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가고 싶어요.

...제목은 약간의 훼이크

 

30여시간의 비행 끝에 아기와 저는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그 비행에 관한 이야기는 저로서는 해도해도 모자랄 것 같기에 과감히 생략.

도착한 후로 내내 소처럼 일만하고 있어요.

제가 가져온 태산 같은 짐도 정리해야 하고 기존에 있던 물건들도 새롭게 정리해야 하거든요.

 

예전 같으면 30시간 가까운 비행 뒤에는 일박이일쯤 늘어져라 잠을 자야

컨디션을 회복할 것 같았는데,

딸린 아기(ㅋㅋ)가 있으니, 그럴 수도 없네요.

도착한 날(저녁에 도착했어요)에도 3시간이나 잤나. 시차적응이 안되었던 거 같아요.

새벽녘에 깨어 심심해서 세제와 수세미를 들고 찬장정리를 했어요.

X개월간 남자만 살던 집 찬장에서는 개미들이 우글우글,

그릇장에 소금 자루가 놓여있지 않나 냄비장에 반찬그릇과 수저 두세벌이 놓여있질 않나

자리배치에서 몽땅 벗어나 있더군요.

그로부터 3일 정도 지나니 비로소 6시간 이상 잘 수 있었는데-아마도 긴 비행동안 아기를 책임져야 한다는 긴장감이

풀리지 않아서 더욱 깊이 잠들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조차도 밤중수유때문에 '쭉잠'은 잘 수가 없더라구요.

 

저는 집안 꾸미는 일은 좋아합니다.

하지만 정리정돈, 설거지 등의 일은 질색이었어요. 할 수만 있으면 슬슬 피해가고 싶어했죠.

그런데 이번에 아길 데리고 저희 살던 외국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아침부터 설거지도 열심히 하고 행주도 싹싹 빨고 세탁기도 잘 돌리고 정리정돈도 열심히 해요.(저는 전업주부이니 당연한 일을 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예전보다 훨씬 성실해진 것 같아요 ㅎㅎ)

차라리 아기보기 말고 집안일만 하라면 하겠어요.

복병은 제 아기...

낯가림이 시작되었는지 잠든 시간 빼곤 저 없으면 난리가 납니다.

화장실도 갈 수가 없어요. 아기가 울어대서.

지난 주말 약 3~40분만 저 혼자 나가서 커피 마시고 오기로 남편과 쇼부보고, 홀로 길을 나섰는데

몸과 마음이 너무 가벼워서 새털처럼 날아갈 것 같았어요.

커피도 어찌나 맛있던지.(이 나라가 원래 커피는 끝내주니까요!)

 

지금도 전철타고 중심가에 나가서 쇼핑센터도 둘러보고 싶고

예전에 홀몸일 때는 저녁무렵 남편을 만나러 가서 함께 저녁밥을 사먹던 중심 거리도 가보고 싶고.

아니 아니 하나못해 맥도날드 가서 감자튀김에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고 싶은데,

 

아기를 데리고 갈 생각을 하면 까마득해요.

아기띠하고 전철 갈아타며 나갔다가, 아기가 중심가 한복판에서 울어대면 어떡하나(별다른 유아 시설이 없는 장소에서라면 더더욱),

하다못해 아기 유모차 끌고 맥도날드 가서 감자튀김 먹었다가 ' 아니 아기엄마가 정크푸드를 먹다니! 저 아기의 식생활의 앞날은 뻔하군' 이라는 듯한

현지인의 눈총이라도 받으면 어쩌나<-이건 좀 지나친 걱정인가요?

 

아아

자유롭게 거리를 마구마구 돌아다니고 싶어요

집 나가고 싶어요.

지금은 아기 유모차 끌고 집 나가봤자 아기와 둘이 들어갈 수 있는 데가 마땅찮아서(오로지 마트 정도. 그런데 어제 아기가 마트에서 계속 칭얼거려서

그조차도 두려워졌어요) 집을 나가도 갈 곳이 없네요.

그냥 두런두런 넋두리였습니다.

