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유사 모태솔로의 연애 한탄

건축학개론은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첫사랑이었다고 했지요. 
영화든 유행가든 내가 공감 못하는 문구가 한두구절도 아니고 거기엔 별반 화도 나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엔 슬퍼졌어요.

어째서 나에게 짝사랑이라도 첫사랑이라는 게 없었을까...

물론 누군가를 좋아한 적은 몇 번인가 있었어요.  

대학 시절 같은 수업에서 몇 차례 마주쳤던 동기남이었는데 언젠가 그가 먼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는 걸 
나한테 한 게 아닐거라며 못 들은 척 쌩하니 지나쳤죠. 자리에 앉고서야 제 뒤엔 아무도 없었단 걸 알고선 머쓱했어요. 
얼마 뒤 종강 뒷풀이에서 제 앞자리에 앉은 그에게 머스터드 소스를 가까이 밀어준 것, 그게 제가 그에게 표시했던 호감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늘 이런 식이었으니 혼자 좋아하는 감정이 짝사랑의 단계로까지 나아가지도 못했던 것이었죠.


전 혼자인게 편하지도 즐겁지도 않아요. 늘 외롭고 텅빈 것 같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부비고 싶고 그런 감정을 안고 살고 있어요.

그래서 상대를 만나려는 노력은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들어오는 소개팅들은 두 팔 벌려 환영하고, 간혹 주변에서 데이트 신청이 오면 반갑게 나갑니다. 
그렇지만 상대가 저에게 적극적인 호의를 보이는 순간, 정이 똑 떨어집니다. 나를 좋다고 하는 순간 그 사람이 참 하찮게 보이는 거죠. 
얜 뭔데 내가 좋지? 나 같은 애랑 같이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드나? 내가 좋다니 뭔가 하자가 있을 거 같다...그리고 다음 만남부터 그 하자를 유심히 찾습니다. 
의식적으로 그러지 않으려 해도 무의식 중에 찾아내고 말더군요. 당신을 더 깊이 좋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그대로 잠수...  

친구가 적어도 서너번은 만나봐야 안다며 나도 세번째 만날 때까진 과연 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조언해주더군요.
그 친구는 지금 결혼을 목전에 두고 있구요. 그치만 전 첫 만남, 적어도 두번째까지도 아니면 계속 아니던걸요. 
모솔 앞에 유사라는 수식어가 붙은 건 어쨌든 연애 비슷한 걸 2번은 해봐서인데 둘 다 2달을 넘기진 못했어요. 
뭐 헤어진 이유는 뻔합니다. 도저히 상대가 더 좋아지지 않더라구요.  


사랑받고도 싶지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건수를 늘리면 언제고 느낌이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까? 아니면 원래 그런 거 따윈 없고 어쨌든 맞춰가야 하는 걸까......
얼마 전의 소개팅 상대와 네번째 만남을 앞두고 별 의미없는 문자를 주고 받다 주절거려 봤네요.
  
    • 제 지인도 최장 연애기간이 3개월이었는데... 후에 자가진단하며 말하기를, 자존감이 낮은 상태라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상대가 하찮게 느껴지고 자신을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더라고 하더라구요.

      일단 만남을 여러번 갖는 것보다 글쓴이님 자신을 좀 더 사랑할 기회를 갖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이해하기 힘든 로직이네요... 제가 남자라서일까요. 아님 저는 저 단계까지도 가보질 못해서 그런걸까요.
      이건 아니다 싶은데 붙들고 있는건 나한테도 상대한테도 나쁜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남이 보기엔 '눈은 높아가지고..'라고 오해하기에 딱 좋은 시츄에이션. 그렇다고 대책이라고 추천할만 한 것도 없고.
    • 저는 제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충분히 해 보았으니...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준다면 그 누구라도 진심으로 고마워 하며, 더 나아가서는 그 분을 사랑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를 좋아해 주어서 정말로 고맙다고....
    • 마음을 그냥 물 흐르는데로 가게 놔두세요. ㅎㅎㅎ
      너무 의심하지 마시고, 고민하지 마시고~
      상대방이 나를 좋아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은 정말 고맙고 축복받은 일이니까요.
      의심하고 하자가 있는 일이 아니라 :D
      • 정말 고맙고 과분하지만 받는 만큼의 반이라도 감정을 줄 수 없는 게 미안하고 불편하더라구요. 그래서 쉬이 시작을 못했었고.

