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보수의 대선이 끝난 자리 잡담(feat. 왕위를 계승중입니다, 아버지)

1. 올해 총선 때 후보자  SNS를 관리하는 일을 제의받았습니다. 대구 경북 쪽의 '전' 한나라당 뭐 이런. 제의 받은지 일주일만에 없던 일로 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너무 "과격하고 좌파에 물들어서"가 이유였습니다.


엄뉘...전 "백성이 힘들면 역성혁명 콜ㅋ"을 말씀하신 맹자님을 신봉했을 뿐인뎁쇼. 제가 과격하고 좌파에 물들었으면 맹자님도 빨갱이신 겁니콰? 아니, "백성을 굶기는 나라는 나라도 아님, 고로 역성혁명 콜"보다는 "국민을 굶기는 정부는 문제 많음, 고로 정권교체 콜"이 훨씬 더 온건한 것 아니였슴매? 


...아, 정권교체보다 역성혁명이 더 온건했구나. 다음에는 혁명을 주장해볼까. 과격하고 좌파에 물든 사람이 되어서 과격하고 좌파에 물들었다는 오해를 받지 말아야겠습니다. 


2. 대구 경북보다 더 보수적인 곳이 어디인 줄 아세요? 건설계입니다. 대구경북과 건설계가 결합하면 이름도 찬란한 정치적 꼴보수를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멀쩡하고 매력적이고 상식적이고 주변사람을 생각하고 배려심이 넘쳐도 정치적 꼴보수. 그쪽 기준으로 보면 제가 과격하고 좌파에 물들어서 위험분자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말이죠 전 제가 중도 보수라고 생각해왔어요. 지금도 그렇구요. 아니, 기본적으로 온고지신을 믿는 한 보수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이쯤 되니 한국적 민주주의의 전통을 이어 한국적 좌파 하죠 뭐. ......................XX.


3. 주변에서 들려오는 선거 관련 이야기 중 가장 놀랐던 이야기는 이거였죠. 문재인 투표율이 높아져서 위험하다고 박근혜를 찍으러 간 이십대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 이십대들을 개인적으로 아는데 참 매력젹이고 좋은 사람들입니다. ....스스로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투표를 했죠.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다시 보입니다. 예전처럼 그렇게 좋아할 수 없어요. 그렇게 건전하고 견실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매력적이고 누구나에게 좋은 사람인데도 말이죠. 제가 이런 생각을 하건말건 잘 살거예요.


4.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말이죠. 모 대학 총장님께서는 취임 축하연에 초대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입장하자 소지품을 떨어뜨리곤 그것을 찾는 척 하면서 인사를 하지 않았던 것을 그렇게 자랑하셨다고 해요. 내가 그 X의 XX에게 인사를 왜 해,라고 하시면서요. 주변의 모든 사람은 그 총장님의 기개를 칭송하였다고 합니다. 핫핫핫.


5. 박근혜가 당선되어서 잘 되었다는 어머니의 말을 삼분 쯤 들은 후 "내게 있어 박근혜는 염치도 없고 상식도 없는 기생충 같은 인간이었다, 처음부터 경멸하고 혐오해왔으며 바퀴벌레나 박근혜나 거기서 거기였다, 오늘 박근혜 당선되어서 잘되었다는 말 정말 듣고 싶지 않다"라며 독하게 쏘아붙였습니다. 어머니께선 제가 이렇게까지 박근혜를 혐오하는 줄 모르셨을 거예요. 이때까지는 박근혜에 대한 애정을 보여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라고 긍정해주는 착한 딸내미였거든요. 그런데 정말이지.


당선 확정 되었을 때던가요. 박정희 대통령 사진 들고 집에서 나오는 박근혜를 연호하는 사람을 본 후 속이 뒤집어 져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6. 아마 이번 대선은 뜯고 씹고 맛보고 나노입자로 가루가 되어 분석이 될 것입니다. 그래야 하구요. 하지만 말이죠, 지금 박근혜를 꼴보기 싫고 박근혜 찍은 사람이 싫은 마음 좀 이해해 주세요. 참람해요. 깝깝해요. 욕이 라임을 타고 나와요. 이성적인 분석도 우선 감정적인 정리가 된 후에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엉엉엉. 전 조사 빼고 대명사 형용사 부사 동사를 욕으로 점철하고 싶다구요. 


7. 아, XX


전 부시를 재선시킨 미국도, 여전히 자민당 천하인 일본도 못놀릴거예요. 우린 독재자의 딸을 이런 최대 투표율에서.....


