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가 나를 구했다 (나를 위한 연애법)

기존의 동화에서 왕자를 기다리거나 납치당하거나 쓰러지거나 잠들거나 하는 공주의 역할이 지겨워졌습니다. 
충고를 받아들여 "나를 위한" 연애를 해보기로 했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무작정 부딪히기에는 막막해서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라 능동적인 인물이 되기 위한 역할 모델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오페라 관람을 하기로 했습니다. 

선택한 오페라는 <Carmen>입니다. 사랑에 있어서 앞장서서 주도권을 쥐고 선택하는 전통적인 남성의 권리에 도전하는 여주인공이 나옵니다. 
카르멘은 자신에게 마음을 빼앗긴 남성을 다른 상냥하고 둔한 애인에게서 빼앗고 결국 그를 차버립니다. 
남성들이 흔히 저지르는 그런 전횡이 여성일 때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아서 카르멘은 불쌍하게도 성적 독립의 대가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랑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가로 여성은 목숨을 잃거나 최소한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실망을 안고 두 번째로 연극을 관람합니다. 

선택한 연극은 <A Streetcar named Desire>입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여주인공은 고등교육을 받은 몰락한 지주 출신입니다. 
과거의 환영에 계속 시달리는데 결혼한 남편은 동성애자였고 결국 그는 자살로 마감합니다. 
여주인공은 지성이 있기 때문에 진실을 알고 있지만, 현실을 마주 볼 용기가 없어서 환상과 마법을 원합니다. 

남주인공은 말 그대로 원초적인 남성입니다. 
지성과 교양과는 거리가 멀고 야생마이고 성적 욕망에 충실하면서 하루하루 딱정벌레 같은 삶을 삽니다. 
현실 적응력 최상의 인물입니다. 

이미 게임의 결말은 정해져 있습니다.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의 과거를 폭로하고 여주인공을 겁탈합니다. 
정신적으로 파괴된 여주인공이 정신병원에 실려가면서 의료인에게 웅얼거립니다. 
"당신이 누구이건 간에, 난 언제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절망으로 여주인공은 삶을 놓아버리고 아무 낯선 남자에게 자신의 육체를 맡긴 성적 자유의 대가는 과거의 폭로이고 파멸입니다. 

여성의 성적 독립이나 자유는 목숨을 잃거나 파멸입니다. 

연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남성은 환호와 열광을 이끌어내지만 적극적으로 나서는 여성은 쉽고 헤픈(?) 여성이 되는 것에는 아무런 제어장치가 없어요.
주변 모든 문화가 이렇게 견고합니다. 

세 번째로 도서관에 갑니다. 
그리고 문화인류학 책을 찾았습니다. 

Wilson의 난자와 정자의 전략적 차별성에 대한 생물학적 일반화가 눈에 띄는군요.

"남자들이 공격적이고 성급하고 무분별하게 처신하는 데에는 그만한 보상이 주어진다.
여자들이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것, 가장 훌륭한 유전자를 지닌 남자가 수정 후 자신의 곁에 머물러 줄 것 같은 남성을 분간해 내는 것이 더 유리하다. 
난자와 정자의 전략은 또한 왜 남자들이 여자들을 강간하는지도 설명해 준다"고 하는군요.

그렇지만 다른 영장류 실험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 암컷은 성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면에서 수컷만큼 드세고 암컷이 성적으로 수동적인 천성을 타고났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기존 교육에서 말해주지 않는 진실은 여자가 남자처럼 여러 성적 파트너들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중 기준의 성 정치의 산물입니다. 
사회는 여성들의 노동력과 출산력을 통제했습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여성들이 여러 섹스 파트너를 둘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이득이 될 때에 한해서입니다. 
그 결과 여성들의 무분별한 성교는 창녀에게서 가장 많이 일어납니다. 불행히도 그들은 접객과 성교하는 동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국가 수준의 사회에서 보통 남자는 외도를 즐길 수 있지만, 보통 여자는 조금이라도 그런 기미를 보이면 가혹한 벌을 받는 것이 거의 일반적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아직 남았습니다. 
임신, 출산, 수유의 위험과 비용을 치르는 것은 남자의 몸이 아니라 여자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공주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왕자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왕자를 구하고 싶은데 이미 공주는 죽임을 당하거나 파괴되었습니다. 
나를 위한 연애법은 이미 소용이 없지만, 공주의 영혼만으로 괜찮으시겠어요?

