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새끼 고양이 이야기
점심을 먹으면서 동료들과 죽은 새끼 고양이 얘기를 했어요. 잘 견뎌주었더라면 지금쯤 아무런 저항없이 뱃살을 보이며 누워 잠들어 있을텐데. 애초에 길고양이를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 라는 후회와 며칠이라도 따뜻한 곳에서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 길에서 혼자 죽었을지도 모르잖아. 잘했어- 하는 위무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쓸쓸하구나 혼자 조용히 생각했어요.
11월에 들어 철야하는 날이 많아졌어요. 일년 중 제일 바쁠 때고 12월 아니 어쩌면 1월까지 내내 이렇게 바쁘겠죠. 여름 한 철 스케줄이 넉넉할 때는 일이 이렇게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되다가도, 찬바람 불기 시작하며 바쁘지게 되면, 하, 이렇게 사는 게 진짜 사는건가 하는 회의가 들죠. 모두 지쳐있고 마침 옆 건물을 허물고 새로 건물을 올리느라 연일 중장비 소음에 시달려야 했어요. 점심 먹을 곳도 마땅치 않아서 매번 십여분씩 골목을 어슬렁거리다 누구 한명 용기를 내어 지목하는 가게에 별 저항없이 몰려가 꾸역꾸역 밥을 먹는 일들이 이어지는 그런 시기죠.
그날, 그러니까 지난주 화요일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오는 가장 빠른 골목을 지나쳐 다른 골목으로 회사로 오고 있는 중이었어요. 점심 먹으러 나가는 길에 커다란 쥐 한마리가 죽어 있는 걸 본 터라, 멀리 돌아서 오는 중이었죠. 걷다가 무심고 오른쪽으로 나 있는 골목을 보는데 저만큼 자그마한, 아기 양말같은 게 골목길 한가운데 보였어요. 그런데 얼핏 쫑긋 고양이 귀 같은 게 돋아나 있는 것 같았죠. 저는 옆에서 걷던 이를 툭 치며 "저기, 새끼 고양이 같아요"라고 했는데 다들 안 보인다는 거예요. (그래요 전 올해 라식을 했죠) 분명 새끼 고양이가 맞다고 확언하고는 모두를 이끌고 그 골목으로 갔어요. 그리고 거기서 하얀 양말을 야무지게 신은 노란색 치즈냥이를 만났어요. 길 한가운데 웅크리고 앉아서 애옹애옹-하고 울다 우리가 다가가자 몇걸음 도망쳐서는 타조처럼 얼굴만 묻고 또 울었어요. 애옹애옹-
길에서 함부로 새끼고양이를 주워오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어요. 아주 어린 새끼냥이들은 엄마냥이가 잠시 두고 먹을 것을 구하러 간 것이거나 엄마냥이 애타게 찾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죠. 그런데 이 녀석은 하수구에 빠졌다 나온 것처럼 털도 엉망이고 눈곱도 덕지덕지, 기력이 없어 제대로 울지도 못해요. 오랫동안 엄마에 보호를 받지 못한 녀석이죠. 그리고 길고양이 같지가 않았어요. 아무리 아파도 길에서 나고 자란 녀석은 습성상 한번쯤 하악질을 하거나 사람이 다가가면 멀리 도망치는 게 당연한데 말예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탓에 고양이들과 친했고 한때(이십대 초반)는 길냥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저 아이가 무엇을 바라는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초능력이 내게 있구나 혼자 비밀로 기뻐하던 때가 있었던지라, "녀석 울음소리가 지금 배고프고 춥다는데요"라고 모두에게 말했더니 다들 방청객 효과음처럼 "으앙~"하고 합창했어요. 그래요 어쩌면 이건 똑똑하지 못한 동정심일지도 모르죠. 잠깐동안 깊게 고민했지만 저는 녀석을 짚어 들었어요.