8. 박정희는 민주주의가 뭐임? 먹는 거임? 난 왕임ㅋ 이라는 태도로 국정에 임했죠. 그가 베풀었던 선정은 그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왕"이니까 자기의 말에 토다는 것들을 사화를 일으켜 죽이고 능지처참, 부관참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믿었겠죠. 나는 왕, 고로 국가의 아버지, 국민은 내 새끼, 내 말만 들어, 난 너를 고문해도 다 너 잘되라는 뜻임, 이런 루트로 말이죠. 박정희의 공과 과는 그런 부분으로 본다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왕정제의 왕이 아니었고 역사적 전통이 있는 조선시대의 왕이 저랬으면 개처럼 까였어요. 상소문에서도 알 수 있는 키워의 혈통은 조선시대에도 면면히 흘렀습니다.


9.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를 박정희보다 더 경멸해요. 한 것이 없잖아요. 매우 쓰레기 같은 사상이지만 즈이 아버지는 왕으로서 국가의 아버지로서 국가 전체의 이익을 생각한다는 믿음이라도 있었죠. 박근혜는 뭘 가지고 있죠? 수첩? 아님 우리 아빠가 옳았다능! 이라는 억지? 닥치라고 해요. 부녀가 최대 득표율로 대통령 당선이나 5.16 군사 혁명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게 혁명이면 내가 아침마다 화장실가는 건 내적 완성의 결정체입니다.


10. 제가 절망하는 부분은 멀리 있지 않아요. 한강 다리 끊어먹은 이승만과, 쿠테타 독재 박정희 쿠테타 독재 전두환 쿠테타 독재 노태우를 거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시대의 의미는 "이제 쿠테타와 독재가 아닌 선거와 민주주의이며 이것은 그 이전 시대와 궤를 달리한다.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닉슨도 있고 레이건도 있고 부시도 있는데 이명박 쯤이야. 그런데 박근혜는 웰컴 70년대란 말입니다. 과거가 더 좋지 않았어요. 좋았을 리가 없잖아요. 그때는 영화도 한참을 기다려야 볼 수 있고 장르 팬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찾을 수 없으니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 니 취향은 특이하니 해로운 취향이다,라는 헛소리나 듣겠죠. 불편함이 향수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불편함을 다시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부분에 있는 것 아닙니까.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옛날에는 울엄마가 모든 요리 재료부터 키워서 맛난 것도 해주고 옷도 만들어 줬는데 요샌 옷도 사입히고 음식재료도 사오더라? 정성이 없어, 낭만이 없어. 이게 뭐야 우리모두 고전으로 회귀하자라고 징징거렸던 수필은 귀엽기라도 하지 이건 뭐. 왜요. 장발단속하고 미니스커트 단속하세요. 요새 하의 실종 패션이 유행인데 어때요?


아 진짜. 국민은 수준에 맞는 대통령을 가진다는데 이정도 투표율에 저정도 숫자면 수준에 맞는....싫다...


11. 네, 이번에 박근혜를 뽑은 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겠죠. 그렇지만 오늘은 말구요. 올 연말까지는 싫어요. 연말까지는 적나라하게 욕한 후 멘탈 좀 찾고 대화의 의지를 찾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넷 선을 뽑고 현실도피와 함께 해야죠.

    • 11.안 만들어도 됩니다. 특히 50대 저소득층은 박근혜가 아니었던 여태까지의 모든 선거에 무관심했던 계층입니다. 원래도 계속 투표하던 새누리당 지지자들에 이 세력이 더해진 거예요. 박근혜가 퇴장하게 되면 이 표들은 다시 눈녹듯 사라집니다. 이들은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메세지를 전할 수도 없었고 전할 방법도 없었던 층입니다. 박근혜가 새누리당 후보가 된 순간에만 위력을 발위했고. 이들이 노빠나 친노들처럼 세력화할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저소득층이라는 한계가 이들을 현실정치에 붙잡아두지 못합니다. 19대부터는 이들은 다시 통계에서도 투표에서도 숨을겁니다. 50대의 90%투표가 10년후 60대의 90% 투표로 이어지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때는 박근혜가 없으니까요.
      • 쓰신대로라면 1. 투표하게 하고 2. 우리 쪽으로 투표하게 하고. 할 일이 많네요.
        • 그죠, 바쁘죠. 근데 오늘말고 내일도 말고 어쨌거나 2012년에는 일하기 싫습니다. 아 진짜 하늘에 대고 욕하고 싶은 이 마음...
      • 그 계층적, 세대적 차이가 공중파와 종이신문만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구조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은 편파적인 언론구조에선 누가 나와도 비슷할겁니다. 그들에겐 그게 상식이고 인터넷에 있는 자료는 음모론인걸요. 그분들 사라지지 않아요. 게다가 지금까지 저들의 행보를 보면 이번 정권에선 더욱 적극적으로 모든 여론형성 시스템를 손에 쥐려하겠죠. 인터넷과 SNS, 팟캐스트에 대해 손대기 시작할까봐 진심으로 걱정됩니다. 어떤 후보와 정책이 나와도 편파적인 시합이 진행될 수 밖에 없다는게 암담합니다.
        • 이런말하는 저도 종이-인쇄 매체에 대한 근거없는 신뢰도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온라인 매체는 뉴스 근처에 있는 잡스런 광고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가독성과 글자체 문제 같기도 하고. 다 떠나서 신문의 전체적인 구도와 편집을 통해 화룡점정으로 꽂히는 은밀한 마타도어의 기운은 사람을 낚나봐요.