그나마 위안은 연애에서 서사적 주인공은 기다리게 하는 사람도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모두 될 수 있다는 겁니다. 
    •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성들의 내재된 억압의 존재를 인정하기 보다는 단순 과장, 혹은 옛날 이야기로 치부하죠.



      그리고 남자가 원하는 건 왕자를 구하는 공주라기보다는 모든 걸 용서해주는 엄마에 가까울 것입니다.
      •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진심으로 공주가 왕자를 구해주는 스토리를 원하는 남성에게 그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여성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 아...제가 이런 리플을 달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이 글은 좀 너무 극단적인 글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 비판은 달게 받겠어요. 그러나 리플을 달게 한 글이라고 하셔서 영광입니다.
    • 이분 다른 글도 같이 보면 이해에 도움이 돼요.
      • 과거 글까지. 제 글 애독자는 남다르군요.
    • 제목 보고 '내가 잠결에 같은 글을 또 올렸나'했다가 응답글이네요

      이 글이 가지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제가 이야기했던 남성중심서사 (남자가 갑 여자가 을) 에서 단지 남성에 여성을 넣어 서사를 진행시켰을 뿐 사실상 서사의 논리는 그대로 가지고 왔기 때문입니다. 아마 예를 든 모든 연극이나 오페라의 서사는 주장하고 싶은 바를 위해 선택한 사례같은데 아마 그 이야기는 여자가 아닌 기존의 남자가 썼을 것이고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행하는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기존의 갑질하는 남성과 크게 다를 가 없는데 그들이 그 서사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서사를 써낸 남자가 그렇게 행하는 여자가 못마땅하기 때문입니다.또 기존 문제의 서사에서 '남성다운 역할'이란 고정 관념 그 자체를 반성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죠. 박근혜가 아무리 여성이라도 남성다운 정치적 포지션이랑 다를바가 없는 이유와 같습니다. 그녀가 여성이라고 할지언정 성공한 방법은 남성의 서사역할이거든요. 제가 저의 "왕자가 나를 구했다" 서사에서 문제삼은 것은 '수동적인 여성' 뿐만이 아닌 그렇게 적극적인남성과 수동적인 여성이 만들어내는 서사 그 자체이고 그 서사의 역할에 그대로 임했을 때 벌어지는 일에 대한 우려입니다. 언제나 주인공인 남성에 의해 죽느냐 사느냐 행복하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가짜 여성중심서사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 글은 모두 결국 여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남자다'라는 이야기들의 다른 버전일 뿐 사랑에 대한 새로운 서사도 아니죠. 단지 여성이 그런 행동을 했기 때문에 결과가 파멸이다 는 이야기는 너무 많지 않나요? 여자가 소를 키우니까 문제다?! 여자가 운전을 하니까 문제다?!

      무엇보다 지금은 2012년이고 고작 30년 전으로만 돌아가도 여성은 대학도 직업도 그 모든 것에서도 뿌리깊게 차별받아온 젠더입니다. 지금에서야 가능해진 이야기가 너무나 많죠. 그런데 예를 드신 서사가 과연 현재 2012년에도 적용될 수 있는 '사회적'조건과 환경일까요. 그리고 사회적 조건과 환경이 주체로써의 여성에 냉대를 한다면 그 조건과 환경을 문제삼을 것이지, 사회가 그러니 그 역할에 임하자 라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정말 굉장히 남성중심적이고 여성비하적인 글을 적으셨는데, 그토록 견고하고 바뀌지않을 것이라 믿었던 문화적 제반환경들이 지난 몇년 사이에 얼마나 바뀌었으며 그게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끝에 얻어진 결과라는 사실을 안다면 이런 글을 적지 않을겁니다. 홍석천씨가 공중파 방송에 나와서 게이농담을 자연스럽게 할수있는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생물학적인 논거를 가지고 오셨는데 사회학에서 그런 생물학적인 접근이 지난 20세기에 얼마나 갈기갈기 찢긴 논의인지는 그렇다치더라도 문화인류학저서에서 생물학적 일반화를 발견하신다면 아주 괴이하네요. 왜냐하면 사실상 '문화'란 그 집단이 만들어낸 하나의 견고한 field인데, 그것은 끝없이 변화를 겪고 또 '문화사'가 되는거죠. 영장류 실험과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이 인간 문화에서의 특징과 동일하거나 그것이 중요한 참고가 된다면 지난 2000년간의 수많은 문화와 문명의 변화를 설명하는게 우스워지죠. 지난 댓글에도 적었듯이 인간의 생물학적인 특징이 결국 "젠더역할"에 그대로 적용된다면 그냥 그건 원숭이들이 아무리 만년동안 살아왔어도 인간처럼 되지 못한 이유일뿐 인간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 잘란 생물학은 아직도 인간 뇌의 기능이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지 못하고 있어요.

