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이어달리기

 

예전에 '사랑은 이어달리기'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이석원 씨가 쓴 <보통의 존재>에 나오는 수필 중 하나였는데, 이런 문장으로 시작했었습니다.

 

'연애란 이 사람한테 받은 걸 저 사람한테 주는 이어달리기와도 같은 것이어서,

전에 사람한테 주지 못한 걸 이번 사람한테 주고

전에 사람한테 당한 걸 죄 없는 이번 사람한테 푸는 이상한 게임이다.

불공정하고 이치에 안 맞긴 하지만 이 특이한 이어달리기의 경향이 대체로 그렇다.'

 

 

 

읽을 때도 참 공감이 갔지만, 요즘 자꾸 이 문장이 생각 나네요.

 

헤어지고 몇년만에 다시 마주했던 전남자친구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너와 연애를 할 때, 첫 연애라 그랬는지 내 모든걸 다 내보이고 퍼주면서 만났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는 그렇게 못할 것 같고, 하고 싶지 않아. 물론 좋은 기억이었지만 그건 너무 힘들었어'

 

이 얘길 듣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우린 나름대로 평온한 과정을 거쳐서 합의를 하듯 헤어졌고

사귀는 과정에서도 별다른 굴곡 없이 잘 만났다고 기억했는데

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줬던건가..였어요.

 

물론 저도 이 친구로 인해서 이런저런 감정 변화를 겪었지만,

그 다음 만남에 어떤 엉향을 줄 정도로 큰 기억은 없었거든요.

물론 저 역시 많이 좋아한 사람이었지만,

그 당시에 날 더 드러내보이지 않아서 그 친구가 상처받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다음 사람에겐 좀더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저도 다른 연애를 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저 친구가 했던 이야기가 무슨 의미였는지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어느날 지난 관계들이 나에게 알게모르게 미친 영향들에 대해서 처음으로 깊게 생각해봤던 것 같아요.

제가 줬을 상처들도. 누군가 저에게 줬던 상처들 모두를 말이에요.

 

 

 

 

일주일쯤 전에 친구로부터 '그'가 입국했다는 것을 들었어요.

고등학교 때, 그리고 20대초에 그가 듣고 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찾아봤었거든요.

그가 성년의 날에 수줍게 선물을 내밀었는데도, 그 당시에 너무 어려서 좋아한다는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가 다른 나라로 가버린 뒤에야, 어느날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너무 뒤늦게야 첫사랑이었음을 깨달았는데...그냥 시간은 흘러가기만 했어요.

 

'그'는 친구를 통해 번호를 남겼

고, 저에게 연락이 없자 문자도 몇차례 왔지만

8년만에 마주한다는 것이 어쩐지 조심스러워서 멈칫하게 되었어요.

 

 

 

 

 

그리움과 망설임이 교차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던 중에

오랫동안 방치했던 블로그에 오랜만에 접속했어요.

최근에 방문한 사람들 명단 가장 위에 낯익은 아이디가 찍혀있더라고요.

 

헤어진지 아주 오래돼서 기억조차 희미한 사람인데, 이상하게 그의 아이디만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어요.

이 사람에게  내가 어떤 기억과 흔적을 남겼기에, 아무 것도 없이 휭한 곳을 이 추운 겨울밤에 왔다 갔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저것을 본 순간 망설이는 마음이 싹 가라앉으면서, 연락하지 말아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게 되었어요.

좋든싫든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을 게 분명하거든요.

 

어느순간 관계를 통해, 누군가와 영향을 주고 받는게 참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더이상 상처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해묵은 감정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모두 피하고 싶어지더라고요.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이어달리기'는 계속되겠죠..

 

 

 

    • 피하고 싶은 마음 공감이 됩니다. 너무 잘 지내도 속상하고, 잘 못지내도 속상하고요.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일까요?
      • 네 그리고 저도 그때와 똑같지 않으나, 그 사람도 그러리라 생각이 되서 예전 기억을 어그러뜨리고 싶지 않더라고요. 마음 속에 예쁜 그 상태 그대로 두고 싶어요.
        많이 보고싶고 궁금한데도, 이런 이유들 때문에 보지 않는다니 좀 우습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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