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비론 비판 - 지젝버전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중에서 양비론과 관련한 부분을 가져와 봅니다.

양비론에 대한 비판은 여럿 보아오셨겠지만 지젝을 통해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수 있겠다 싶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이구요.

개인적으로 양비론자는 링에 오르지 않는 비평가라고 봅니다.

물론 선택은 자유이겠으나 결코 링위의 선수들처럼 "승리"(혹은 패배)를 가슴에 안을 수는 없는 운명입니다.

 

192페이지.

 

"잘못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no one is pure)"라는 양비론적 태도로 윤리적 행위의 의미를 '물타기'하는 것이 가장 나쁜 죄다.

그런 물타기는 실상 다반사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두 가지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득인가?

 

우선 "결국은 다 똑같은 놈들이지(ultimately all the same)"라고 말함으로써 은연중에 자신은 그들보다 도덕적으로 더 낫다는 점을 과시하게 된다.

양비론자들은 이런 식으로 말한다. "민간인들까지 공격하는 이스라엘 놈들이나, 그렇다고 폭탄 테러를 저지르는 팔레스타인 놈들이나 다

똑같은 놈들 아냐? 서로 좀 양보하면 되는 걸 갖고 말이야."

 

이렇게 모든 책임을 양쪽에 전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다른 이득은

"스스로 완전한 책임을 떠안고 상황을 분석하며 한쪽 편을 드는 어려운 임무"(실재의 사막, 165쪽)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반대의 태도가 자기 자신을 연루시키고 책임을 떠안는 것이다. 양비론자들처럼 "너희 둘이 잘못했으니까 너희들이 책임져!"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내도 책임에서 면제되지 않는다!"라며 나의 잘못과 책임을 발견, 인정하는 것이다.

 

그 책임은 어떻게 질 수 있는가? 문제적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정확하게 한쪽 편을 지지함으로써다.

누구의 잘못과 책임이 더 큰지를 분명하게 가려내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술에 물 탄 듯이 모든 것이 흐리멍텅해질 것이다.


    • 진짜 볼 때마다 느끼지만 지젝의 물타기는 진짜 토할 것 같이 역겹네요. 양비론과 책임의 문제는 엄연히 다른겁니다.
      • 양비론과 책임의 문제가 어떻게 다른건지요? 따지는 것이 아니라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거든요.
        •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양비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비론 그 자체에다가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이 문제지 양비론이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 이런 관점에서 봤을때 '토론'을 경험하는 행위는 좋은 교육 방법이라 생각해요. 백분토론 같은 형식이야 애초에 진영이 나뉘어져서 시작을 하게되니 열외로하고 토론 시작전까지는 어느측 입장에 설지 모른채 준비한 다음 토론에 임해보는 경험은 '선택'을 잘 내리는 것에 있어서 좋은 도움이 될거라 생각해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분명치는 않지만 중앙시네마에서 봤던 바시르와 왈츠를은 좀 뒷맛이 씁쓸했었어요. 친구와 나오면서 했던 이야기가 " 영화 감독이지만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런가 관점이 친 이스라엘적인거 같다는 이야기를 했던거 같기도 하네요.

      뻘질문이지만 작년 지젝 내한땐 가셨었었나요. 전 당시 다니던 회사 팀장님이랑 활활타오르는 기세로 합동 참여를 하려했지만 함께 폭풍 야근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_-
      • 저는 로쟈의 저공비행을 통해서 이름만 어렴푸시 알았었고 이번에 다큐멘터리랑 책 하나 읽었습니다.
        책은 제게 조금은 어려웠지만 정신집중이 안되는 가운데 조금씩은 고개 끄덕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시르와 왈츠를 - 이건 DVD만 사두고 계속 안보게 되네요.
    • 진심 A랑 B랑 서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싸우고 있는 경우에도 한 편을 무조건 들어야 하나요?
      도리어 한 발 물러서서 누구 편에 서지 않은 채로 보는 게 더 상황을 면밀히 분석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상황을 분석하는 것과 한 쪽 편을 드는 걸 왜 동일시하는지 모르겠군요.
      • 저라면 '존 롤스의 커텐' 뒤로 돌아가서 A, B의 입장이었다면 각각 어떻게 대응할 수 있었을지를 고민해봤을 듯 싶습니다.
        치열하게 상황을 분석한다면 왠만한 경우에서는 양비론으로 흐르지 않고 한쪽편을 들 수 있지 않을까요?
      •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양비론자면야 당연히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실제 양비론자들을 보게되면 대부분 객관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관심 때문에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양비론을 취하면서 양쪽 다를 비난하는 스텐스를 취하는 경우가 더 많더군요. 둘 다 나쁘다고 하다가 왜 그런지 자세히 물어보면 어버어버 잘 모르거나, 아님 막연하게 일반론만을 펴거나...
    • 저런 경우 사실 내편 들어달라는 뜻이더군요.
      • 진지하고 공정하고 많은 분석을 거친 양비론자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링에서 싸우는데
        링에 올라오지도 않고 양비론을 툭 던지면 차라리 링에 올라와서 맞붙어줬으면 하는 마음도 들지 않는지요?
        그렇게 보면 꼭 내편을 들어달라는 의미가 아닐수도 있지 않을까요?
    • 지젝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죠. ㅎ.
    • 지젝은 월스트릿엔 나타나도 정작 슬로베니아 전국 궐기 대회에는 안 나타나고.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람과는 말 한 번 섞어보지 못한 한국의 고딩이 굳이 한 편을 들어야만 할까. 한국의 고딩은 둘 다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는 걸까. 세계는 하나니 그러면 안되는 걸까. 그렇다면 승리와 패배를 가슴에 안을 수 없는 리즈 출신의 중년의 축구 심판은(쟤도 잘못하고 너도 잘못했다고 말하는, 맨유의 루니도 퇴장시키고 리버풀의 제라드도 퇴장시키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까. 뭐 이런 생각이 듭니다.