고양이 한마리를 데려온다는 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 모르실거예요. 어느 날 그 고양이를 다른 이 손에 맡기고 떼어놓고 와야 할 일이 생길수도 있어요. 그럴땐 자식 떼어놓고 팔자고치는 그런 기분이에요. 이게 비약이라고 웃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래요. 그러다 어느 날 떼어놓고 온 그 고양이가 아파요. 소식으로만 전해 들으면 잘 믿겨지지가 않죠.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보내다 녀석을 보러 가요. 녀석은 아프고 죽어가고 있고 나는 오랫동안 돌보지 못한 죄책감과 이제와 새삼, 네가 죽기라도 하면 너는 나를 마지막으로 어떻게 기억하고 떠날까 두려워지는거죠. 그렇게 보낸 녀석을 오래 가슴에 묻고 사는 일. 헤어진 연인은 어딘가에서 나보다 현명하고 늘씬하고 상냥한 여잘 만나 아들딸 낳고 잘 살기라도 하겠죠. 그런데 키우다 다른 이에게 맡긴 채 죽은 고양이는 평생 가슴에 남아요. 매일매일 떠오르는 것이라면 익숙해지기라도 할텐데. 일년에 한두번, 골목길에서 비슷한 고양이를 만나면, 예전에 써놨던 블로그 게시글을 보다가, 지갑 정리를 하다가 카드 사이에 끼어 있는 녀석 사진을 보다- 그렇게 준비도 없이 한번씩 푹- 찔리게 되는거죠. 그렇다고 이게 누굴 붙잡고 울 수 있는 일도 아니잖아요.
병원에서는 괜찮을 거라고 했어요. 어미에게 버려진 지 오래된 것 같다고 탈수가 심하다고, 기본 검진에서는 별 이상이 없었고 귓속도 깨끗했어요. 사람 손을 탄 아이 같다고 했고, 설사가 심한데 범백이 의심되긴 하지만 일단 며칠 약을 먹이며 지켜보자고 했어요. 몸이 너무 더러워서 털을 씻어냈고 수액도 맞으며 반나절 넘게 병원에 있었죠. 우리는 고민에 빠졌어요. 이 녀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무실에서든 키우자는 게 반의 의견, 딱히 방법이 떠오르진 않지만 사무실에서 키울 수 있겠냐 하는 의견이 나머지 절반의 의견. 저는 사무실에서 키우는 것도 찬성이고 병원비나 사료값 등은 회사 지원으로 충당하겠지만 누군가 한명 확실한 보호자가 필요하고 주말이나 장기간 사무실을 비울 때는 집에 데려가야 한다고 했죠. 그 의견에 두명이 일단 찬성했고 그들이 엄마, 아빠가 되주기로 했어요. 일단 기력을 회복하면 그들이 키우든, 입양을 보내든 다시 결정하기로 했죠.
그리고 우리는 사흘동안 철야를 했어요. 새벽 세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도 아침 아홉시 즈음 모두 나와 책상앞에 앉았어요. 커다란 박스에 핫팩도 깔아주고 물과 사료도 넣어주고 모래도 깔아주고 녀석이 있는 곳을 지나칠 때면 다들 그 박스를 내려다보며 "기운내! 힘내! 어서 나아서 저 책장 위에 올라가 놀아야지! 너를 안젤리나 졸리에게 입양시켜 줄께!" 한마디씩 말을 건넸어요. 첫날에는 골골골도 하고 사료도 잘 먹고 박스를 탈출해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고 둘째 날에는 편한 자세로 잠도 자고 약도 잘 먹었어요. 헌데 셋째날부터 기운이 더 없어 보였죠. 우리는 약도 남았고 병원 갈 날이 이틀 남았으니 기다려 보기로 했죠. 그렇게 화, 수, 목을 보내고 금요일에는 다들 퇴근이 빨랐어요. 저녁 열시쯤 회사를 나서며 녀석을 무릎에 앉혀놓고 오늘밤이 네가 혼자 보내는 가장 긴 밤이 될거다. 허나 내일, 토요일이지만 우리는 일찍 올거고 우리 중 한명이 내일은 너를 자기집으로 데려갈거다. 그러니 겁먹지 말고 오늘 밤 잘 자고 내일 만나자. 하고 일러줬어요. 물도 먹이고 미약하나마 골골골 화답도 듣고 그렇게 헤어졌는데-
다음날 아침, 직원 하나가 울면서 전화를 했어요. 저는 미팅이 있어 회사 인근에 있었고, 또 근처에서 촬영이 있었던 직원은 사무실에 잠깐 들러 녀석을 보고 가던 길이었는데 녀석이 움직이지 않았던거죠. 울면서 "고양이가 죽은 것 같아요. 사료도 안 먹고 안았는데 축- 늘어졌어요"하며 엉엉 울었어요. 울면서도 촬영 시간 늦었다고 숨이 차도록 뛰는 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들렸어요.