      주장을 하기 위해 사례를 드시는 것은 좋지만, 그 사례가 과연 적절한 가는 그렇다쳐도 이 글 에 뿌리깊게 숨어있는 몰상식한 여성차별언어들은 다시 한번 생각하시는게 좋겠네요.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 문화적 양태들 여성들의 위치는 시대만 100년전으로 돌아가도 마녀사냥 당하는 짓입니다. 역사를 생각하셔야죠.
      • Hopper님은 제 글을 조금 오해하시는군요. Hopper님의 글은 조금 생각해볼 거리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여성도 연예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글로 저는 읽었습니다. 아닌가요? 그러나 연애나 사랑에서 서사의 주인공은 기다림을 시키는 자, 기다림을 당하는 사람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물학적 논거는 임신을 하기 때문에 성관계에서 수동적일 수 밖에 없는 여성에 대한 논거에 반박을 하시면 된다고 생각해요.
        • 저의 사랑과 연애에 관한 정의는 알랭 바디우 의 정의와 같습니다." 사랑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등장하는 무대가 지속되는 것이다. " 저의 주장은, 사실상 그 하나됨이 사실은 남성의 행동과 가치 안으로 응하는 여자인 경우가 많다. 두 사람 모두가 주인공으로써 무대라는 중간지점에서 만나 한 계절을 이루자. 입니다. 여성이 남성의 방으로 찾아가거나 반대로 남성이 여성의 방에 들어가는 서사가 아니구요. / 그리고 "기다림을 시키는 자 당하는 자 모두 서사의 주인공이다." 가 저는 이 글의 결론적인 주장이라 하기에는 '기다림' 이라고 하는 행위 자체의 맥락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어떤 주장을 넣기가 애매하네요. 저는 '기다림'을 이야기한 적 없습니다. 당하는 자 시키는 자 라는 그 논리 자체를 문제삼은 거죠. 그게 연애가 아니다 라는 주장도 아니구요.모든 관계를 만들고 서사를 진행시켜 나가는 것의 기본은 주인공의 "액션"이지 "리액션"이 아닙니다. / 마지막으로 임신을 하기 대문에 성관계에서 수동적이다 라는 생물학적 전제가 맞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은 제가 했습니다. 여성의 임신은 몇만년 동안 지속되어왔지만(생물학적인 특징은 변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성관계(섹스가 아닌 관계맺기 방식)의 역사는 문화에 따라 오랫동안 변해왔다는 것. (가장 급진적인 변화는 지난 100년이지만 ) 그 변화를 생물학적인 전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 이상입니다.
          • Hopper>알랭 바디우의 정의 아무래도 좋아요. 사랑은 지속되는 영원성이 있는 것인가요? 한 순간에 불타버릴 수도 있잖아요. 두 사람 중 하나가 퇴장할 수 있지 않나요? 인간의 성관계가 다양해졌다고 하지만 여성이 임신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생물학적 반박은 될 수가 없군요.
            • 저는 "지속되는 영원성"을 이야기하지 않았구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바디우의 '사랑예찬'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같은 말을 대체 몇번 하는 것인지 모르겠는데...임신하는 생물학적 특징 -> 인간의 사회문화적 연애관계적 특징 이 될 수 없다고 계속 설명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린 생물학적 논의를 하는게 아니라, 두 사람이 사회문화적인 연애관계를 맺는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구요. 제가 그 생물학 ->사회문화 가 될 수 없다고 전제를 반박했는데도 계속 임신만을 생각하시니 저도 할말이 없네요.
        • nurture와 nature에서 nature의 영향을 압도적으로 보는 경향이 정작 생물학자들보다 생물학을 자기 이론에 끌어 쓰는 인문학자들에게 더 자주 보인다는 얘기를 도킨스가 비슷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가지의 종 생식 모델에서도 수컷 얘기를 하자면 대다수의 "모범적 가장" 수컷에 소수의 "바람둥이" 수컷이 섞여있는 모델이 안정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구요. 모범적 가장 수컷은 성적 적극성이 암컷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수컷을 말한다고 보시면 되고 바람둥이 수컷은 말 그대로입니다.
