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쉬 카푸어 전시 다녀온 이야기, 내일 뭘 하면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듀게에서 아니쉬 카푸어 게시물을 보고 오늘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잘 보고 왔습니다. 좋았어요. 압도하는 스케일과 강렬한 색감. 단순한 형태에서 오는 아름다움. 


원래 회화보다 조각작품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단순한 형태에 재질의 특징을 살린 작품이 주는 우아함이라는게 이런거구나. 했어요.


듀게 모님 말씀대로 자꾸만 시선을 끄는 작품들 이었어요. 두번씩 보고나서도 그냥 가기 아쉬워 다시 한번 쭉 눈에 담고 왔을정도로요.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길래 보고 왔는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니쉬 카푸어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고 있자니, 본인의 스튜디오에 작품을 제작하는 분들이 여럿 있었어요.


워낙 대형 작품을 많이 만들었고 혼자 하기에는 벅찬 양이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작은 조각 작품조차 세공하시는 분이 조각 작품 하나하나를 사포질에서 페인팅까지 마무리하고 있는 걸 보자니


이게 정말 작가의 작품일까?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어요.


게다가 그 세공사분이 '아니쉬가 작품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잘 알아채고 그에 맞게 작업을 해야 해요. 


표면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니까요' 라고 얘기하는 걸 듣고는 그런 생각이 더욱 강렬해졌죠.


내가 쓸데 없이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했더니 지난 해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 보았던 김홍석 작가의 작품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군요.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에게 돈을 주고 물감을 묻은 빗자루로 커다란 캔버스를 쓸어달라고 하고, 한 중학교 학생에게도 똑같은 부탁을 하죠. 마지막으로는 작가 자신이 빗자루질을 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세 작품을 나란히 놓고는 이 작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도슨트가 설명하구요.

(이 전시는 특이하게도 도슨트의 설명이 필수적으로 따라붙어야 완성되는 전시였어요. 그게 작가의 의도였다고 합니다. 도슨트도 하나의 퍼포밍이라고 보시더라구요)


그리고 과연 세 작품 모두를 김홍석 작가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역사적으로 보면 그때 당시 앤디워홀의 팩토리에서 작품들을 찍어내던 것에 관련된 논쟁과 비슷한 질문일 것 같네요. 듀게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니쉬 카푸어에서 너무 멀리 왔죠?;;그리고 체력이 남아서 플라토에서 하는 전시도 내친 김에 다녀왔습니다. 초대권을 주더라구요.


뭐 근데 아니쉬 카푸어가 너무 강렬했었나봐요. 눈에 잘 안들어오고 급 피로해져서 쌀국수 한그릇 먹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마지막 곁다리 질문이자 본론. 볼일이 있어 한달간 서울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그 마지막날 이구요.


뭔가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걸 하고 후회없이 집에 내려가고 싶은데, 이제 저 밑천이 바닥났어요ㅜㅜ 뭘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요? 


(저희 어머니 화법. 꼭 소문 안나도 되는데 굳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ㅋㅋㅋ)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생활 + 맛있는 저녁 코스면 저는 매우 행복해 할 것 같은데요. 듀게 분들의 추천과 도움을 요청합니다! 


아, 참고로 팀버튼 전 보고 왔고 최근 영화들은 모두 섭렵한(?) 상태입니다.


그럼, 미리 감사합니다 ;-)  

    • 티켓을 구하실 수 있다면 서울시향의 공연을!!
      • 예매가 완료되었다네요ㅜㅜ어쨌든 추천 감사했어요
    • 다큐멘터리까지.. 알짜로 즐기고 오셨군요!

      세공사분이 작가의 생각을 '이해'하고 작품을 만들어야한다는 시점으로 접근한다는 표현이 들으니 재미있어요. 과연 얼마나 이해하셨을까요 ㅎ 그 이해의 정도가 결과물인 작품의 가치? 퀄리티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해야할까요?

      저는 영화의 '감독'과 같은 역할로 생각하게 되기도 하네요. 스텝과 감독, 작품의 관계처럼요. 이것이 수긍이 가는 대답이 될려면 말씀하신 김홍석 작가나 앤디워홀의 작업방식이 드러내는 형식적 구현 이전의 작품 개념에 대한 동의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말하자면 아이디어나 컨셉만으로 존재하는 작품이요. 그 무형(?)의 것을 아니쉬 카푸어의 세공사도 '이해'하고 공유하려고 시도하고, 또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제가 말한것 외에도 많은 복잡한 이야기들이 있을법 하지만요.