      농을 치자면, 라캉주의자는 아마도 실재계를 들먹이면서 "존재하지 않는 공정한 심판"이라던지, "공정한 심판은 없다"와 같은 제목의 에세이로 반박할지도 모르겠네요.
      • 당연히 한국의 고딩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둘 다 잘못했다고 말을 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 둘 다 잘못했다는 말은 그 말을 한 한국 고딩이 정말로 그것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고 고민을 해서 내놓은 답일때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난 관심 없고 자세히 알고싶지도 않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니 둘이 싸우는건 결국 둘 다 잘못이다" 수준에서 하는 말이라면 차라리 그냥 닥치고 있으라고 해야죠.
        • 맞습니다. 그럴 경우라면 닥치고 있으라고 해야죠. 하지만 이 경우에서 "닥치고 있으라는 비판"은 양비론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난 관심 없고 자세히 알고싶지도 않지만" 좀 보니 1. 둘 다 잘못한 것 같다/2. 이스라엘이 잘못한 거 같다/3. 팔레스타인이 잘못한 거 같다. 한국의 고딩이 어떤 결론을 내더라도 모두 같은 원인(무책임함, 양비론이라서가 아닌)에 의해 비판받기 때문이죠.

          그런데 egoist님과 저는 양비론에 대해서 많이 다른 시각을 가진 것 같습니다. egoist님은 양비론이 무관심에서 오는 것이라는 입장이신거 같은데, 제 입장은 한 쪽을 선택할 수 없는 애매한 문제들이, 입장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온다고 믿는 편이거든요. 그리고 저는 무관심에서 비론된 양비론은 양비론이라 비판받기보다는 무책임함에 의해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ㅋㅋ 댓글들 참.. 듀게에서 미움받는 사람인가요 지젝은
    • 케바케입니다. 양비론이 유의미할때가 있고, 그냥 뭣모르는 사람이 방귀 좀 뀌고 싶어서 써먹을때도 있죠. 전자는 귀담아 듣고 후자는 무시하고 비판하면 되고요.
    • 본문과 상관없이~

      넷상에서 양비론이 욕먹는건 양비론 자체의 '죄'때문이 아니라 그냥 자기편을 안들어줘서죠



      양비론 펴던 사람이 반대진영으로 가면

      비겁자에서 개새끼가 됨
    • 가끔씩 양비론 펴는 사람이 무지무지 재수없을 때가 있긴 있죠.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겠으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될걸, "둘 다 똑같애"식으로 한마디 툭 던지고 가는 사람들 말이에요.
    • 타빙헥/ 예로 드신 "난 관심 없고 자세히 알고싶지도 않지만" 좀 보니 1. 둘 다 잘못한 것 같다/2. 이스라엘이 잘못한 거 같다/3. 팔레스타인이 잘못한 거 같다. 를 가지고 보자면 이런 것입니다. 솔직히 저런 무력 충돌이 있다고 했을 때, 누가 보더라도 양쪽이 다 잘못하고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당연한 일입니다. 한쪽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민간인들까지 마구 공격을 해대고 한쪽은 무차별젹 테러를 자행하고 하는데 조금이라도 상식과 정신이 있다면야 누구라도 한쪽은 전혀 잘못이 없다, 오로지 한쪽만의 잘못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 이스라엘이 잘못한 거 같다 혹은 3. 팔레스타인이 잘못한 거 같다 중의 한가지 결론을 내리기 위해선 "양쪽이 다 잘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이런 이유로 어느 쪽이 조금은 더 잘못을 한 것 같다"라는, 자기 나름의 기준을 토대로 한 가치판단과 입장정리가 있어야만 합니다. 즉 2번이나 3번으로 입장을 정하기 위해서는 거기까지의 결론까지 도달하기 위해 그만큼 고민과 생각이 필요한데 반면에 “양쪽이 다 잘못이다“라는 양비론의 경우는 대부분 그 이후의 보다 심화된 고민과 생각까지 가지 않고 그냥 누구에게나 너무나도 당연한 "둘 다 잘못"에서 생각이 멈춘 채 더 이상 생각을 안 한, 추가적인 가치판단이 없는 결과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저는 저는 양비론 자체가 나쁘다는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제 경험상 양비론의 대부분이 고민을 거쳐 나온 것인 경우보다 무관심과 무책임함, 생각하기 귀찮음을 양비론으로 치장하는 것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 양비론은 둘 중 어느 한 편을 들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둘을 합리적인 근거 없이 50:50으로 간주하고 발을 빼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마치 외계에 생명체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잘 모르니 50%라고 하는 엉터리 확률추정처럼.
      잘 따져보니 A가 40 B가 60 정도 잘못했고, 양 쪽이 어떤 점을 고쳐야 한다라고 말하면 그건 양비론이 아니죠.
    • 이를테면 근래 발칸 전쟁 같은 경우가 서구의 양비론적 태도의 도덕적 과오를 물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일 겁니다. 수전 손택은 유럽 좌파들이 우왕자왕할 때 단호하게 나토가 세르비아를 공격할 것을 주문했죠. 그 판단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적어도 양비론이 가지는 맹점을 명백히 인식하면서 그런 주장을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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