          저도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매체 단속은 더 심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정말 계정터트려야 하나 싶기도 하고.
      • 저도 박근혜 이후에 저런 투표율은 나오기 어려울 거라고 봐요. 하지만 젊은 생산 계층은 점점 줄어들고 나이든 은퇴 계층이 늘어나는데 어떻게든 포섭해야죠. 쪽수에서 밀리잖아요. 이들은 여전히 논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이유에서 젊은이와 새로운 피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고 불신할 것입니다. 이정희의 토론 태도는 핑계예요. 그냥익숙하지 않은 거부감을 드러낸 것 뿐이죠. 그걸 소중한 한표로 써먹....으어어...

        제가 조심하고 이후를 대비하자는 것은 논리가 아닌 감성으로 다가가는 이들 계층에 대한 설득이 분명히 필요하다는 것이죠. 투표에서 사라질까요. 글쎄요. 이들은 실수를 할 지언정 자기 취향의 투표를 했고 박근혜와 새누리는 그들에게 최적화된 선거 준비를 했습니다. 매우매우매우매우 이해할 마음이 안들지만 말만이라도 우린 너를 신경쓰고 있다는 태도를 취했구요. 그러니 앞으로도 우리가 선거 공략에서 여전히 신경쓸 이 사람들에게 우리가 널 신경쓰고 있단다라는 확증을 받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인데.....지금 같은 심정같아선 알게 뭐야 세상은 다 똥이야 이히히히히힛 이런 생각밖에 안들어요.
    • 감사히 읽었습니다.
      • 으허허허허, 이런 걸로 감사하시면 제가 민구합니다.
    • 3. 그 매력적인 사람들이 내미는 배려는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는 걸 전제한 행동일겁니다

      그러니 박을 찍지
      • 그냥, 집안 좋고 돈 많은 집 자식들이 예쁘고 잘생기고 잘나고 성실하고 착하고 매너좋고 언제나 성공하는 엄마친구아들딸로 돌아오는 걸 보는 오묘한 마음입니다. 으으음...
    • 정권교체보다 역성혁명이 더 온건한지는 모르겠으나 정권교체보다 역성혁명이(혹은 시민혁명이든) 좀 더 쉬운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 그럴지도요. 우선 혁명은 숙청도 할수 있고요. 아, 매력적인 단어인 것 같아요. 진짜. 아이고...
    • 제 속마음을 들킨 기분입니다. 태연한 척 하곤 있지만 진정은 개뿔.
      18대 대통령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박근혜라고 대답하겠지요. 하지만 제가 존중하는 대통령은 절대 아니예요.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로 뽑힌 대통령을 부정하냐구요? 결과적으론 그렇지만 그 과정까지 민주적이였다고 판단 못하겠습니다. 눈가리고 아웅이지요. '권력'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비판이 민주주의의 덕목 아니던가요.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 태연한 척 하곤 있지만 진정은 개뿔222222222222222222222222

        지금 제가 딱 이상태예요. 이대로 현실도피하고 싶어요. 모래밭에 머리박는 타조의 마음은 논리적인거라는 정신승리도 가능해요. 우선 모든 상식과 이성은 내년에 하고 올해는 멘붕으로 현실도피하면서 욕할래요. 이명박에게 했던 일말의 예의도 못차려주겠어요. 니 유산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범죄예요. 이렇게 한게 없는데 저 유산 하나로 당선되다니. 국개론이 이해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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