          수컷의 성 적극성을 설명하려고 이솔데님의 논거를 가져온다고 해도 그것은 소수의 바람둥이 수컷을 설명하기 위함이라고 보시는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물론 모범적 수컷도 암컷에 비해서야 크다는 추론이 가능하지만, 그 차이가 nurture를 압도할 정도로 큰가 하는 것은 맨 위에 말한것처럼 잘못된 해석으로 나가기 쉬워요. 더구나 인간은 nurture의 영향을 어마어마하게 크게 받는 생물입니다.
          • 생물학을 자기 이론에 끌어 쓰는 인문학자들이 더 자주 보인다는 것이 그 인문학이 맞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진화생물학을 사회이론에 집어넣어 사회진화론으로 나아갔을 때 생긴 역사적 결과는 우월한 사회와 하대한 사회론 식이거나 그런 전제로 설명하지 못하는 여러 문화와 사회 그리고 역사적인 변화인데 제 말은 왜 생물학적 전제는 항상 같은 것인데 왜 인간 문화를 이렇게 스팩타클하게 바뀌냐는 거죠. 과학 사회 안에서조차도 어떤 과학적 법칙과 발견이 항상 올바른 진리가 아닌 그네들끼리 합의한 패러다임의 결과 (사회학적 결과) 라서 그 변화와 붕괴를 거듭하는데 그것이 생물학적인 여러 관찰로 발견된 것이라 해서 그것이 합당한 인간의 본성이다 라고 보편화하지는 못하죠. (이런 인류사회의 해석적 전제를 달리 하신다면 논의는 점점 산으로 갑니다만.) 그 생물학적인 관찰이 위험한 이유는 그 이론가들이 인간의 "mind" "속" 을 들여다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조건 반사적으로 인간행위양식을 정한겁니다. 왜 생물학적 사회학 이론 사회 기능주의 유기체론 같은 것 후에 끊임없이 민속방법론(행위관찰에서 끝나야한다) 이나 여러 사회이론가들이 사회문화적 행위양식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는지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생물학적 특징으로 다 설명하면 되는데 왜 굳이 사회적인 합의와 약속된 의례라는 식의 설명이 가능하게 되는지 말이죠.) 최신 사회학 이론에서 '하버마스,기든스,부르디외' 등등의 모든 이론가들은 문화적 양태는 그 사회문화가 합의한 결과로 보고, 그것이 생물학적인 특징의 발현이라고 보는 이론가는 경제학이나 사회학 소수의 학자들이나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생각이죠.그냥 한마디로 하자면 "동물과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과 유전자 차이가 5프로 도 안되는 원숭이가 문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
            • 네 저도 그 인문학자들이 틀렸다고 하는 말이었는데;
              • 아 제가 댓글 달 곳을 잘 못찾아서 isolde님에 대한 댓글입니다 ;;
          • nabull>이솔데가 아니라 이졸데입니다. 생물학적 논거를 가져온 이유는 <왕자가 나를 구했다>의 논쟁에서 첫 번째 리플을 찾아 읽어보시면 됩니다. 수컷의 바람은 본능이라고 했습니다. nabull님처럼 모범적 가장에 드는 분을 비하할 의도는 없지만 한국사회는 유흥업소만 보아도 열거하신 이상적인 모델과는 거리가 멀군요. 그 모델 안정성의 내면을 투시하면 아름답지만은 않군요.
            • 수컷의 바람은 본능이라고 하는 자체가 위험한 결정론입니다. 남성의 유흥문화를 문화로 보지 않고 본성의 발현으로 보는 것 또한 위험한 일입니다. 본성과 환경은 분명 다른 영역에서 다뤄야 할 일이고 문화는 환경에 가깝습니다. 이상적이란 말 또한 사용하셨는데 안정적인 모델이란 말을 했을 뿐 "이상적인" 이란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변인이 바뀌면 모델도 바뀌어야 하니까요. "인간이 보기에 아름다웠더라"하는 모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곤충의 경우 암컷이 교미 후 영양보충을 위해 수컷을 잡아먹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그냥 유전자 보존에 안정적일 뿐입니다.
              • nabull>nabull님 "수컷의 바람은 본능이다"라고 주장하는 자에 반박하는 의미에서 제 글에 생물학적 결정론을 담았다고 설명했잖아요. 님아, 이 부분에서 우리 아군이군요. 그리고 안정적인 모델의 겉모습만 보고 내용도 아름답군이라고 차마 말할 수는 없다는 의미였어요. 자, 우리 이상향을 위해서 돌진하라는 의미가 아니었어요.
    • 제목 보니 먼저 써진 "왕자가 나를 구했다" 글에 대응해 쓰신것같은데, 이 글은 스케일이 좀 많이 커진 것 아닐까요.
      사대강 얘기하다가 지구온난화로 넘어간듯한 느낌입니다.

