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대를 준비합시다
'내가 보기에는 어둠의 밤이 새로운 시대의 전날 밤이 아니라 아직 덜 끝난 시대의 마지막 밤 같다니까, 진짜 어둠은 아직 남은'
[이문열: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 중
44%의 의미
75.8%의 투표율. 51.6%의 득표율.
박근혜 18대 대통령이 얻은 민심은 경이로울 만 합니다. 투표율로는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 이래 15년만의 최고치이고, 득표율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첫 과반 대통령입니다. 민주주의 대의의 원칙인 '많은 사람이 선택할 수록 진리'에 비추어 보면 국민들의 선택은 옳은 선택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선 두달이 지나고 취임을 앞둔 지금 그의 지지율은 44%(한국 갤럽 2월 셋째주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역대 대통령 취임 직전 최저치이며 본인이 얻은 득표율에 미달하기까지합니다. 두달만에 민심은 왜 이리 싸늘하게 변했던 걸까요.
이런 저런 이유들이 제시됩니다. 인사문제에 대한 지적도 있고, 신임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제기하는 쪽도 있습니다. 이 모든 말들이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당선 전에도 지적됐던 사안들입니다. 국민들은 이를 모르고 찍었던 걸까요. 도도한 민심의 흐름은 이 결점들을 눈감아 줄만한 뭔가를 발견했던 것일까요.
저는 '지난 글(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라는 글에서 지난 선거를 이렇게 규정했습니다. "지금 우리사회가 새로운 사회적 시스템을 원하고 있다"고요. 안철수 현상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논리에 비추어 박근혜 대통령을 찍은 51.6%의 국민들의 심리를 고찰해 보고 싶습니다. 결론은 간단하게 나옵니다. 새로운 사회적 시스템이 도출되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익숙한 시스템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이 결론이 옳은 판단이었느냐 옳지 않은 판단이었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판단은, 75.8%의 국민이 투표하고 그 중 51.6%의 국민이 선택한 판단은 옳아야 합니다. 국민에게 올바른 정보가 주어졌을때. 참여하는 국민이 많을 수록 옳은 선택을 한다는 논리는 정당하니까요. (과연 이번 대선에서 국민에게 올바른 정보가 주어졌느냐는 물음을 던진다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이 문제로 들어가면 너무 글이 길어질 것 같으니.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히 결론만 말한다면 이번 대선에서 저는 올바른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캠프의 윤여준 국민통합위원장은 이 복잡한 제 설명을 간단히 정리했습니다 "국민은 덜 불안한 사람을 선택했다"고요. 이것은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나이든 사람들의 반란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어둠속 빛나는 불빛을 확신하지 못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기억속 빛을 찾아간 것과 유사합니다. 아니 그런 행동패턴은 같습니다. 이문열이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말한 것처럼 "새로운 시대의 전날 밤을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 덜 끝난 시대의 마지막 밤"을 선택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선택은 기존 시스템을 만든 박정희라는 사람의 딸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희곡속에서 반복되는 역사를 지켜볼 것입니다. 현재 시스템의 형해화가 이뤄지는 광경을 그 시스템을 만든 사람의 혈육적 자식이 구체화 하는 광경을 지켜볼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인선을 보면 그건 거의 확실합니다.
제 이 주장이 옳다면 불과 두 달만에 44%의 지지율로 내려가버린 현상도 가히 쉽게 설명이 가능합니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민낯을 보고 지지를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다시 지금의 시스템을 선택했지만, 그것이 현세의 시스템과는 맞지 않다는 것을 2달간의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은 아닐까요. 보수위주의 사회라는 진단도, 불통과 인사실패의 원인을 말하는 것도 쉽습니다. 44%의 이유로 이 모든 것을 들어도 해당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왜 51.6%가 44%로 변했는지를 고찰해야 합니다. 앞선 이유들이 그것을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국민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졸민한 제 머리로는 국민들의 행동에서 원인은 불안과 두려움이라고 밖에 보지 못하겠습니다.
미래의 시스템
그 불안과 두려움은 새로운 시스템이 우리에게 맞지 않아서 일 수도 있겠습니다. 과민한 제 글에서 저는 현재의 시스템이 강력한 국가주의 안에 내면화되어 있는 옹골찬 가족주의. 그리고 국가주의가 만연하면서 삭제된 공공성. 공동체는 무력하고, 개인의 이기주의만 만연한 나라라고 평했습니다. (그때 저는 도올 김용옥의 글이 제 글을 잘 요약하고 있다고 설명했죠. 지금도 그럴 수밖에 없겠군요)
하지만 더 정확히 지켜봐야 할때 우리 안에 있었던, 더 정확히 말하면 51.6%의 사람들이 가졌던 불안과 두려움은 새로운 시스템의 불안정에 대한 불안함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몇차례에 걸쳐서 지난 2011년의 안철수 현상에 대해 새로운 시스템, 더 정확히 말하면 공동체라는 새로운 이념을 구체화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는 이 공동체라는 것을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안철수는 무기력했고 이를 달성할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문재인은 현실에 안주했고, 더 쉽게 뛰쳐나거나 더 쉽게 주저 앉는등 정확한 그림을 그리지 못했습니다. 첫시작은 불안한 것이 당연했지만 우리는 그래서 불안했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시스템을 선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다시 도달합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안전함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이 형이상학적인 그리고 모순된 낱말을 풀어 나가야 하는것이 새시대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5년. 우리가 어떤 앞날을 맞이할 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앞날을 준비해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시대입니다
우리의 시대를 준비합시다.
지난 글 몇번을 들추어 보았습니다. 특히 눈길을 갔던것은 공의 귀환을 준비한다고 썼던 2년전의 글입니다. 저는 그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지금껏 사사로움의 대척점에 있었던 것은 공정함(公) 이었지만, 앞으로는 함께하다(共)가 될 것이다'라고요.
공정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공의로움은 공평하다. 치우치지 않다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선거기간 중 박근혜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이러합니다. 사사롭지 않고 원칙적인 그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다라는 믿음. 바로 이것은 공정함을 의미합니다. 51.6%의 국민들이 기존 시스템의 개량을 선택한 것도 당연합니다. 공정함을 갖추어 준다면 시스템의 변화라는 복잡하고 불안한 행동을 선택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여졌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그 기존 시스템의 변화를 느껴야 하는 지점에 선 우리들은 다시 공(共)이라는 글자를 되새겨 봐야 합니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나라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형해화 되어버린 가족과, 무너져 버린 국가주의를 대체할 무엇이어야 합니다.
결국 답은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의 믿음과 서로의 신뢰로 쌓아나가는 '우리의 시대'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다음 시스템이 되어야 합니다. 5년동안 불안하고 비틀거릴 것입니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나갈 길은 멀고도 힘들것이고 기존 시스템에 젖어있는 사람들의 반발과 항의는 더욱 거세어 질 것입니다. 하지만 5년 뒤 다시 불안에 사로잡혀 '덜 끝날 시대의 마지막 밤'을 선택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한발작 나아가야합니다. 그것이 공(共)이라는 시대로 구체화 되려면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 한테도 마찬가지고 그가 이끌 정부에게도 마찬가지 원리로 작용할 것입니다. 다가오는 5년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시대'입니다.
이 글을 더 정확히 이해하시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읽으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나이는 먹고 점점 노화와 게으름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저는 결국 과거의 글을 빌려 말하는 추함을 간직하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많을 것 같아. 조만간 다시 제 머릿속을 풀어내려 노력해보겠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시작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과 축하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