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서영이>와 <청담동 앨리스>
<내 딸 서영이>를 보면서 느끼는 건 서사를 만드는 방식이 비겁하다는 겁니다.
이 드라마의 갈등을 만드는 주 당사자는 주인공 서영과 아버지 삼재이고, 우재(네 식구들 및 주변 인물)와 얽히면서 펼쳐지는 일들 대부분은 서영 때문이죠.
그런데 주인공 탓을 차마 못 하겠던지 다른 캐릭터를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전개를 하죠. 덕택에 우재, 미경, 선우가 찌질한 스토커가 되었습니다. ㅠㅠ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하면서까지 제작진이 지키고 싶은 서영의 캐릭터가 일관적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처음 당당하고 차가운 게 매력이었던 서영은
중간에 바보가 되었고 - 변호사 할 정도로 똑똑한 여자가 남편의 행동과 태도가 변했는데도 의심조차 하지 않다니! -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 듯 싶지만
오기 부리며 위악을 떠는 지금의 서영은 뻔뻔해 보이죠.
서영이 "어차피 말해 봤자 우재 씬 이해 못해." 식의 태도를 보일 때마다 '아니, 그럼 너님이 얘길 해야 이해를 하든 곡해를 하든 하지... 관심법이라도 쓸까요?' 되묻고 싶네요.
서영이 아버지를 죽었다고 거짓말한 것은 단순히 신분상승의 욕망 때문이 아니라 나이트 웨이터 하는 아버지가 창피해서
혹은 집안 차이가 너무 나는 까닭에 우재와의 결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거짓말을 한 거였죠.
하지만 우재가 회사에 들어오는 조건으로 결혼 승낙을 받자 그 때에는 사랑하는 남자와 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진실을 바로잡지 않고 현재까지 온 거죠.
바로 이겁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서영은 아버지나 다른 누구 탓을 하는 대신 '모든 건 내 욕망 때문이었다'고 인정해야 하죠.
그런데 서영과 제작진은 끊임없이 희생양을 찾고 있는 느낌입니다. '어제는 삼재 탓, 오늘은 우재와 선우 탓, 내일은 또다시 삼재 탓'
언제까지 수건돌리기를 계속할 지 모르겠네요.
게다가 소통을 지연하거나 방해하는 식으로 갈등을 증폭시킵니다. 서영이 사실을 털어놓으려 할 때에는 우재가 들으려 하지 않거나 다른 사건이 터지더니
이제 우재가 사실을 듣고 싶어하는 순간에는 서영이 대화를 거부하죠. 이런 식으로 엇갈림과 오해를 만들어내는 서사는 별로네요.
40여분 동안 조연들과 가족 이야기를 훑으면서 잔잔하게 가다가 끝나기 20여분 전에 극적인 사건을 펼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작법도 아쉽고요.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드라마를 끊고 다음 회에 계속... 이건 연속극의 숙명일지도 모르지만 앞의 40분 분위기가 너무 차이가 나는 게 문제죠.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단점만 있는 드라마는 아니죠. 뼈속 깊이 사악하고 못된 인물은 거의 보이지 않는 건 장점인데, 그래서 안타깝기도 하죠.
이제 남은 건 등장인물들 간 화해와 용서죠. 연장 안 한다니 남은 10여회 동안 마무리 잘 짓길.
<청담동 앨리스>는 로맨틱 코미디와 스릴러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데 내일 끝나죠.
만듦새가 만족스럽진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는 솔직해서 맘에 들어요.
주인공 한세경도 작정하자면 탓할 대상은 많습니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 탓을 할 수도 있고, '하우스 푸어' 부모 탓을 할 수도 있고,
자신을 이렇게 만드는 데 일조한 전 남친이나 김비서 행세를 하며 자기를 속인 차승조 탓을 할 수도 있죠.
그렇지만 세경은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게 맞아요. 미성년자도 아닌 성인이 자신의 선택에 다른 누구를 계속 탓하면서 변명하는 건 졸렬하죠.
세경이 신인화 팀장도 계획을 세워 승조랑 결혼하려 하는 건 똑같지 않느냐, 이런 세상에서 나만 도덕적이어야 하냐고 반문할 때에는
제작진들의 변명처럼 들려서 피식 하긴 했습니다만 ^^
세경이 "내 사랑은 추한 사랑"이라며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는 모습만큼은 근래 어떤 드라마 여주인공에서도 볼 수 없었던 태도죠.
서툰 솜씨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맘에 드는 이유는 바로 이런 태도 때문이죠.
물론 이 드라마도 망가진 캐릭터가 있습니다. 신인화 팀장이 그런데, 초반에 쿨하고 멋있었던 그녀는 이제 망가질 대로 망가졌죠.
동영상에 의존한 안일한 전개와, 세경이 변했다는 증거로 제시되는 헤어스타일의 변화와 스모키 화장 등도 신경썼으면 좋았을 텐데요.
역시 마무리 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