔가 사소한 물건 하나를 사주었는데, 신랑이 초등학생 때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는데 아버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값비싼 장난감을 사주었대요. 근데 제가 준 선물을 받은게 그 때보다 더 기뻤다고 말해 주더군요.
유럽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만난 여자친구 이야기인데요, 어느 가을 저녁에 여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했어요. 아마 토요일 저녁이었을 거예요. 친구에게 배운 멸치 파스타를 같이 나눠 먹고, 집 앞 슈퍼에서 사온 싸구려 와인을 홀짝이며 쇼파에 앉아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조용한 영화를 같이 봤어요. 3층 창문 사이로 살랑이는 가을 바람과, 촛불 조명이 은은하게 퍼지는 실내에서 달달하게 오른 취기,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 제 어깨에 기댄 여자친구의 머릿결에서 풍기는 향기, 마주잡은 두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 때문에 저도 모르게 살짝 잠이 들었나봐요. 몇 시간 뒤에 일어나니 주변은 어두컴컴하고, 여자친구는 보이지 않고, 잠들기 직전까지 느꼈던 완벽한 행복감이 어디론가 산산히 조각나 사라진 듯한 느낌에 당황해서 살짝 울었던 적이 (...)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만큼 '완벽한 행복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나 해요.
장거리 연애를 할 때, 애인님이 서울에 급한 볼 일로 올라왔다가 새벽에 제 집 앞으로 찾아왔어요. 두달만에 보는 거던가. 그 때가 겨울이라 코트를 대충 걸쳐입고 찬 바람에 머리는 산발이 되어 뛰어 나갔더니 애인님이 언릉 뛰어와서 자기 손을 잡으라고 했어요. 그래서 막 달려가서 냉큼 그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애인님이 두세시간에 한 번씩 아무 이유 없이 전화를 해서는 실실 웃었어요. 그냥 제가 돌아와서 아무 때나 전화를 해도 되니까 좋다고 하더군요.
둘이 깨벗고 누운 자리에서 서로 껴안았는데요(정말 단순히 껴안았다는 이야깁니다. 상징적인 말 아님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깜작 놀랐어요. '아니,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세상 사람들이 왜 이것에 대해 떠들고 다니지 않지? 이만큼 굉장한 거라면 분명 사람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이 이야기만 하고 다녀야 할 텐데...'하고. 정확히 저렇게 장황하게 생각한 건 아닌데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나와 얘만 이렇게 좋을까, 아니면 다들 좋을까? 다들 좋다면 왜 다 이게 이렇게 좋다고 전에 말해준 사람이 나한테 없었을까?'하고 느꼈음.
그것 말고는 헤어지던 때들이 기억에 남아요. 보통 피차간에 체면을 돌보지 않는 울음을 수반하였습니다-.-
밤이라 위험하다며 대학 선배가 집까지 바래다주는데,헤어져서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카시아 향기가 확 퍼지더라구요.얼른 다시 나가 선배를 불러서,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입구까지 데려왔어요.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선배에게 "향기 좋죠?" 하고 씨익 웃었고 그리고.... 그 선배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겠다고 했고 저는 이게 아닌데 싶어 화들짝 놀라 과방에 발길을 끊었으며 몇년 뒤 재결합한 그들은 결국 결혼해서 딸 둘을 낳고 잘 살고 있답니다.어 이거 아닌가..
1. 장거리 연애를 했을 적에. 스물네살쯤 먹었을 때. 멀리서 차를 달려온 남자친구가 자기 집보다 먼저 저를 보러 왔어요. 냉큼 차에 올라타서 키스를 하는데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전율이 왔어요. 심장이 막 뛰고 전기가 찌릿찌릿왔어요. 그리고 키스가 끝난 후에, 남자친구가 자기도 똑같이 전율을 느꼈다고 이야기했어요.
2. 저는 매운 걸 정말 못 먹어요. 친구들과 다 같이 밥을 먹고 있는 데 제가 저도 모르게 (반찬사이에 딸려온) 청양고추를 씹었어요. 혀가 찌징 해서 얼굴을 온통 찌푸렸는데, 남자친구가 손을 내밀며 "페!해" 그래서 저도 모르게 씹던 걸 그 사람 손바닥에 뱉었어요. 친구들이 다들 놀랐죠.
왠지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6박 7일간 잠을 재우지 않았다!'뭐 이런 드립도 치고 싶은데 너무 거짓말이네예... 나이 먹기 전에 대학생 자취방에서 3박 4일동안 딸삭 달라붙어서 배고파지면 짜장면 시켜먹고 이런 것도 꼭 해봤어야 했는데 안타까워지네요. 틀렸어, 너무 늦었어.....