      원 글에도 어느 정도 이런 일을 예견한듯한 댓글이 있네요. "이게 다 가부장적 남성문화 탓이다라고 하면 역시 주인공은 남자인 서사일까요? 아닐까요?"
      • 아니죠. 서사적 주인공에 관한 핵심은 문단 밑에 있어요. 한 줄이면 됩니다. 연애나 사랑에서 서사적 주인공은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나 기다림을 당하는 사람이나 모두 주인공이 될 수 있어요.
        • 오 그렇네요. 아 그럼 이 글도 원 글 "왕자가.." 에 반박하는 글이라기보단 그 글의 연애의 서사적 대입은 동조하면서 단지 그 주체만 남 여를 반전시킨것으로 읽으면 될까요.
          • 제가 위의 반박댓글에도 적었듯 이 분이 주장하는 바는 '공주가 왕자를 구했을 경우 벌어질수있는 일들'인데 정작 바뀌어야 하는 것은 누가 누구를 구한다는 식의 '갑을'논리인데 정작 공주와 왕자를 포인트로 삼아 그걸 바꿔 본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결과가 똑같죠.
          • nabull>반은 동조의 글이고 반은 반박의 글입니다. 여성이 능동적으로 연예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회문화적 젠더가 생각보다 견고하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주체를 남녀로 바꾸면 이 스토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분야가 사랑과 연예라서 서사의 주인공은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따로 떼어서 다루고 싶었습니다. 연예서사는 기다리게 하는 자보다 기다리는 자에게 더 영감을 받기 때문이군요.
            • 네 알겠습니다. 생물학적 nature 얘기는 윗 댓글에 달았고 이번엔 사회문화적 젠더 얘기를 하시니까 nurture 얘기를 해볼게요.

