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있는 이 나라에서는 초저녁에 판세가 가름나서 김빠진 인간들이 다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서 남은 소주와 안주들을 꾸역꾸역 먹고 있습니다. 아직 열두 시도 안 됐어요. 고양이 한 마리와 ZORN님의 음악방송에 의지해서 버티고 있어요. 어떻게든 이 밤을 보내면 내일 새로운 해가 뜨겠죠.
외국이에요. 평소엔 거의 매일같이 친정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는 편이에요. 아기를 키워주신거나 진배없어서, 다들 아기 소식을 매일같이 궁금해하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전화를 안 했어요. 아니 못 했어요. 회사에 선거운동차 온 박근혜와 찍은 사진을 거실에 놓아둔 아버지(그나마 액자를 안 한 것이 다행이랄까요), 어제 전화드렸더니 민주당 되면 나라가 망할 거라고 일갈하시던, 우리 아기 키워주신 친정엄마. 나이어린데도 옛날부터 한나라당-새누리당 편이던 동생. 도저히 전화할 맘이 안 나더라구요. 제 목소리 들려드리기도 싫고.
이국 땅에서 아기랑 장 보러 가는데 유모차 미는 손에 힘이 다 빠지더라구요. 여기 와서 처음으로, 여기서 계속 살 가능성이 높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가족도 밉고, 이젠 나라일에 관심도 없어보이는 남편도 괜히 밉고, 시집 될 쪽이 전라도 사람들인데 전라도 사람들은 뒤통수를 잘 쳐서 못미덥다는 친한 친구도 싫어지고, 노통은 한 나라의 대통령임에도 말을 함부로 해서 싫다고, 차라리 한나라당이 낫다는 베프도 싫어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미워지게 만드는 그들이 너무나 싫어요.
저도 오늘 막 멘붕와서, 페이스북 친구들 중에 '박'을 찍었거나 투표권을 포기한 인간들을 다 지워버리자! 했는데, 하다보니 허탈해지더라고요. 그들이 원하는 게 이런 '대결'과 '승자독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용하고 냉철하게 미워할 거 미워하고 밀어줄 거 밀어줘야지 하는 생각이 번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