야밤이니 19금(?)으로 가자면 같이 자고 다음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정신도 덜 차린 상태로 얼굴 쓰다듬고 품에 안겨들고 키스하고 이런 거 정말 좋아합니다. 막 옥시토신이 솟구치는 기분이랄까요. 사실 어린 시절엔 원나잇이 대순가 싶었는데 성경험이 생기고 나니 원나잇은 못하겠구나 싶었어요. 저만 그런지 몰라도 19금 이후의 스킨십에서 생겨나는 애정이 굉장하더군요.
레미제리블 뮤지컬에서 에포닌이 on my own 노래 부를때 가사가 "상상속에서 그 사람이 내 옆에 있다고 생각해. 그는 없지만 나를 안은 그의 팔을 느낄 수 있어..." 이렇거든요.
그 가사처럼... 오늘밤은 그냥...에포닌이 되어서 상상할래요. 짝사랑이 아니라고. 그분과 내가 정말 연인이라고.
노래 하나 첨부합니다. 2002년 세종문화회관 내한 공연때 봤던 레미제라블 팀의 에포닌이었던 마 앤 디오니시오의 on my own 입니다. 레아 살롱가의 에포닌이 씩씩하고 너무도 당차다면 이 아가씨는 동양계여서인지.. (그리고보니 레아도 아시아인이지만;;) 정말로 에포닌의 짝사랑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어요. 마리우스와 함께 하고 있다는 행복한 상상속에서 깨어날 때 절망적인 표정의 변화 같은것이 정말 섬세해요. 이 영상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전 졸업식날 애모했던 선배를 붙들고 "언니! 제가 언니를 사랑한 걸 아시지요(였나 참 사랑했어요였나)"하니까 주변 얼굴이 뜨악해지더라구요 "아니! 그런 사랑 말고!"하고 사람들에게 버럭 소리질렀습니다. 선배 후배간에 사랑도 좀 할 수 있고 그런 거지! 왜들 이렇게 유난이야!
헤헤 또 생각났어요. 떡볶이 아까 먹고 좀 걷다가 거의 길바닥에 앉아 같이 담배 태우다가 애인이 제 무릎, 허벅지 만진거요. 나의 그이는 커피색 스타킹을 좋아해 ㅋㅋㅋㅋㅋㅋ 썩 훌륭한 몸이 아닌데도 한참을 보다가 정말로 숨이 막힌다며 한숨쉬던 것도요. 커피색 스타킹이여 고맙습니당ㅋㅋ
다른 분들 글들 읽으면서 더 많이 쓸쓸해지고 더 많이 외로워졌어요. 가슴 한켠이 뻥 뚤린 것 같아요.
다들 저렇게 (주고받는) 사랑을 하고, 또 했었구나... 난 아마... 내 인생에 있어서... 저렇게 짝사랑했던 기억이 다겠지... 좋아하는 사람의 체취... 라는 것도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저런 기억들 꺼내보는 것 만으로 쓸쓸한 마음 달래며... 혼자 살아야 하겠지... 조제가 그러했듯이...
저는 다 기억남는 게 손이네요. 처음 사귀기 전 영화관에서 제 손 잡았을 때 제가 하도 꽉 잡아서 땀 뻘뻘 난 거, 사귈랑말랑할 때 새벽4시에 손 잡고 어깨에 기대 앉아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던 거, 사귀자고 하고 나서 손 잡고 있던 거, 박터지게 싸우고 집에 가려는데 남자친구가 춥다고 제 손을 자기 코트 주머니에 잡아 넣고 걷던 거. 가장 최근은 오늘 집에 가려고 전철 내리는데 남자친구가 손 안 놔주던 거. 남자친구가 손가락으로 좀 에로에로하게 훑어요. 손등과 손목을 손가락으로 은근하게..ㅋㅋ 저는 해봐도 안되던데 하여간 그런 손놀림(?)이 있어서 애틋하고 아련하고 에로하고 그래요.ㅋㅎㅎ
곱순님, 사실, 제 인생에서 가장 콩닥대던 순간은 짝사랑하던 사람이랑 친구들이랑 다같이 심야 영화 보러 갔는데 제가 졸았던 거예요. 저도 모르게 남자쪽으로 고개 기대고(무의식 염원 발산인지) 졸다 눈떴는데 벌떡 고개를 들어야할지 말아야할지 30분은 어정쩡하게 있었어요. 그 때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콩닥콩닥하면서. 그 친구는 이제 결혼했는데 아직도 애들이 너가 걔 좋아하지 않았냐고 술안주로 놀려요. 아무도 그때 제 기분을, 그 가슴 터지던 설렘을 모르지만 가끔 그 생각하면 살풋 웃음 납니다. 목이 꺾여 아파죽겠는데 고개 들기도 싫고 더 팍 내리면 저 사람이 내 맘 다 알꺼 같고 어찌나 생각이 많았던지요. 이상해요. 눈물 흘리며 가슴 아파하며 사랑했던 사람과는 추억이 생각나지 않아요. 이 게시글 첫 리플 달렸을 때부터 그 친구 생각했는데 서운했던 것만 떠올라요.=_=7년전인데도 어찌.
