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기억하기 싫은 과거와 다시 만나야할지도 모르겠어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제 근황 이야기를 하려고.... 아니 듀게에서 조언을 좀 얻어볼까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됐어요.
사실 글을 낮에 다 작성해놓고 올리려고 했는데 이런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크게 다가와서 심장이 아프고
숨도 쉬기 힘들 정도라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잠을 자다가 이제 일어났네요. =_=;;
그나마 자고 나니 좀 살만한(?) 상황이 되서 용기내서 올려봐요.
*일단 제 이야기를 여러차례 듀게에 쓴 적이 있지만 혹시나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링크를 걸어봅니다.
너무 길다고 느끼시면 굳이 안 읽으셔도 되요.
( 첫번째 커밍아웃글 -http://djuna.cine21.com/xe/2441917
두번째 근황글-http://djuna.cine21.com/xe/3812300
최근 수술직후 쓴 글-http://djuna.cine21.com/xe/4344861)
먼저 근황 이야기를 좀 하자면 태국에서 즐거웠던 경험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지난거 같기도 하고
한편, 이후에 정리를 좀 하긴 했는데 너무 길어서 듀게에 올릴 성질의 글은 아닌거 같아서 그만뒀어요.
아무튼 지금 제가 글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무사히 잘 다녀왔고
회복도 잘 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네요. :)
그동안 몇번 듀게에서 리플을 달때마다
절 기억해주는 분들이 계셔서 미안한 마음도 들어요.
그리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려요.
그럼 글을 시작해볼께요.
저는 지금 집에서 회복하면서-뭐 3개월이 지났으니 거의 육체적으론 불편함을 못 느껴요-
호적 정정 준비를 하고 있어요.
필요한 서류가 꽤나 많았는데 다시 한국에 오니
예전 내 자신으로 급격하게 돌아가더라구요...
결국 피일 차일 미루다 근 한달전부터 이래저래 준비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제 모든 관련 서류 준비를 마치고 법원에 제출할 일만 남았는데
제 법률 서류를 검토해주고 같이 제출해주는 분한테서 오늘 한통의 카톡을 받게 됐어요.
그리고 그 한통의 카톡 내용을 보고 전 너무나 충격을 받았고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정말 이 사람과는 다시는 만나고 싶지않았는데..." 라구요.
1.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제가 어릴때 시절부터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 할꺼 같아요.
아 먼저 그 사람이란 저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말하는 거고 지금 엄마와 이혼하고 10년 넘게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몰라요. 아니 일부러 연락을 피해왔다라는 편이 더 맞는 표현일꺼에요.
어렸을때 그 사람에 대한 제 기억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어요.
엄격하고 집안의 빠듯한 살림땜에 우리에게 언제나 원하는걸 해주지 못하는 엄마와는 달리
언제나 월급날이 되면 장난감을 사온다거나 동생과 절 맛있는 것을 먹인다거나 했던 기억이 나요.
한편으로 그 사람은 엄마가 언제나 일에 바빠 9시 이후에나 집에 왔다면 일을 할때보단 안할때가
더 많아서 우리랑 같이 놀아준다거나 맛있는걸 해준다거나 했던 기억도 나요.
그렇지만 학교를 들어가기전까진 그렇게 별달리 나쁜걸 못 느꼈어요. 비록 제가 좋아하는 책 읽기조차
마음대로 못하고 언제나 4가족이 단칸방에 비좁게 함께 자야 하는 환경이었지만 가진게 없어도 행복하다고 느꼈으니까요.
물론 그 당시에도 여전히 불규칙하고 무능력한 생황을 했던게 그 사람이었고 집에도 안들어 오는 일도 잦았어요.
그렇지만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진 같이 노는 또래 애들이랑 놀다가 동생과 둘이서 밥을 먹고 하는데 위화감을 느끼진 못했어요.
그리고 추운 겨울날 동생과 둘이 손을 꼭 잡고 밤 늦게 들어오는 엄마가 버스에서 내리길 기다리는것조차 싫진 않았구요
2.
하지만 학교라는 공간에서 지내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좋은것도 늘어났지만
저에겐 언제나 새 학기가 시작되면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졌어요.
그리고 그건 가정 통신문이라고 하나 아무튼 각 가정의 정보들을 써오는 일부터 시작되었죠.
당시 전 또래 아이들보다 비교적 성숙한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판단했고
이런 고민을 한다는게 스스로 남들을 의식하는 제 어른스러움에서 비롯된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 최초의 거짓말은 저 가정 통신문에서 시작됐어요.
아버지의 직업을 적는 란에 대해 언제나 고민을 하는건 제 자신이었고
그래서 언제나 뭔가 적당히 둘러댈만한 직업들을 적어나가기 시작했었죠.
