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커버스토리 - 박 당선인은 두 동생을 키운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동아일보는 매일 커버스토리로 박근혜 당선인의 일대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오늘자 기사에서는 박정희 사후 박 당선인이 얼마나 인고의 세월을 살아왔는지 절절한 문장으로 젃고 있네요, 가장 압권인 부분은 이것입니다.
칩거(1979년 11월∼1988년 7월)-아버지의 이름으로 1
서울 중구 신당동 ‘박정희 대통령 가옥’에는 박 전 대통령이 1958년 이 집을 샀을 때 심었다는 향나무가 대문에 기대듯 담장 위로 높이 서 있다. 육영수 여사가 심은 목련은 향나무와 1m 정도 사이를 두고 있다. 나무를 좋아한 육 여사는 목련과 더불어 벽오동과 은행나무, 라일락 등 스무 그루를 심었다. 훗날 이 집을 다시 찾을 때면 박 당선인은 목련에 손을 짚고 깊이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고 한다.
1979년 11월 21일, 15년 11개월 동안 머물렀던 청와대를 나온 박 당선인은 화단에 나무가 빽빽한 이곳으로 돌아왔다. 대지 327m²(99평), 건평 129m²(39평)의 단층집은 방이 5개였지만 관리인과 가정부 방, 청와대에서 들고 온 짐을 들여놓은 방을 빼면 실제로 쓸 수 있는 방은 2개였다.
현재 신당동 가옥을 관리하고 있는 박운영 씨(73)는 “박 당선인이 가정부를 두지 않고 혼자 살림을 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박 당선인이 두 동생을 키운 것이나 다름없다”며 “인근 중앙시장에 장을 보러 가기도 했고, 김치찌개를 끓여 먹는 것도 봤다”고 했다. 박 씨는 1958년부터 1980년까지 이 집을 관리했던 박환영 전 청와대 관리담당 부이사관(2005년 작고)의 동생이다. 형을 따라 드나들며 집 관리를 도왔다.
1979년 11월이면 박당선인은 만으로 28살 박근령씨가 25살, 박지만씨가 20살이었습니다. 도대체 뭘 기억하고 있기에 두 동생을 키운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러니까 소녀가장 소리가 나오는거겠죠. 게다가 방 5개 중에서 관리인방과 가정부방 그리고 짐방을 빼면 실제 쓸 수 있는 방은 2개였다는데 가정부가 없이 혼자 살림을 했다니까 쓸 수 있는 방은 3개가 맞겠네요. 한 명이 방 하나씩 쓰면되지 뭘 더 바라는지 모르겠어요.
http://news.donga.com/Main/3/all/20130216/530756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