1. 지금도 단 걸 좋아하지만 대학 때는 정말 미쳤다 싶을만큼 케익을 좋아했어요. 그냥 먹고 싶어서 3~4주에 한번은 케익을 사먹었을 정도... 그런데 마침 같은 과에 저랑 비슷한 면이 좀 있는 -둘다 긴 머리에, 항상 검은색 메탈밴드 셔츠에, 케익과 맥주를 좋아하던- 여자애가 있었다죠. 그럭저럭 친해지게 되어 어느날 둘이 같이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케익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셨어요. 좀 쌀쌀한 날씨라 본관건물 1층에서 먹고 마시고 있었는데, 12시 쯤 되니까 경비원 아저씨가 나타나 깜짝 놀라시며 "엥 여기 왜 아직도 안 잠겼지? 학생들 여기서 뭐해? 잠가야 하니까 빨리 나가!" ...그래서 반쯤 먹은 케익과 맥주를 들고 나오는데... 건물 밖 계단에서 케익을 엎어버리는 참사... 둘이 5초 쯤 멍하니 서서 눈을 마주치더니 동시에 꺼낸 말... "먹자!" 결국 둘이 꽤 쌀쌀한 날씨에 계단에 주저앉아 낄낄대며 땅에 떨어진 케익을 잘라먹고 맥주까지 다 마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2. 대학교 2학년 때 생일이었어요. 친구녀석들이 저녁 사준다고 해서 저녁먹고 가볍게 맥주 좀 더 마시다가 1번의 그 친구가 갑자기 생각나서 전화를 했습니다. ...사실 크게 기대는 안 했었어요. 저랑 그 친구랑 두루 친한 누나 한분이 있어서 거의 항상 그 누나를 껴서 만났던 터라 둘만 만났던 건 1번의 경우가 처음이었거든요. 다른 약속이 있어서 못 갈 것 같다고 했고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거의 술자리가 파할 무렵 어디냐며 다시 연락이 왔더라죠. 아직 학교 근처에서 마시고 있다고 대답했고 잠시 후 그 친구가 왔습니다. 저도 깨나 마신 상태였고 그 친구도 다른 술잘에서 빠져나온 거라 약간 취해있었고, 생일 축하해준 친구들도 늦었다며 돌아가는 마당이었는데... 무슨 깡이었는지 결국 그 친구와 다시 둘만 남아 3차를 갔습니다. 워낙 취해있어서 그 때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요. 다만 기억나는 건 굉장히 즐거웠다는 것, 그리고 거의 술집 폐점시간이 가까워 나왔을 때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둘이 함께 비를 맞으며 꽤 오랫동안 걸었다는 것 정도.
뭐 결국 연애로 발전했다거나 하진 못했어요. 제가 너무 겁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그친구가 아직까지도 연락이 닿는 정말 몇 안 되는 여자사람 친구로 남아있다는데 만족하고 있어요. ...얘기하다보니까 케익이랑 맥주 먹고 싶네요... Q_Q
글 올리고 보니까 며칠 뒤 그 친구 생일이네요... 이번엔 꼭 주소를 알아내야겠어요... "선물이나 보내게 주소 좀 알려주삼" "됐거든. 국가기밀이라 누설할 수 없어." "안알려주면 직장으로 경축 000 탄신일이라고 쓴 2층 케익 보낼거얏!" "그딴 거 저질렀다간 그날로 절교할 테니까 각오햇!" ...이사간 이후 10월이 되면 이런 유치한 싸움을 몇 년 째 반복중...=_=;; 괜히 섣불리 다가갔다가 더 어색해지는 건 아닐까 걱정되어 더 다가가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저와 이어진 것들이 끊기지 않았으면 싶은 사람이에요. ...써놓고 나니까 맥주가 더 먹고 싶어졌어요...Q_Q
저는 시간이 많이 지나면 사람과의 관계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물흐르듯이 내버려 두는 게 가장 후회가 적은 선택이었음을 많이 깨달았는데, hermit님도 hermit님 마음에 꼭 맞는 결정 하시면 좋겠습니당. 개인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생일선물 정도는 가벼운 걸로 직장으로 보내드려도 될 것 같구요. 그렇게 서서히 다가가심이...
1 만난지 일 년 조금 넘었을 땐가, 그 친구는 학교 앞에 살았고 전 집이 멀었는데, 학교 근처에서 같이 데이트 했어요. 시간이 늦어서 인사하고 헤어져서 혼자 집에 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자가 왔죠. "날이 갈수록 보내는 게 힘들다, 사랑해!" 쌀쌀한 밤에 어두컴컴한 을지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도착한 그 메세지가 얼마나 따뜻하던지. 잊을 수가 없네요.