              사실 그 말 자체에는 저도 어느정도 공감하고 있습니다. 젠더가 견고하고 그것을 여성이 깨부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여전히 이솔데님의 예시가 적합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해요. 하퍼님도 말씀하셨듯이 저 두편의 오페라는 너무 오래된 얘기입니다. 불과 반세기 사이에 사회적 성에 관한 논의가 수없이 이루어졌는데 과거의, 그것도 극적으로 치닫을수밖에 없는 예술작품의 얘기를 꺼내오시니 조금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봐주시면 될듯합니다.

              현재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고 하면 이제 저는 할말이 많이 줄어듭니다. 제가 남자지만 저도 분명 느끼는 부분이 있구요.
              하지만 "여성이 억압받는다"고 했을때 그 억압하는 주체는 당연히 여성이 아닌 남성이겠지요? 그리고 하퍼님의 글은 (제가 읽기엔)여성의 적극성을 부탁하는 글이었고, 그런 글이 많이 나오고 그런 글에 동조하는 남성이 많다는 사실 자체로도 기존의 "억압하는 남성주의"는 흩어졌다고, 최소한 흩어져간다고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성에 대한 담론을 들여다보면 이것이 우리나라에선 세대에 대한 담론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적극적 여성에 대한 장년층 남성의 반감은 분명 실재하고 있지요. 근데 그게 모든 연령층 남성에게 적용되고, 세대를, 시대를 초월해서 카르멘 시대에서 21세기 한국에도 적용되는가 하는 말입니다.
              • 억압하는 주체가 남성뿐일거라는 인식은 잘못되었죠. 많은 경우, 억압을 강화하는 것은 여성 자신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있고, 시어머니가 있고, 여성 자신의 자기검열이 있지요. 그걸 남성들은 흔히 과소평가하더군요. 그리고 남성들의 외침은 공고한 차별을 내가(남성이) 철회하고 있으니 너희(여성)도 책임을 져라, 라는 맥락에서 여성의 자발성을 남성이 말하는 경우 보다는 '여자가 살림도 하고 돈도 벌어다 주길 바라는' 식의 이기심에서 출발한 경우가 훨씬 많죠. 잔존하는 차별을 인식하고 타파하려는 생각보단, '이미 다 이루어져 있으니 네가 내 몫을 떠 안아.' 식의. 여성의 권리가 남성의 선의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대부분 피터지는 투쟁의 결과라는 걸 생각해 볼 때 전 솔직히 쓴 웃음이 나더군요.
                • 제가 왕자가 나를 구했다 서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도 이것과 같습니다. 여성 남성에 초점을 맞혀선 안되고 그냥 남성중심적 서사 그 자체의 방식을 문제 삼는거죠. 그 서사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남성뿐만이 아닌 그 서사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
                  • 후퍼님. 그러나 저는 그 서사의 가장 큰 책임자는 남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현존하는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식의 후퍼님 발언은 차별을 철회하기 보다는 공고히 하죠. 아직도 쥐고 있는 기득권의 존재를 은근히 은폐하고 있으니까요. 여성 자신도 가부장의 서사에서 탈피해야 하지만 남성이 그것이 기득권이라고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여성의 각성을 주장하는 것은 가장 이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무슨말인지 알것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세대 담론 얘기를 꺼낸 이유에 이것도 포함되거든요. 여성의 자기 검열이 그 전 세대의 가부장적 문화에 기인한다는 것이고 그 전 세대의 가부장적 문화를 만든 주체를 찾고 또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올라가면 결국 남성위주 사회가 나오는게 아닌가 하는 뜻입니다.

                  저 또한 이기적인 개인이기 때문에 제가 선의로 여성의 적극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 부인이 일을 가졌으면 좋겠고 단지 같이 일을 하는 만큼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하는 것이 옳겠구나 하는 생각이죠. 달리 봐서 저만 일을 하고 부인은 집안일만 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공평하다면요. 부인이 일을 하고 싶은데 부당하게 차별받아서 일을 못한다? 이건 싫습니다. 저는 이게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봐요. 그런데 지명님께서 말씀하시는 "여자가 살림도 하고 돈도 벌어다 주길 바라는" 남자는, 가부장적인 남자도 아니고 뭣도 아닙니다. 그냥 불합리하게 이기적인 남자죠.
                  • 가부장적이진 않죠. 제가 그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여성해방서사를 끌어들이는 남성들의 이면에는 그런 이기적인 욕망이 있는 경우가 흔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를 통해서 얻는 특권은 전혀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예를 들어 육아는 아직도 당연히 여성의 몫이고 모성은 천부적이다 라는 식의 인식같은 것 말이죠. 제 주변의 맞벌이 부부들만 봐도 아무리 열린 남성이라 하더라도 육아의 책임을 자신의 몫이라기 보다는 아내를 '도와준다' 라는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 행동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 nabull>진리를 찾는데는 고전을 따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끝없는 사유 끝에 선태되어진 결과물이 현대물보다 못하다고 단정지을 오만함은 저에게 없습니다. 아직도 성의 이중잣대는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군요. 사회전반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이 왕자를 구하려다가 죽는 비극은 계속되겠지요.
                • 예술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고전이니 현대니 따지지 않는게 맞습니다. 하지만 사회를 보는 창으로 다른 시대 다른 사회를 그린 작품을 선택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 지명> 동의합니다. 제가 말한 지점은 기존 가부장체제를 강화하는 것에 있어서 언제나 그것의 책임은 남성'에게만'있다고 여겨지지만 사실상 지명님이 말씀하셨듯 그 주체가 남성 뿐만이 아닌 그 서사에 자연스럽게 응하는 '여성'에게도 있고 그것은 여성에 대한 비하 에 다름아니다 라고 생각하구요. 애초에 글에서 다루고자 주제가 '에게"도"' 이고 원글과 댓글에서도 '남성'이 그것에 응하고 그것에 반대되는 것을 억압한다는 것은 기본 전제에 가깝습니다.이 글의 사례들의 여성이 비참한 결과를 낳는 이유기도 하구요. 저자나 주변 남자가 기존의 가부장적 남성이라는 것. 어쨋든 지명 님의 우려는 분명히 다시 이야기 될 필요가 있는 부분입니다.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죠.
      • Hopper>책임소재는 분명히 하셔야죠. 인종, 계급, 성별 갈등에서 흑인, 노동가, 여성이 자신의 차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죠. 그렇다고 백인, 자본가, 남성의 더 큰 책임이 희석되는 것이 아니군요. 개인이 아무리 극복하고 노력해도 전반에 깔린 사회 시스템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경우가 더 많군요.
        • 제 본글은 차별을 인지하지 못한다기보다 오히려 차별을 강화하는 것에 다름 아닌 여성을 위한 것 같은 글과 논의가 많다는 것입니다. 남성의 더 큰 책임을 여성의 책임으로 희석시킬 의도는 없었구요. 어쨋든 isole님의 지난 글 찾아보고 적당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알겠습니다. 뛰어넘을 수 없다는게 그냥 그러니까 그것에 응하자 로 나갈 수는 없겠지만 말이죠.
    • 이 글대로 왕자의 선택을 받는 여자의 역할을 옹호하는 것이야말로 반여성주의죠.
      • 닌스토롬님> 자본가에 착취를 당하지만 그 시스템에서 완전히 개인의 힘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노동가를 옹호하는 것은 반프로레타리아이군요. 앞으로의 주요 쟁점은 개인적인 문제이고 결국 개인적인 문제로 귀결되는군요. 사회적 시스템 전반에 대한 어떠한 고찰을 할 필요가 없다는 대담한 발언만은 높이 평가해요. 굿!
    • 지명/ 대대대댓글이 안달리네요ㅋ;

