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단편들
집에 갈색 표지의 양장본 문학전집(?) 같은게 허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책장에 꽂혀 있어요. 군대가기 전에 시름에 빠져 빈둥댈때 한권 두권 야금야금 빼먹 아니 빼 읽는데,제가 아는 이름난 외국 작품들은 그때 다 읽은 것 같네요.
그 중에 한권은 휴가나왔다가 귀대할때도 들고가고 자취방에도 들고 오고... 자주 읽습니다.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몇 편하고 사양, 설국 이렇게 실린 책이요.
'아쿠다가와상'이라는 문학상이 있다더라,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작품은 그때 처음 읽었죠.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구요. 거기 실린 것 중에 '코' '참마죽' '대숲이야기' 를 특히 재밌게 읽었습니다.
'코'는 비정상적으로 큰 코를 가진 승려가 그것때문에 번뇌하는 해프닝(?)인데, 중국에서 알아온 비법으로 코를 줄이는 과정이 꽤나 그로테스크해서 지금도 떠올리면 소름이 돋습니다. 아니 별건 아니고 코를 뜨거운물에 데치면 땀구멍에서 길다란 고름같은게 나오는데 그걸 집게로 쏙쏙 뽑아서..아으
'참마죽'은 볼품없고 남들에게 무시나 당하는 하급 관리가 달콤하게 끓인 참마죽 한번 원없이 먹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는 얘긴데 코믹하면서도 뭐라 표현하기 힘든 쓸쓸함? 같은게 느껴지더군요. 군대가기 전이라 그랬겠죠..-_-
'대숲이야기' 요건 영화 라쇼몽의 원작(중 하나)이죠. 숲속에서 젊은 무사의 시체가 발견되고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검비위사(헤이안 시대의 경찰정도)가 무사의 아내, 사건의 원흉인 도둑, 목격자 등의 진술을 듣는 내용. 물론 이야기하는 사람마다 같은 상황을 두고 말이 다 다릅니다. 요건 참 멋있는 소재이고 이야기다, 영화나 연극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 하다 싶더군요.
근데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윤종빈 감독 차기작 이름이 '군도'라네요? 물론 그 군도는 군용 나이프가 아니고 조선시대 도적떼 얘기라는데, 흔해빠진 단어이고 단순히 이름이 같은거겠지만 책에서 본 단편중에 제일 재밌게 읽었던 작품 이름도 '군도' 였거든요. 이쪽도 헤이안시대 밑바닥 도둑들의 이야기. 짧은데 담긴 이야기가 많고 주인공의 패가 강도질을 하러 들어갔다가 동료의 배신으로 한판 싸우게 되는데 그 묘사도 박진감넘치고 멋있었고.. (이 책을 통해 읽은) 다른 단편들도 그랬지만 항상 결말이 고전소설스럽게 끝나면서 묘하게 쓸쓸한 여운을 남기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냥 군도 라는 이름 보고 떠올라서 끄적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