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차별 기원에 대해서 추가로..

호남차별 기원에 대해서 세번째 글을 올리게 되서 죄송합니다. 제 글의 의도가 호남차별은 호남인들의 성정이 원래 그렇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라고 읽혀지는 것 같아서 추가로 자룔를 더 찾아 봤습니다. 박정희 정권 때 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 이승만 정권 때도 호남 차별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더군요.

 

일제 때 전라도는 반제국주의 투쟁의 선봉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갑오농민전쟁의 시발점이 전라도였고 광주학생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이후 벌어진 의병전쟁에서 대표적인 의병장이 임실의 전해산 이석용, 함평 장흥의 심남일, 보성의 안규홍, 장성의 기우만 기삼연, 구례의 고광순 등이었습니다. 그러자 일제는 호남의병 토벌작전을 대대적으로 벌였고 그 결과 호남쪽 항일투쟁가들이 간도나 연해주쪽으로 많이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무장투쟁론을 주장했기 때문에 이승만의 외교론과 대립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이승만이 후일 집권 후 호남을 싫어하게된 계기가 된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전라도에 대한 마타도어는 일본 식민지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도 자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호남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간사하다, 믿을 수 없다 등등)은 일제에 의해 유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죠.

해방 후 이승만 정권은 어땠을까요? 호남의병장들과의 대립의 기억과 함께 전라도 지역에 강력한 좌파세력이 있었던 것이 호남 마타도어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1958년도에 이진숙이란 사람이 쓴 논문에도 "전라도는 간사하다" 라는 내용이 나온다는군요. 실제 여순사건과 같은 것이 터지기도 했고 이승만 같은 극우주의자의 눈에 호남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던거죠. 이승만 정권 하에 요직에 몸 담았던 호남사람은 5% 미만이라고 하더라고요. 호남사람을 비하해서 지칭하는 '하와이'라는 말도 이승만이 처음 했다고 하는군요.

이승만 퇴진 후 세워진 장면 정권에서는 호남 인사가 20% 정도 채워졌다고 하는데 금방 박정희에 의한 쿠데타로 장면 정권은 무너지고 그 이후 자행된 호남 차별, 호남 혐오감정의 유포는 잘 알고 계시는대로 입니다.  

 

여기서 무엇인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죠. 호남지역은 항상 반제국주의-반독재-반권력의 선봉에 있었다는 겁니다.  권력자들이 봤을 때 눈의 가시같은 존재였던거죠.

훈요십조 8항의 경우도 그게 정말로 호남지역을 지칭하는 것이라 한다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권력자들의 시선에서 그 지역사람을 절대로 쓰지 말라고 했다는 것은 성정이 고약해서가 아니라 권략자들이 맘대로 휘두를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 아니었을까요? 태조가 그렇게 썼는지 후대 사람들이 조작을 했든지 말이에요.

그리고 일제에 의해 조직적으로 호남 혐오 의식이 유포되었다면 제가 들은 80대 노인들의 말씀도 이해가 됩니다.

호남 차별에 대한 글은 이제 진짜 마지막입니다. 불편하셨던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저도 몰라서 안일하게;; 위키피디아 훈요10조 항목을 찾아보았는데, 이게 호남차별과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모양이군요. 참고로 관련된 부분 가져와 봤어요.

      http://ko.wikipedia.org/wiki/%ED%9B%88%EC%9A%94%EC%8B%AD%EC%A1%B0

      첫째, 왕건이 백제인을 미워했다는 증거가 없다. 왕건을 괴롭힌 세력은 백제 세력 가운데 호남 세력이 아니라 오늘날의 청주 일대의 호족 세력이었다. 왕건의 상당수 측근들은 호남 출신이었다. 예를 들어 훈요십조의 다른 항목에서 숭앙의 대상이 되었던 도선국사는 전남 영암 사람이며, 이 고장에서 또한 최지몽이 출생했으며, 일찌감치 정윤이 되었던 혜종의 외가, 곧 장화왕후의 본가 역시 나주였고, 동산원부인과 문성왕후는 승주 태생의 순천 박씨로 견훤의 외손녀이다.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 역시 전남 곡성 용산재 출신이다. 결정적으로 훈요십조를 전해 받았다는 박술희는 후백제의 당진 사람이었는데, 옛백제 사람을 피하라는 말을 굳이 옛백제 출신인 그를 불러 전했을 리 없다. 왕건은 생전에 '나주의 40여 개 군은 나의 울타리와 같은 곳으로써 나를 잘 따랐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나주일대의 해당지역은 왕건이 고려의 건국 이전에 수군으로 정복한지역이다.

