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는 내 양심

예전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 4,5 학년 쯤이었나, 같은 반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작은 아씨들'이 아주 인기 있었습니다.

친한 애들끼리 성격에 대략 맞춰서 어른스런 친구는 큰언니 메그, 글 좀 쓰고 독특한 아이는 조, 착한 친구는 베스, 

귀여운 아이는 에이미로  설정하는 놀이도 하고요. 저는 그런데는 못끼고 구경하면서 속으로 부러워 하는, 

두꺼운 안경쓰고 조용히 구석에서 책만 읽는 캐릭터였지만요. 암튼 저도 작은 아씨들을 무척 좋아했는데, 

사랑이 뭔지 모를때였으니까 조가 왜 그 죽이 잘 맞던 옆집 친구 로우리를 연인으로는 마다하는 지 참 이해가 안됐습니다. 

저렇게 둘이 잘 노는데 왜! 로우리는 멋진데 왜! 심지어 부자잖아 왜!

그리고, 또 아주 인상적이면서도 이해가 안 됐던 장면은 베스가 성홍열로 처음 아팠을 때,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던

베스를 언니 메그와 간호하면서 조가 '베스는 내 양심이야! 베스를 잃을 수 없어!' 라며 울던 부분이었습니다. 

조가 특별히 더 베스를 아낀 건 알겠는데, 동생이 자신의 양심 이라는 게 대체 무슨 소리지.


요즘 직장에서 여러가지 회유랄까, 암튼 맘 편할 수 없지만 합리화는 할 수 있는 선택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친했던 동료 한명이 때마침 그만두고 멀리 떠날 예정입니다. 이제는 조의 말이 무슨 뜻 인지 알 것 같네요. 

의지와 양심이 굳지 못한 저같은 사람들에게는 '저 사람이라면 이럴때 당연하다는 듯 맞는 선택을 하겠지' 라는 생각만으로도 

조금 어려울 때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자 지켜보는 눈이 되었다는 걸요.


사람들은 대체로 좋은 부분과 약점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이 동료에게도 결점들이 있지만, 

선택의 순간 바른 결정을 하리라는 믿음을 준, 정말로 흔치 않은 사람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어려웠지만, 당신 없이 또 어떻게 버틸까. 또 만날 수 있을까.

안녕히 가세요. 부디 건강하기를. 



 





 

 

 

    • 내가 내 양심이 되어야죠
      • 크...쉬운 상황에선 그게 쉬운데 어려운 상황에선 어려워요 ㅠㅠ
    • 저도 어린 시절 탐독했던 책인데, 말씀하신 부분이 기억이 안나서 검색해보니까 정말 조가 Beth is my conscience라고 말했군요. 정작 제가 기억하는 건 팬지가 그려진 슬리퍼를 만들었다거나, 메그가 장갑 한짝을 잃어버리거나 하는 (어린시절에 느끼는) 희한한 문물들.
      • 조가 무도회에 등 태워먹은 드레스 입고서 등짝 안보이려고 춤 못추고 있다가, 수줍음 많이 타는 소년 로리 만나지요^^ 내용들이 아련하게 기억나요
      • 그런것도 많았죠. 초대받아서 간 파티의 아침이랑 저녁에는 드레스를 바뀌입어야 하는데 재질은 또 모슬린이 어쩌구 태피타가 어쩌구...
        • 부자 친구가 메그에게 너는 왜 같은 드레스만 입냐고 하니까 이 옷뿐이라고 대답, 그러자 눈치없는 부자 친구는 하녀를 시켜서 집에 보내서 드레스 더 가지고 오게 하면 되지 않냐고 하지요. 그 친구 언니는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 드레스 많아봤자 아무 소용 없다며 애써 상황 넘기려고 하고, 허영심이 강한 메그가 굉장히 힘들어 하던 여름 파티.
      • 그 잃어버린 장갑 한짝은 메그를 짝사랑하던 옆집 로리네 가정교사가 소중히...^^ 로리가 가짜 편지로 장난치지요. 메그는 조랑 로리랑 짜고 장난친줄 알고 불같이 화내고. 소록소록 기억나요 에피소드들이.
    • 잘 읽었어요. 제 상황에 비춰 여러 생각을 했네요. 감사합니다.
    • 그사람에게는 또 그런 사람이 있고 또 그사람에게는..다 그렇게 살아갑니다.
      나의 양심,부러운 말인데 들을 수 없어서 서운합니다 안듣고 그냥 살아도 좋지만.
    • 제목만 보고서 아, 하고 작게 탄성 나왔어요. 잊을 수 없는 작품, 잊을 수 없는 대사.

      동료 분이 참 올바르시고 멋진 분이시네요. 가슴이 찡합니다.
    • 그런 대사가 있었군요. 글쓴 님의 이해도 참 훌륭합니다.
      전 주변에 딸만 넷인 친구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작은아씨들'의 특징이 자매들에게 그대로 나타나더군요. 자매가 서열상 취해지는 성격이 어느정도 보편화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 자매의 서열상, 에이미는 진짜 같아요. ㅎㅎ 막내여동생이 딱 에이미 성격.
      • 둘째 딸이 조 같은 경우도 많은 듯해요. 위아래로 치여서 그런가 중간은 독립성+애정결핍+인정욕구충만 성격이 고스란히...
    • 글루건/한군/가끔영화/라곱순/lem 공감해 주시니 고마와요. 흑. 제 동료에게는 정작 이 말 못하지요. 왜그래요 그게 무슨 소리ㅋㅋ 이럴 사람이라.
    • 아 덕분에 작은 아씨들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고맙습니다 베스는 내 양심이라는 이 명대사라니...!
    • 베스는 내 양심...이런 대사가 있었군요. 베스의 죽음이 다시 슬퍼지는
    • 나중에 로리랑 에이미가 결혼하는 거 보고 멘붕..
      뒷 얘기에서 메그는 나중에 과부되던데.. 이 아가씨도 참 박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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