그냥 무직이라는 것 자체보다 남들과 달라서 받는 시선이두려웠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것은 제가 학교에서만은 모범생에 부족한것처럼 없이 자라온 아이처럼 보이는
모습과의 괴리감을 없애야 한다는 제 자신의 자기 합리화이기도 했어요.
그런식으로 어린 시절부터 또 다른 내 자신을 만드는데 익숙해졌는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당시의 전 학교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오거나 제 자신에 대해서 알려주는 일을 철저하게 막았고
학교에서만은 모범생 캐릭터를 잘 수행했어요.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집에 왔을때였죠.
동생은 저보다 어렸고 책 읽기도 싫어했기에 학습 진도 자체가 또래 애들보다 지지부진했어요.
그래서 전 집에 오면 동생과 놀아주고 공부도 가르쳐주고 거기에 더해 밥을 해주고 하는 등의
엄마 노릇도 해야 했어요.
물론 대부분의 집안일을 엄마가 다 했기에 그렇게 힘든 부분은 없었지만요.
당시에 그 사람은 집에 돌아오면 낮잠을 자고 있거나 한동안 사라지거나 하는 일이 많았고
가끔은 밤 늦게 까지 기다렸다가 엄마랑 싸우기도 했어요.
뭐 그럴때마다 물건들이 날라다니고 파괴되는 일은 잦았고
그것을 말리기엔 동생과 저는 너무 어렸기에 가장 큰 무기는 '우는 것' 뿐이었죠.
그래도 그 때만해도 술을 많이 먹거나 엄마를 때리거나 동생과 절 때리진 않았기에
여전히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무능한건 사실이라도 그게 나쁜건 아니라구 말이죠.
3.
그 사람은 외동 아들에 할머니 혼자 손에 의해 키워졌어요.
할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이기에 애지중지 그사람을 키웠던거 같고
그것의 영향으로 언제나 아이같은 사람이 될수 밖에 없었던거 같아요.
사실 아이같은 게 잘못된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 아이가 부모가 되고 자신의 처와 아이들에 대한 책임 의식이 제로라서 문제였지...
중학교때부터는 그나마 그 사람은 일을 안정적으로 했고 엄마에게도 어느 정도의 생활비를 주기 시작했어요.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집까지 장만했던 엄마에겐 그렇게 큰 도움은 안됐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그나마 제 인생에서 가장 부유했던 시절이었던거 같아요.
뭐 직업이라기보단 자신의 친구 사업 관리자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 사업이 번창하면서
어느정도 여유가 생겼으니까요.
그렇게 여유가 생기게 되자 전 제 문제만 신경쓰면 될 줄 알았어요.
그때 저도 이제 사춘기에 들어가면서 성적 정체성 문제나 왕따 문제같은걸 겪고 있었고
중학교때부터 입시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근데 그렇게 한동안 안정적으로 일을 하던 그 사람은 집에 들어오는 일이 오히려 더 줄어들었어요.
엄마는 여전히 일을 해야했고 그래도 월급날이면 어느정도 생활비를 줬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그 사람의 친구가 엄마를 찾아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갔고 엄마는 죄송하게 됐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던 기억이 나요.
그동안 그 사람이 회사의 공금을 횡령했고 일도 안하고 도박을 하러다니고 심지어 여자까지 만나고 다녔다라는 이야기였죠.
엄마는 어짜피 그 사람에 대한 정 보단 저희가 클 때까지만 참고 살려고 계속 마음을 먹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때는
참기 힘들어했던거 같아요.
다행히 그 사람의 친구는 그래도 친구라고 피해에 대한 보상을 원하지 않고 그 사람을 회사에서 내쫓는것으로
마무리 한다라는 말을 해줬어요.
그게 아마도 제가 고등학교를 막 입학할 즈음이었던거 같아요. 그리고 여러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터졌어요.
엄마가 갑자기 직장에서 뇌출혈로 쓰려지셨다 죽다 살아났고 그 사람도 나쁜 사람은 아닌지라 한동안 병원에
저희랑 같이 자주 가게 됐어요. 그로 인해 한동안 그사람과 엄마의 사이도 다시 좋아지는거 같았어요.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았고 좋아진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어요.
4.
친구의 회사에서 짤린후 그 사람은 그래도 한동안 가족이라고
막노동을 전전하면서 생활비를 벌어올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천성이 게으르고 힘든일을 안해본 사람이라 오래가진 못했어요.
그렇게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후회 그리고 당시 상황에 대한 절망이 겹치면서
그 사람도 불안했던거 같아요.
술을 먹고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고 정말 기억하기 끔찍한 기억이지만
한번은 칼을 들고 와서 다같이 죽자라고 위협해서 경찰에 신고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게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가 경찰을 불렀던 일이었던 거같아요.