    • 저도 이번주 일요일이면 100일이 되는 아가를 배에 올려놓고 듀게를 하고 있다보니... 공감이 많이 가는 글입니다. ㅜ_ㅜ
      물론 전 집안일 같은건 내팽겨치긴 했지만.. ;_;

      그런데 과감히 외출 다니세요. 수유실 같은건 미리 좀 체크해놓으시고요. 첫째때는 백일 전까지 정말 꼼짝 마라 하고 집에 있었고 그 이후에도 외출이라는 건 거의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그랬나 싶더라구요. 둘째는 백일 전에도 마구마구마구 외출했습니다.
      얼마전에 백화점에 갔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애기가 백일도 안된거 같은데 안타깝다고 계속 하시던데.. -_-;
      '애기보다 내가 더 안타까워 이사람아! 별걸 다 오지랍이셔!'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구경하다 왔어요.
      밖에 다녀보면 어린 아가들 끌고 다니는 엄마들 꽤 많구요. 한국이 아니시니 그곳 분위기는 어떨지 모르지만 못할것 없습니다.
      걱정되신다면 처음엔 아기 배부르게 먹여 놓고 낮잠 시간 맞춰서 짧게 한시간 정도 외출해보시면서 수유실 위치 같은거 확인하시고 돌아오시는것도 좋구요~
      아기들 밖에 나가면 구경하느라 재미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안울더라구요. 한번 해보세요~
      30시간씩 비행도 하셨잖아요~ 외출 정도야 식은죽먹기죠!!
      • 흐흐 저도 한국에 있었을 때 가끔 아기 데리고 외출 나가면(그때는 지금만큼 크지 않았으니까요. 지금도 아직 작은 아가이긴 하지만요 ㅎ)
        "어머, 갓난아기네..." 하면서 신기해 하는+저 작은 아기를 어떻게 데리고 나올까 하는 염려섞인 눈빛을 받곤 했어요.
        이 나라는 아이들을 좋아하고 예뻐라하고, 또 동양아기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동양인 성인은 그닥 좋아하는 것 같진 않긴 하지만 ㅎㅎ)
        그래도 남의나라다보니, 그리고 제가 여기 말이나 관습 문화 등등을 아직 다 익히지 못해서인지
        뭘 해도 약간 걱정+ 주눅이 들어요.
        그래도 레옴님 말씀처럼, 제가 아기 데리고 30시간 비행한 사람이라는 걸 잊고 있었군요...ㅋㅋ
        힘을 내보아야겠어요! 감사해요.
    • 저는 미혼이라 레옴님처럼 실질적인 도움은 못 드리겠지만,
      예전 닉넴일 때부터 쭉 글 읽었었어요, 그 전엔 제가 등업을 하기 전이라 리플 달고 싶은 글이 있었을 때도 발만 동동 구르며 넘기곤 했었어요.
      지난 글에서 30시간 동안 비행을 앞두고 엄마 몸도 불편한 상태고 아기도 아프다고 하셔서 걱정을 했었는데
      무사히 잘 도착하셔서 청소까지 하셨다니 다행이에요^^. 그래도 너무 무리해서 하지 마세요. 천천히 하세요.
      30시간 비행이 보통 힘든 게 아니거든요. 지금 당장은 괜찮아도 며칠동안 무리하시면 뒤늦게 몸살 올 수도 있어요. 살살 천천히 하세요:)
      그리고 글 읽으면서 울컥 울컥 했습니다.
      저희 엄마도 저와 제 동생을 이십 몇 년 전에 이렇게 키웠겠구나..하는 생각에 코가 시큰시큰해져요.

      제가 3살 때 제 동생이 갓 돌을 지났을 때 할아버지께서 큰 할아버지 댁에 제사를 가라고 하셨대요.
      아이들 모두 데리고. 그때 당시에는 저희 집이 차가 없어서 아빠와 아이 둘을 데리고 그 먼 길을 가는데 ,
      평소에는 순하고 울지도 않던 동생이 차에 타자마자 엉엉 울기 시작하는데 주변 사람들 눈치보랴, 아이 달래랴 한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하셨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었어요. 그 뒤 바로 차를 사긴 했지만, 차가 있든 없든
      아이 데리고 어디 가는 건 참 힘들죠.
      굉장히 대단하시고 멋진 일을 하셨어요. 짐도 많으셨을텐데, 그 먼 거리를 잘 가시다니. 제가 다 기쁘고 칭찬해(?)드리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아기 데리고 여기 저기 마구 다니세요.
      아는 분께서 첫 아기 일 때는 백일이 넘을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둘째를 낳고 보니 답답하게 왜 그러고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어느정도 내공도 생기고 하니 둘째는 백일 전에도 마구마구 데리고 다니셨어요.^^

      그리고 참견하는 분들, 아기가 작으면 작다고 참견이고, 춥게 입히면 춥게 입혔다고 참견이고, 그런 거 신경쓰면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으셔요. 좋게 말하면 정이 많은 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남의 일에 참 관심들 많으셔요. 다 무시해버리세요!!