      둘째, 승주 출신의 박영규, 남원 출신의 현소, 나주출신의 윤다라, 아주 수국사로서 이름을 날렸던 김심엄, 광산출신의 김길 등 호남출신 사람들이 계속해서 등용이 됐기 때문에 결국 후왕들에 의해서도 훈요십조는 지켜지지 않았다.

      셋째, 풍수지리에 따라 따져 보면 호남은 개경에 대한 배산역수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차현(車峴) 이남 공주(公州)강 바깥”은 경주에 대한 배산역수이지 개경에 대한 배산역수는 아니며, 오히려 낙동강을 낀 경주 지역이 개경에 대한 배산역수라는 주장도 있다. 뒷날 성호 이익은 금강이 반궁수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는데, 이에 대해 한강의 범위가 훨씬 더 넓고 가깝기 때문에 멀리 있는 공주강을 거론함을 옳지 않다는 반론이 있다.
      • 그 외에 훈요십조에서 문제된 8항의 조작설도 있어요. 현종 때 태조실록의 저자가 슬쩍 끼워 넣거나 바꿔치기 했다는 설.
        그리고 그 조항이 호남차별 조항이었다고 하더라도 권력자의 시각에 의한 차별이 뭐 정당한 이유가 있었겠냐는게 제 생각이에요.
    • 이 글을 읽으니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박정희 때 현대사만 왜곡한 게 아니지요.
      무신정변도 미화하고 세조도 미화했지요.
      앞으로도 똑바로 감시해야할 거예요.
    • 박정희 정부때는 흥부전도 왜곡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역사를 지배자의 노리개로 삼던 사람들이 다시 정권을 잡았으니...
      • 어떻게 왜곡했었나요?
        • 새마을 운동을 하던시기 놀부를 좀 더 근대화된 인물로 미화를 했죠. 흥부는 대책없이 자녀를 많이 난 무능한 가장으로 묘사했었구요.
          당시 어용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논문으로 써서 곡학아세를 하곤 했어요.
          • 논문도 있었나요? 전 만화가 고우영씨가 흥부전을 그런식으로 재해석한 것이 시초인줄 알고 있었는데.
            • 제가 본건 고전문학 비평서 같은 곳이었어요. 새마을 운동시기에 흥부전을 이렇게도 해석하는 분들이 있기도 했다면서... 소수인줄 알았는데 꽤나 다양하게 그 내용을 정부에서도 활용하고 문화계도 사용했던 것 같아요.

              매일춘추-흥부와 놀부

              우리나라 고전문학 가운데 흥부전이 있다. 법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착한 동생인 흥부와 세상의 온갖 나쁜 짓은 다하는 형인 놀부가 나온다. 지지리도 못사는 흥부와 잘 살지만 마음씨 고약한 놀부의 운명은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를 심어서 열린 박을 타서 결말이 난다.196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놀부전이 한 작가에 의해 발표되었다. 흥부는 가족계획도 하지않고 많은 자식을 낳아 먹고 살기도 힘들고, 지붕 개량사업등 새마을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됐다. 반면 놀부는 아들·딸 구분없이 둘만 낳아 잘 기르고 있으며, 지붕개량을하고 리어카를 끌고 마을 길도 넓히는 새마을 운동의 역군으로 표현됐다.

              1997년판 흥부와 놀부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각각 살아가고 있을까? 흥부는 정직하나 융통성이없는 샐러리맨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놀부는 기회를 잘 타는 사람으로 출세가도를 달려 고급외제승용차에다 호화주택을 가진 부자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격의 관점에서 관찰해 보면 놀부는 자기의 이익만을 아는 얌체족으로, 흥부는 제비목숨을 살리는등 자연보호에 앞장서는 의식있는 시민으로 비쳐질 수 있다. 또 흥부는 자신을 구박해온 형 놀부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자 도움의 손길을 마다않는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사회복지가의 모습으로 부각되기도한다. 자연보호에 앞장서는, 그리고 이웃과 함께 나눔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흥부가 갈수록 많이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경주대교수·금석학〉

              - 1997년 02월 14일 -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555&yy=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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