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시민이라는 나쁜 말

이제 지겨워져서 깨시민 논란엔 발 안 담그려고 했는데 딱 하나의 글만 쓰겠습니다.


깨시민은 나쁜 말맞죠. 아무리 뜻이 좋은 단어들로 조합하더라도 혹은 그냥 무미건조한 단어들만 나열한다해도 그걸 모욕적 의미로 비틀어서 사용하면 모욕이죠. 때로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극적으로 바뀌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런 모욕들이 없어질 수 있을까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적 비판자들끼리 서로를 경멸적 어휘로 부르는 거 일상화된 일 아닌가요? 서로를 "괴뢰"라고 불러대던 북한과 남한의 경우를 비롯해 사례들은 수두룩할 겁니다. 오히려 "깨시민"이라는 단어에 담긴 모욕과 적개심의 수위를 보면 "좌좀", "일베충" 같은 단어들에 비해선 상당히 온건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비아냥이 좋은 것은 아니니 아무렇게나 사용해선 안 되겠죠. 다만 '깨시민'이란 말에 대해 거부감이나 분노를 느끼시거나 "그런게 어딨냐"고 과학적 엄밀함을 요구하는 분들은 이메가, 쥐새끼, 박그네, 전녀오크, 좌좀, 우꼴, 일베충, 난닝구, 새머리당, 딴나라당, 박빠, 진신류, 진보 꼴통, 선비, 위선자 등등의 허다한 경멸어들에 관해서도 같은 잣대를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지 않을거면 주는대로 받는다는 기분으로 그 정도의 경멸은 감내하거나요.

저 개인적으론 수위가 심하지 않다면 주는대로 받거나 받은대로 주자는 입장입니다. 안 좋은 저런 말들을 하지말아야 한다고 사라지질 않기도 하거니와 저는 도덕군자가 아니라 감정을 가진 사람이니까요.

    • 그런건 안 주고 안 받는게 났다는 주의입니다. 경멸적 어휘를 만들어 내지 않아도 화 낼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기왕이면 쓰지 맙시다.
    • '깨시민'이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대상의 모호성에 그문제가 있죠. 쓰임새와 타이밍에 따라 상대가 될수도 있고 내자신이 될수도 있는 경계가 불분명한 네이밍에 굳이 특정성격의 집단을 범주화시켜서 조롱하려니 어찌보면 결국 누워서 침뱉기가 될수도 있다고 봅니다.
      • 특정인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저런 단어들이 지칭하는 대상이 모호합니다. 깨시민만 그런 건 아니에요. 이번에는 그 모호한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유독 넓어서 반응이 상대적으로 격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 저도 깨시민만 유난하게 볼 거는 아니라고 봅니다. 왜 이 단어에 유독 반응이 민감한지는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지만요.



      그냥 이런 일들을 계기로 나열하신 단어들을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분위기가 좀 약해졌으면 좋겠다 싶어요.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해야겠죠. 복잡한 이야기까지 안하더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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