      저는 뱃속에서부터 엄마를 엄청 힘들게 했다고 해요. 엄마가 보통 체중이 45-6이신데 저 낳으러 가셨을 때 몸무게가 49였다고 합니다.
      제가 3.5로 태어났고요. 딱 제 몸무게만큼 늘었으니, 10개월동안 엄마가 얼마나 심하게 입덧을 했는지, 저는 상상조차 못하죠..
      그런데 낳고 나면 끝일 줄 알았는데 엄마만 찾고 땅에 내려놓으면 잠도 자질 않고 밤새도록 울고불고.. 그래서 저를 업고 매일 꾸벅 꾸벅 조셨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참으로 위대해보여요.
      가끔 대중교통을 타고 가다보면 엄마들을 만나게 되는데, 제가 막 유난스럽게도 코끝이 찡해지고 엄마들이 멋있고 대단하고 훌륭해보여요.

      아기가 칭얼거리더라도 주변 사람들 눈치가 좀 느껴지더라도
      공원이고 마트고 길이고 자유롭게 다니세요^^ 그러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후련해지지 않을까요.
      별 내용도 없는데 리플이 굉장히 길어졌을 거 같아 민망합니다;;;
      레옴님,하늘님. 듀게의 엄마들 화이팅! 그리고 감사합니다~
      • 사월님 염려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제가 왜 병이 안 났나 모르겠어요^^; 아기가 아직 제 아빠에게까지 낯을 가려서,
        제가 여기서 아프거나 하면 큰일인데 말이에요.
        사월님 어머님 이야기를 읽으니 제 맘이 다 아프네요. 그 전에는 막연히 힘드셨겠다...생각했을텐데.
        애 데리고 먼길 다녀와보니 속속들이 공감이 되네요. 게다가 어머님은 저처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칭찬받아서 기뻐요. 실은 아기 데리고 두바이에서 비행기 갈아탔을때, 아기가 너무나 고생하는 것 같았어요.
        온갖 인종 연령대 다 모인 복잡한 두바이 공항을 다 헤치고 다니고, 이제껏 제가 타본 여객버스(도킹이 안 된 비행기를 타러 가는 버스 있죠)중에서
        가장 거리가 길고 후텁지근한 여객버스를 타고 목적지를 향한 비행기에 오른 아기가 너무 장하더라고요.
        그래서 아기에게 마구 칭찬해 주었어요. 너 참 잘했다고. 너같은 아기 또 없을거라고.
        그랬더니 아기가 갑자기 손을 들어서 제 이마끝부터 턱끝까지 스으윽, 위무하듯 쓰다듬더라고요.
        저는 그 손길이 엄마도 애썼어. 하는 듯한 칭찬으로 느껴져서 찡했어요.
        사월님 말씀을 들으니 자신감이 조금 생겨요.
        감사합니다!
        • 아기도 엄마의 칭찬을 느낄 거예요. 아기도 낳아보지 않았지만 저는 그렇게 믿어요!
          어릴 때의 기억을 해봐도 저는 예민하게 엄마의 모든 감정을 다 느끼고 알아챘거든요 ㅎㅎ
          하늘님 아기도 정말 대단해요. 박수 짝짝.
          직항도 아니었는데 얼마나 힘드셨을까...
          저는 비행기가 워낙 건조하다보니 몇시간만 타고 있어도 물먹은 솜처럼 몸이 늘어지고 뻗는데
          그 긴 시간동안 아기도 엄마도 정말 잘 버티셨어요.
          장하고 착한 아기와 멋지고 위대한 엄마를 위해, 또 오랜만에 모인 온 가족을 위해
          근사하게 외식하세요^^
          자신감 많이 팍팍 가지세요!!
          하늘님 정말 대단한 엄마세요!! 박수 짝짝짝 환호성 와와와와와
    • 어머니
      -김초혜

      한몸이었다가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
      어머니하니 생각나는 시가 있어서요^^
      밥 많이 드시고 힘 팍팍 내세요!!
    • 힘만 내면 더 좋을게 없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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