      서울에서 할수 있는 재미있는 것을 정말 추천드리고 싶은데 요새는 거의 운둔 생활 중이라.. ㅜㅜㅜ
      그나마 제가 요즘 세웠던 계획은 창덕궁 후원을 예약해서 돌아본 다음 한옥마을 쪽으로 가면서 계동 맛집 중 하나를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좀 추워서 고생이 될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즐거운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 저를 리움까지 인도해주신 노멘님의 반가운 코멘트네요^^

        영화도 일종의 감독의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스탭의 존재와 역할이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고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인데 반해서
        예술작품은 상대적으로 그런 인식이 덜한 것 같아요. 말씀하셨듯 김홍석 작가는 개념미술가에 속하니까 아니쉬 카푸어의 경우와 조금 다를 수 있겠네요.
        어쨌든 덕분에 좋은 전시 구경하고 왔어요. 감사합니다 ;-)

        저도 야외활동 좋아하는데 요즘은 두세시간만 밖에 있으면 목덜미가 뻣뻣해져서ㅜ 추천 감사합니다.
        • 저도 타니님 덕분에 다큐멘터리가 궁금해졌어요!
          감사합니다. ㅎ
    • 세종문화회관에서 '나무로 깍은 책벌레 이야기'라는 전시회를 하고 있는데,이번 주말에 보러갈 생각이에요.

      http://www.bookwormstory.com/

      평이 좋으니, 관심 있으시면 보고 오셔요 :)
      • 듀나님 트윗에서 잠깐 본 것 같아요. 오오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해요^^
    • 먼 옛날 그리스의 석공들부터 미켈란젤로, 세계 각지의 청동상들, 로댕, 광화문 사거리의 이순신과 세종대왕(..) 까지
      현대에 전해 내려오는 거의 모든 예술들은 숙련된 기능공들과 훌륭한 지휘자의의 생산품이죠. 그림의 세계도 마찬가지..
      혼자서도 제대로 10인승 요트 정도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바뀌어 그정도의 기술 발전이 있지 않은 한 앞으로도 대부분 그렇게 제작할거에요.

      다만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만화든 영화든 미술이든 장르 불문하고 어시스턴트들은 몇몇을 제외하면
      보험이나 산재 등 일하는 사람으로서 받을 기초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게 문제.
      말씀하신 김홍석 작가의 작업은 글만 보면 과정 자체가 설명인데 도슨트가 또 설명을 해주는군요.

      덧붙여 저는 예술가들의 큰 프로젝트도 무척 좋아하지만ㅋㅋ 작가의 아이디어 스케치나 제작 전 만드는 작은 모형작업이 좋아요.
      작가 본인이 여러가지 부딪히게 되는 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들, 무수한 실패와 깜찍한 사이즈의 성공들이
      시간이 흘러 어떻게 명작의 밑바탕이 되는지를 즐길 수 있어요. 미술을 감상하는 여러가지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트 선재에서 하는 전시도 혹 동선이 비슷하게 되면 잠깐 들려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 코멘트를 보니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인 것 같기도..
        근데 제작 과정 다큐멘터리에서 생각보다 디테일한 수준까지 어시스트들이 컨트롤한다는 느낌을 받아서요
        그리고 정말 3D 직업일 것 같기는 합니다. 페인트 안료에 석회 가루에, 왁스까지. 온갖 화학물질을 뒤덮고 작업하니까요.

        아트선재 검색 들어감니다 추천 감사해요66
    • 국내의 모 유명작가의 어시스턴트로 일한지 꽤 되었어요.

      가끔은 작품의 디자인마저도 제가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그럴때마다 심한 자괴감에 빠집니다. 당연히 한국형 열정페이계산법에 따른 대우를 받구요.

      저는 아웃소싱 또는 단순한 노동력에서 다른이의 도움을 받는것은 괜찮은것같아요. 하지만 기법이나 재료, 중요한 디자인의 영역까지 피고용인에게 의존하는건 좀 문제인것같다고 생각해요
      • 한국형 열정페이 계산법이란 단어 마음에 정말 와닿네요ㅜㅜ
        실제 어시스턴트 일을 하고 계신다니 오늘 제가 잠깐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아요.
        모쪼록 심해어님 이름을 건 아름다운 작품을 어서 보고 싶네요.
      • 타니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을 적확하게 풀어주셨네요

        저도 그런생각 자주 하는데 확실히 이런 미묘한부분 있는 것 같아요. 도제식구조나 거장 같은 인물일수록? 조금 화도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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