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은 리플릿 이야기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출판인입니다.
오늘은 리플릿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리플릿이 무엇이냐면
책 사면 안에 들어 있는 광고지입니다.
며칠 전, 디자인 작업을 마친 리플릿 1번(이하 B)의 필름을 들고 인쇄소에 들어갔습니다.
책은 이미 인쇄를 마친 상태. 책에 들어갈 부속물임에도,
부속물이 늦어져서 책 작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당연히 마음이 급했지요.
그런 와중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목에서 디자이너와 저 사이에 작은 의견충돌이 생겼습니다.
접지방식에 대한 견해차였어요.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리플릿 0번(이하 A)을 만들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일 년 전, 저는 어떤 책을 출간하면서 A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 결과물이 ‘1번’이 아니라 ‘0번’이었던 이유는,
당시만 해도 아직 리플릿의 컨셉('컨셉트'가 표준어지만 어감상)과 형태를 확실하게 구체화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단’ 혹은 ‘찌라시’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일반적으로 책의 홍보를 목적으로 만들어집니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독자들은 그것을 전혀 들여다보지 않지요.
대부분 비슷한 패턴으로 구성되어 일반적인 줄거리가 나열된,
다시 말해 자사 도서에 대한 ‘대놓고’ 홍보(게다가 재미없어)일 뿐이라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선전하면서도 독자들로 하여금 읽고 싶어지게 하는 컨셉.
찌라시로 치부하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형태.
제가 구현하고자 했던 리플릿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리플릿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에 또 언급할 기회가 있을 테니 오늘은 형태,
즉 접지방식에 대해서만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A는 책갈피 대용으로 사용이 가능하도록 만들기로 했습니다.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으면서도 책갈피처럼 사이즈가 슬림하려면 여러 번 접어야 하지요.
그래서 택한 게 병풍접지 방식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병풍접지는
말 그대로 여러 번 접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한 번이나 두 번 접는 것보다
비용이 더 발생합니다.
더구나 한 번이나 두 번을 접는 방식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제본소의 경우 자동으로 접지할 수 있는 기계를 보유하고 있지만,
병풍접지와 같은 형태로 접으려면
접지를 전문으로 하는 (외부) 업체에 따로 맡겨야 하기 때문에
비용과 더불어 시간도 배로 들어갑니다.
허나 이 부분에 대한 비용과 시간은 애초에 감안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간과했던 것은 접지를 끝낸 리플릿을 책에 삽입할 때도
접지방식에 따라 비용이 다르게 책정된다는 부분이었어요.
즉, 리플릿이 양쪽으로 입을 벌리고 있으면(사진 왼쪽, 혹은 위),
리플릿이 한쪽으로 입을 벌리고 있을 때(사진 오른쪽, 혹은 아래)보다
비용이 2배 더 들어가는 겁니다.
사진 오른쪽(혹은 아래)의 경우는 기계를 사용하여 자동으로 삽입이 가능하지만
사진 왼쪽(혹은 위)의 경우는 하나하나 손으로 책에 끼워 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끄럽게도 A를 만들 당시 저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B의 필름을 들고 인쇄소에 들어간 날 자세히 물어보고서야 겨우 알았어요.
비용을 1/2로 줄일 수 있다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험인쇄를 한 B를 펼쳐놓고 고민해 보았지요.
‘사진 오른쪽(혹은 아래)’이 가능할 것 같기도 했어요.
접히는 부분마다 섹션이 나누어지는 A와 달리
B는 상대적으로 접히는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B는 이미 디자이너가 마감을 어기는 바람에 제작이 늦어진 상태였지요.
신간에 삽입해야 하기 때문에 인쇄를 마친 책은 대기중인 형편이었습니다.
한쪽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형태로 접으면
기계를 사용하여 빠르게 삽입할 수 있으니 비용과 더불어
시간까지 절약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단은 디자이너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바로 디자이너와 통화했지요.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NO.
B 역시 애당초 병풍접지 방식을 고려했던 디자인이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저 역시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A와 같은 디자인이었다면 몰라도
B과 같은 디자인이라면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는 거 아니냐.
게다가 비용과 시간까지 줄일 수 있지 않나.
입이 양쪽으로 벌어져 있든 한쪽으로 벌어져 있든
독자들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을 것 같은데,
얘는 뭐 이리 쓸데없어 보이는 스토리를 이토록 장황하게 읊조리고 있나
하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죠. 별거 아닐 수 있지요.
줄일 수 있는 비용이라고 해 봐야 몇 십만 원 정도.
그냥 하던 대로 하는 편이 덜 귀찮고 속 편해요.
문제는 출판을 하다보면 심심치 않게 이런 경우와 맞닥뜨리게 된다는 겁니다.
대개 인간은 여러 가지 이유로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강한 성향을 갖습니다.
좀 있어 보이는 말로 하면 이를 ‘현상 유지 편향’이라고 하지요.
쉽게 말해 타성에 젖는다는 뜻입니다.
어느 조직에서 뭔가를 결정할 때 기존의 했던 방식을 바꾸려면
필연적으로 그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럴 경우 때때로 피곤한 일이 발생하곤 하지요.
위 사례에서 만약 제가 그냥 A처럼 하기로 결정했다면
디자이너와 저는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자꾸 쌓이다 보면,
뭔가를 결정할 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이 되풀이 된다는 걸
저는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그거 비용이라고 해 봐야 얼마 되지 않는데 그냥 하던 대로 하시죠.”,
혹은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면 저 사람이랑 또 싫은 소리를 섞어야 되는데, 흐음, 그냥 하던 대로 할까.’
이런 타성에 젖은 결정으로 인해 조금씩 쌓이는 비용이
몇 년 후에는 점점 커지고
그것이 장기적으로 책값에 반영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당장,
당장 그 몇십만 원이 아깝기도 했어요.
그거 비용이라고 얼마 되지 않는데 그냥 하던 대로 하라니
무슨 당치도 않은 소리냐.
나는 그 ‘얼마 되지 않는 돈’이 아까운 거란 말이다.
흐음, 그렇다면 저는 그 신간에 들어갈 리플릿을
한쪽으로 입을 벌리게 했을까요,
양쪽으로 입을 벌리게 했을까요ㅎㅎ.
대체 리플릿은 왜 만드는지 모르겠어, 종이 낭비 아니야?
하는 어느 독자분 얘기를 듣고
문득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뭐 열심히 만들었으니 잘 봐 달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혹시 이 글을 보고 여러분이 읽던 책 속에서 리플릿을 발견했을 때
휙 버리지 마시고 한 번 들여다봐 주십사 하는 취지에서... 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