고양이 한마리를 화장하는 데 드는 돈은 오만원이예요. 이것도 시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거라 저렴한거라죠. 아무곳에나 묻는 것도 불법이라고 하네요. 고양이를 화장하고 유골을 돌려 받으려면 이십만원을 내면 된대요. 병원에 전화로 문의해서 이것저것 듣는데 머리속이 멍-했어요. 스스로 겪는 어떤 불편 보다, 누군가를 울게 하고 한동안 쓸쓸해 할 생각을 하니 아찔했어요. 죽은 새끼고양이에 대한 동정심 보다 살아있는 스스로와 주변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앞선 거였죠.
사무실로 와서 녀석을 보는데 숨을 쉬는 것도 같았어요. 그런데 죽었다는 생각에 쉽게 손을 대기가 어려운거죠. 두려웠어요. 만지면 죽음이 옮겨 붙기라도 할것처럼 가까이 가는 것조차 두려웠어요. 살아있는 보송보송한 새끼 고양이는 어미가 해주는 것처럼 그루밍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죽어있는 새끼고양이는 한밤중에 골목에서 독대하는 부랑자처럼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존재로 느껴지는 거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리가 며칠전에 만들어 준 커다란 박스 집 앞에 서 있는데-. 갑자기 울음이 쏟아졌어요. 무섭고 후회도 들고 또 무섭고 막연한 죄책감과 또 무섭고,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내가 무슨 실수를 한건가 하는 생각 끝에 또 두렵고 두렵고 계속 두려워서 텅빈 사무실에서 한참 울었어요. 울면서도 이게 죽은 새끼고양이를 위해 우는 것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마구 헷갈려하면서, 어쩐지 이 울음은 스스로의 비겁을 감추기 위한 퍼포먼스 같다는 생각을 하며 크게 소리내며 울었어요. 그렇게 한참 울고 나서야 겨우 녀석을 만졌어요. 모두 출근하기 전에 녀석을 보내는 게 옳다는 판단에서였죠. 작은 상자에 녀석을 담아 담요로 덮고 병원까지 가는 동안, 그래 혼자 이걸 하기로 한 건 잘한 일이다 스스로를 치켜세우면서 한참 걸어 병원에 다녀왔어요.
그리고 주말을 보내고 어제 오늘, 우리는 밥을 먹으며 죽은 새끼 고양이 얘기를 해요. 몸무게는 한근이 채 안되는 500g 정도- 하얀색 양말을 예쁘게 신은 분홍색 젤리곰발바닥에 노란색 태비 치즈 고양이, 고양이 치고 눈 사이가 멀어 김제동 같다고 놀림받았던 녀석의 이름은 한백냥- 아빠가 되주기로 한 사람과, 엄마가 되주기로 한 사람의 성을 모두 사용하는 페미니스트 냥이로 키우고 싶었죠. 병원비로 처음 긁은 카드값은 십만오백원- 백냥아~ 한백냥아~하고 부르며 너를 십만원이라고 부를뻔 했다-라고 일러주며 함께 웃었어요. 왠일이었는지 녀석을 꼭 살아날 거라고 모두에게 자신했었고 녀석이 다 크면 회사 방범시스템에 해가 될텐데, 세콤아저씨들에게 어떻게 녀석을 숨겨야 하나- 구체적인 모략을 세우며 우린 즐거웠어요. 새벽까지 작업을 하면서도 메신저로, 파티션 너머로 녀석에 대한 얘기를 이어갔죠. 죽어가는 아픈 녀석을 상자에 넣어두고 우리끼리만 행복했었던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