        그렇지만 의심과 경시로 일관했던 제 태도는 이렇게 다시 보니 너무 부끄럽네요ㅜㅜ
    • 그런 연애 유형을 가진 분이 적잖게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은근히 흔한 것 같아요. 혹시 어떤 분이 자신의 수기와 극복기를 일러주신다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혹시 그런 분 없으려나요.
    • 심리학책에 보니까 자존감이 낮을 때 생기는 문제라고 나오더군요. 저도 예전에는 그게 좀 심해서 상대가 나한테 호감을 보이면 정이 뚝 떨어져서.. 아파트 현관에서 고백 받자마자 바로 돌아서서 집에 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번호를 차단해버린다든지 하는 못돼쳐먹은 짓을 했었는데.. 그 후로 몇 년이 지나고 자존감 낮은 게 회복되면서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썸을 타다가 중간에 확 식는다, 혹은 사귀는 시점에서 확 식는다로 조금씩 연장은 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게 극복이 안 되네요. 상대한테도 못할 짓이다싶어서 sweater님 말씀처럼 제 문제를 극복하고 나서 시작해야겠다 결심했어요. 가장 최근의 썸에서 저도 힘들었고 상대한테 죄책감도 들고 (전날까지 좋아죽을 거 같던 제가 너무 하루아침에 바뀌었으니..) 이럴 바엔 그냥 혼자 살아야겠따 싶기도 하고.. 혹자는 자존감 문제도 있지만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못 만나서 그런 것'이라고도 하던데, 잘 모르겠네요.
      • 뭐든 좋아하고 집중하고 싶은 욕구에 늘 목말라 있는 절 보면 자존감-어차피 롤러코스터같은 거니까요-도 문제지만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이 큰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은 어떻게 만나야 하나, 사교와는 거리가 먼 사회인이라 소개팅 외에는 루트가 없는데 과연 참고 만나다 보면 좋아지는 사람이 생기기는 하는걸까...싶죠.
    • 저는 망칠까봐 두려워 좋은 관계를 일찍 접어버리는 편입니다. 익명님이 상대방하고 있을 때 얼마나 편안한가 많이 웃는가 생각해보고 관계를 지속해보시죠. 참고로 여자분들은 님처럼 이성과의 관계에서 처음 방어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이들 있다고 합니다. 저 놈이 믿을만한가, 과연 나와 안정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놈인가를 무의식적으로 테스트 해 보는 거죠.
    • 구구절절 공감하면서 읽었어요. 이미 문제를 알고 있는데도 극복이 안되니 본인이 가장 갑갑하죠.
      맘에 안차는 사람들을 쳐내면서 스스로에게 '니가 쟤보다 낫다고 생각하냐'는 생각과 함께 자괴감이 들고->자존감이 더 낮아지고의 악순환이었어요.
      음.....하도 복불복이 심해서 추천드리기 조심스러운 방법이지만..
      제 경우엔 그나마 '개중 나은 사람'을 골라서 실험해보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연애를 시작했어요.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시작할때 머릿속에서 저보다 한참 위치가 낮았던 상대방을 점점 존중하게 되면서 자존감이 조금씩 채워지더라구요.
      제가 크게 바뀐 것 같진 않아요. 이 사람과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사귀게 되더라도 분명 열렬한 사모부터 시작하는 연애는 아닐거에요.
      근데 그게 아니라고 해서 실망하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서서히 애정을 느끼기 시작하는게 굉장히 놀랍고 기쁜 일이더라구요.
      • 뭔가 공감가요.
        애정을 느끼는 행위는 대상의 특징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거인것 같기도해요.
        좋아'한다' 랄까 사랑할만한 상대가 주는 느낌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능동적으로 일으켜내는 어떤 것이기도 한데
        경험을 통해 익혀갈만한 일인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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