      음 그렇군요. 사실 제가 여성해방사를 잘 아는것도 아니고 사회경험도 많지가 않아서 그런 식의 "열려있다고 말은 하는 불합리한 가부장"들을 많이 보질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냥 제 눈에 "윗세대의 남성"으로 뭉뚱그려 생각했을 수도 있겠네요. 이 점은 알아두어야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류의 과도기적 가부장이나 요즘 말하는 "패션좌파"처럼 왠지 멋있으니까 선심쓰는 척 여성 인권을 주장해야지 하는 남성들 뿐만 아니라 지극히 단순한 합리적인 생각을 기본으로 성 차별 반대를 얘기하는 남성도 적지는 않다는 말을 하고싶었습니다. 지금 하는 얘기는 논의에 중요한 얘기는 하니고 그냥 변명같은겁니다.
      • nabull>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사람이면 변명도 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옹호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패션좌파가 아니라 진실로 성차별에 반대하는 남성이 많다는 글에 위안을 받았습니다. nabull님 아이디 기억하겠어요.
      • 예, 말씀하시려는 바는 알겠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건 합리적인 차원에서 양성평등을 주장하시는 남성분들조차 제대로 이야기 나눠보면 정말 양성평등이 무엇인지, 지금 자신이 갖고 있는 가부장적 편견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자각하는 경우는 드물어서요. 멀게도 아니고 제 애인, 친구의 남편, 저의 친족 등등과 잠깐만 이야기 해봐도 알 수 있는 것들이라 저는 남성분들이 그런 것에 대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알려고 노력했으면 하는 마음이 강해서요. 이건 저의 그냥 넋두리 같기도 하군요 ㅎㅎ
    • 그런데 이졸데님 댓글이 많아서 여기다 남기는데 "수컷의 바람은 본능" 이 부분 대댓글이 잘 이해가 안됩니다. 저 말을 주장하신다는건 결정론적으로 생각하신다는 건데, 저랑 생각이 같다 하시는건 결정론을 부정하신다는 건가요?
      • nabull>"수컷의 바람은 본능"이라고 이전 논쟁에서 주장하는 분이 계셨어요. 그래서 이 생물학적 결정론을 지지하는 학자를 본글에 싣고 그에 반대하는 글이 바로 이어지는군요. 네. 결정론 부정하는군요.
    • 연애가 이렇게 어려운거였나요?
      난 그냥 마음에 드는 여자한테 한번 보자. 차마시자. 밥먹자.
      싫어? 그럼 관두고. 이게 이렇게 복잡한 배경이 필요한 일이였군요.


      • 꽃이 필요하겠군요.
    • ㅋㅋ이런 글을 보면 흑인은 열등해서 그렇게 밖에 살 수 밖에 없다는 류의 글들이 생각나는군요. 하긴 그 땐 여잔 선거권도 없었죠. 아아 그 때가 불과 멀지도 않죠. 백년전이니. 본문글이 웃긴데 뭔 말인지나 알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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