2 카페에서 알바를 할 때였는데, 손님이 없어서 너무 심심했어요. 그래서 작은 메모지에 루시드폴의 '오 사랑' 가사를 쓰고, 알바 끝나고 절 보러 온 그 친구에게 그냥 줬거든요. 근데 나중에 그 친구 집에 갔더니 책상 앞 벽에 그걸 고이 붙여놨더라구요. 그 후로 저에게 '오 사랑'은 그 친구입니다.
두 에피소드 모두 다 한 사람인데요 헤헤 지나간 일이네요. 어이없게도, 제가 그 아이를 차버렸거든요.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처절하게 후회 중입니다. 그렇네요, 그렇다구요. :-) 이런 기억을 저만 하고 있는 것 같아 서글퍼집니다.
아주 어린시절, 감히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도 힘들정도로 어린시절에 먼 지역에 살고있는 아이와 만나게 되었었지요. 수험생임에도 불구하고 집에는 온갖 거짓말을 해가며 그아이를 만나러 갔고 하루를 같이 지냈습니다. 무얼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아요. 사실 그 나이때에 할 수 있는게 같이 걸어다니는 것 말고는 마땅치 않았겠지요. 하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창밖에 보이는 손을 흔드는 그 아이를 보고서 왈칵 눈물을 쏟아냈던 것.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다섯시간정도를 끅끅 거리며 울었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도무지 그 당시의 감정이 어떤것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자정을 넘긴 시각, 당시 같은 동네살던 남편과저는 우리집앞 골목 긴 계단앞에 앉아 헤어지기 싫어서 그냥 시간을 죽이곤 했어요. 당장 들어가도 할 일도 없고...그러다가 제가 우리 데이트 좀 구질구질하지 않냐며 그냥 피식 웃으니까 가로등 아래서 남편이 눈을 반짝거리면서 그러데요.
둘 다 시험준비하는 가난한 학생이었었는데 어느날 와인을 한 병 샀어요. 비싼 건 아니었지만 아마도 큰맘먹고 샀을거예요. 둘이서 아주 신나서 이쁘게하고 먹자고 온 방에 촛불을 켜고 턴테이블에 재즈곡을 틀어놓고 홀짝홀짝 마셨었어요. 창문이 아주 커서 문을 활짝 열어놓으니 달도 보이고 .... 서로 눈을 계속 바라보고 뽀뽀도 하고 그러다가 끌어안고 춤을 췄어요. 그냥 뒤뚱뒤뚱 움직이다 때로는 애인 발 위에 발을 올리고 추고 그랬었는데. 오늘따라 그립네요. 왠지 눈물날 거 같아요.
1999년 한 남자아이는 얼마전 학교에서 만난 같은 과 여자친구와 영화의 이해 라는 교양 수업을 듣습니다. 2주에 한번씩 영화를 상영해 주던 그 수업에서 그날 상영했던 영화는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선라이즈 입니다. 두 사람은 별 다른 생각없이 후미진 가장 뒷 자리에 자리를 잡습니다. 영화상영으로 인해 캄캄해진 강의실에서 그 둘은 서로를 눈을 바라보며 아 사랑에 빠진 사람의 얼굴은 이렇게 변하는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둘은 처음으로 입을 맞추었고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에게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사랑할께, 우리 더 행복해지자" 라고 속삭입니다.
2004년 그 남자아이는 산산히 조각난 마음을 추스리고자 혼자 부산을 방문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이였으며 개막작으로 양조위에 2046을 상영했습니다. 그날 그 남자아이가 본 영화는 비포선셋 이란 영화였습니다. 그 날 밤 해운대의 바다를 보며 그 남자아이는 남포동에서 한 시간 반정도 되는 상영기간동안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던 자기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우울해 합니다. 처음으로 입을 맞추던 그 때 영화속 주인공 Celine 은 "I'm the most harmless person. The only person I could really hurt is myself." 라고 Jesse 에게 속삭입니다. 문득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린 남자아이는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하게 됩니다.
선물이라며 받은 책갈피 속에 끼워져 있던 편지로 고백받았어요. 저는 발렌타인 때 cd 속에 편지를 넣어 답했구요, 그렇게 사귀게 되었습니다. 가끔 아무 일이 없어도 편지를 써요. 지금도 책상 서랍에 있는 편지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요. 문득 떠오르는 날엔 배를 깔고 누워 편지를 읽지요. 그 사람 성격처럼 반듯하고 성실한 글씨로 나에 대한 마음을 적은 글을 읽고 누운 날이면 꿈도 안 꾸고 푹 자요. 저는 지금 부산에 갑니다. 남자친구는 저녁에 따라 오기로 했어요. 그 사이 오랜만에 편지를 써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