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가을날의 편지를 좋아하시나요?
안녕하세요, 어릿고양이입니다.
가입인사 후 첫번째 글이네요.
어머니 댁에 내려와 있습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있던 방정리를 하는데 십년 전 부터 펜팔하며 모았던 편지들이 아직 남아있군요. 카드 까지 합치면 백 수십통은 될 것 같아요.
펜팔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때 였습니다. 원래 무언가 쓰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친구들한테 크리스마스 카드 같은 건 항상 쓰곤 했었거든요. 상대방은 온라인 게임에서 알게 된 여중생이었어요. 제가 수능 칠 때까지 했으니 이년은 넘게 한 것 같아요. 편지를 주고 받는 주기가 상당히 빨라서 제일 많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두번째 상대는 첫번째와 겹치면서 시작되어 대학생 초반 때까지 였습니다. 역시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이구요, 천천히, 그리고 오래 편지를 주고 받은 상대였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도 한 번씩 주고 받았네요. 그때 받았던 목도리를 아직까지 갖고 있어요. 늘어져서 하고 다니지는 못하지만요.
세번째는 군대에서 였습니다. 블로그 이웃이었는데 상대방이 저에게 여러 질문을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알고보니 나이 차이가 무려 8살. 두번째 이후로 오랜만이었고 군복무중 이라는 특성상 답장이 오길 가장 많이 기다렸던 펜팔이 아니었나 싶네요.
펜팔의 끝은 항상 이렇습니다. 졸업, 입학 같이 상황이 급변하거나, 한번도 만난 적 없는 펜팔 상대를 만났을 때. 그렇다고 당장 연락이 끊어지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오래 알고지냈으면 이미 상대방의 메신저나 휴대폰, 블로그 등의 주소를 서로 알고 있으니까요. 후자의 경우는 관계가 아예 바뀌어버리는 경우에요. '펜팔 친구'에서 '지인'으로 관계가 바뀌어 버리는 거지요. 굳이 편지를 보내지 않아도 얼마든지 연락할 수는 있는 그런 지인이 되어버려서 오히려 편지를 보내는게 어색해지죠.
그래서 펜팔 상대와는 실제로 만나지 말라는 걸까요.
오래전 일이니까 말해보지만 두번째 상대는 실제로 마음이 있었어요. 말도 잘 통하고 취미도 비슷하고 생각도 깊은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딱 한 번 만났어요. 사는 곳이 대한민국 끝과 끝이라 더 이상 만나지는 못했고 제대로 마음을 전하지도 못한 채 자연스레 연락이 끊기게 되었어요.
오랜만에 편지를 보자니 편지지에 아무 말이나 끼적이고픈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옵니다. 한창 펜팔할 때는 예쁜 편지지 찾겠다고 여러 문구점을 발품팔기도 했었지요.
혹, 가을날의 편지를 받고 싶으신 분 계신가요? 가까운 날이 생일이라거나 좋은 일이 있어서 축하편지 한통 받고 싶다거나 각종 요금 고지서만 꽂혀있는 우편함이 싫다- 하시는 분은요?
잉크냄새가 솔솔나는 괴발개발 종이뭉치를 날려드립니다.
덧 하나. 쌓여있는 편지를 열어보고 싶었지만 오그라들 것 같아서 차마 그러지는 못했어요.
덧 둘.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