하지만 전 학교에서만은 비록 성적은 떨어져나갔어도 여전히 밝고 사교성 있는 모습을 보였기에
아무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때부턴 저 역시 학교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기에
그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많진 않게 됐어요.
아마 제 가장 큰 잘못은 이때 가족들과 대화 자체를 피하기 시작한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그리고 동생은 어땠는지 말이죠.
그리고 깨달았어요. 아마 전 그 사람의 '아들'이었고 그 사람을 은연중에 닮아갔다라는 사실도요.
철저하게 자기 생각만하고 책임져야 할 상황들을 피해버리려고만 한거죠.
그리고 전 그 사람을 닮아가는 제 자신이 너무 싫었어요.
제 남성불신은 그 사람에게서 비롯된것일 테고 저에게 아버지란 상은 어릴때부터 없다시피 했어요.
제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확신을 늦게 가지게 된 이유 역시 아마도 보통의 남성들의 모습에
저 사람을 대입시켰고 그래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기 때문일꺼에요.
5.
엄마는 절 자유롭게 해줬어요.
넉넉하진 못했지만 언제나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내버려두었고
대학교에 가서도 하고싶은 일은 마음껏 하게끔 해줬던거 같아요.
그렇지만 동생은 여전히 아직 고등학생이었기에
엄마의 참을성은 계속되어야만 했어요.
그렇게 동생까지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엄마는 그 사람과 이혼을 결정했어요.
정말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을테고 전 당시에도 혼자 멀리 학교에 떨어져 있었기에
이혼을 했고 집을 이사한 사실조차 뒤늦게 전화로 알게 됐어요.
그렇게 엄마는 자유로운 몸이 된거 같았고 전 멀리서 있었기에 당시에 그 상황에 대한 관심도 축하도 해주지 못했어요.
다만 엄마가 이제 자유로와졌으니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후에 현실적으로 방해물만 됐을 뿐이죠.
지금 엄마는 저와 같이 한 집에 살고 있는 새 아빠와 만났고 이 사람은 꽤나 보수적인 아버지 상에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물론 이 사람에 대한 생각도 다른 이가 보기엔 달라질 수 있는 문제기에 여기선 상관없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두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새로운 만남을 시작했지만 현실이 꼬여갔고
그 복잡하게 꼬인 실들을 더 단단하게 뭉쳐버리는데 제가 일조하고 있긴 해요.
6.
카톡의 내용은 친부의 동의서가 필요하다라는 것이었어요.
지금의 부모님들 모두 동의서를 써줬지만 생물학적인 친부의 동의서가
없으면 호적 정정에서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라는 거였어요.
하지만 전 그 사람과는 10년이 넘게 연락을 하지 않은 상태이기에
연락할 방법도 모르고 연락을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지금 제 모습을 보여주고 설명을 하고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상상하는것만으로도 답답하고 어지로울 지경이에요.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는 순간 엄마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전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걸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그 동안 짐이 되버린 제 자신도 모자라 또 한번 엄마에게 과거를 떠올리게 한 꼴이 된거니까요.
엄마는 신경질적으로 저에게" 알아서 하라"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서운함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더 컸고 그렇게 완전 패닉 상태로 하루를 보냈어요.
그리고 지금 전 선택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사는지 조차 모르는 그 사람을 끝까지 찾아내야 할지
아니면 마음씨 착한 판사를 만나 이런 상황들을 이해받는 요행만을 바래야 할지 말이죠.
7.
이 부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덧붙여봅니다.
제 지인이 대법원 전자민원센터에서 찾아낸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예규인데요.
여기 HWP파일을 보면 제3조 첨부서류에서
6번 항목을 보면 부모의 동의서 (다만,부모가 없는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전속중 최근친의
동의서를 제출하되,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존속이 없는 경우에는 동의서를 제출할 필요가 없음)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지금 저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될지가 궁금하네요.
그리고 제 서류 검토를 도와주신분 말론 이혼하지 않은 상황에선 친 부모중 한쪽의 동의서만 있으면 되는데
이혼한 상황에선 양쪽 다 필요하다고 하네요.
또한 앞에서 미리 못썼는데 몇해전에 그사람이 이혼전에 산 물건땜에 독촉장이 저한테까지 날아왔었고
그거때문에 친자포기 각서를 썼던 기억이 나요. 이렇게 되더라도 친 부모로서의 효력이 유지되는건가요?
아무튼 정말 답답한 상황인지라 어떻게 해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네요.
PS.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사드려요. 사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그 사람을 원망하고 싶다거나 그런건 아니에요.
다만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과 만나야 하는 상황이 너무 싫으네요.
PS2. 이 글은 근황 이야기가 아니니 아마도 적절한 조언을 듣게 된다면 삭제할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