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밤에 생각나는 어느 젊은이의 죽음.

얼마 전, 예전 직장동료 한 명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별로 친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스물 일곱, 여덟 정도 되었으려나. 친하든 안 친하든 자주 보던 사람, 그것도 저보다 어린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고 하니

한동안 가슴 한구석이 무겁고 자꾸 그 사람 얼굴과 목소리가 생각이 나더군요.

약간 껄렁한 성격이면서도 수완이 좋은, 남들 다 죽어도 혼자 살아남을 것 같았던 사람이라 더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단어가 가진 무게에 비해 죽음이란 때론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가볍게 찾아오는구나, 하고 새삼스런 생각을 새삼스럽게 했죠.


군대 얘기라 죄송합니다만, 군 시절 직접적으로 보지는 않았더라도 이런저런 죽음들을 접할 일이 있었어요.

저는 정보과란 곳에서 근무했던 행정병이었습니다.

뭐...키보드 치는 일이긴 했는데, 업무 중에 좀 특이한 보고서를 올려야 하는 일이 있었죠.


가끔 자유로나 이런 데 지나다 보면 강변에 조그만 군 소초 서 있는 거 보신 적 있죠?

한강을 통해 북한군이 침입하나 안하나 경계를 서는 건데, 그걸 강안경계라고 해요.

제가 있던 부대에서도 강안경계를 했죠.

전 좀 상위부대였고, 예하부대 세 곳에서 1년씩 돌아가며 투입했었어요.


근데 이게 고약한 게...아무 일 없어도 무더위건 혹한이건 몇시간씩 그 좁은 상자 안에서 강물만 쳐다보고 있기도 힘든데,

장마철 무렵이면 가끔씩 시체가 경계 구역 강변으로 떠오릅니다. 장마철이 아니라도 떠오를 때도 있고...

그러면 군경 합동 출동을 해서 시체를 확인하죠.

군은 왜 출동을 하느냐? 군대에서 흔히 쓰는 말로, '대공 용의점'이 있나 없나, 그걸 확인하러 가는 거였죠.

시체 떴다! 보고가 오면 정보과 간부가 출동해서 '대공 용의점'이 있는 시체인지 아닌지 확인을 해요(다행히도 저는 안 가고..).

예를 들면 정권에 단련 흔적이 있는지 없는지, 뭐 그런 걸 보고 판단하는 거죠.

간부가 익사체 사진을 찍어가지고 오면, 전 그 사진을 첨부해 대공 용의점이 있는 시체인지 아닌지 보고서를 작성해 올려야 했어요.

덕분에 물에 빠진 시체 하나는 참 많이 봤죠.


물에 빠져 죽었다. 별 사연 없을 듯한 사인이죠.

하지만 제가 직접 보고서를 작성한 시체도 그렇고, 제 선임병이 작성한 옛 보고서들을 읽다 보면 그렇지가 않았어요.


정보과 안에서 '815 시체'라고 불리던 남자분이 한 분 계셨습니다.

광복절에 떠오른 분이었거든요. 이 분은 정말 참...

정보과 컴퓨터 안에 있던 시체 사진 중에서도 가장 보기 힘든 사진이었죠.

신체 모든 부위가 풍선처럼 부풀어 있고, 색조도 주로 보라색, 갈색, 붉은색, 검정색, 파랑색.

그러면서도 부릅뜬 눈은 어찌나 선명하게 보이던지, 마치 이집트 벽화의 눈을 보는 느낌이...

전 이 사진을 완전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봤기 때문에 순간 쇼크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근데 비주얼은 비주얼이고...보고서를 읽어보니 사연이 궁금해지더군요.

이 분은 속옷에 어떤 여성의 이름을 적어 놨었어요.

지갑에는 본 지 2주 된 영화표가 두 장 들어있었고, 여자 사진도 한 장 들어 있었대요.

추정일 뿐이지만, 아마 이 남성은 어느 날엔가 좋아하는 여자분과 영화를 봤을 수도 있을 거에요.

그리고 2주 지나서 물에 퉁퉁 불은 시체가 되어 떠올랐어요.


그리고 또 하나.

열아홉인가 스무 살 정도로 추정되는 아가씨가 있었어요.


정확히는 익사체가 아닐 지도 몰라요.

발견 당시 시체는 속옷만 입은 상태였습니다.

손목과 발목에는 텐트 끈 같은 것으로 결박이 된 흔적이 있었고요.

얼굴과 몸 일부에는 구타의 흔적으로 보이는 멍과 타박상이 발견되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보고서의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이 시체가 몰래 침투하려다 빠져죽은 공비인가 아닌가.

그 사실만 정확히 기재되어 있으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죽었건 별 상관이 없는 문서였죠.


옛 직장 동료의 부고 소식을 들으면서 그 시절 보고서에서 봤던 시체들 생각이 났어요.

누군가의 죽음이란, 항상 뉴스에서 보고 지나치듯 차라리 일상에 가까울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생기는 일이고

그 무게 역시 생각처럼 무겁지 않다는 사실.

참 새삼스러운 상념들을 되새김질하게 만들었던 보고서 속 시체들 생각이요.


전 아직 그 시체들을 기억해요. 예전 직장 동료도 기억할 거고요.

잊혀지지도 않고, 잊어서도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나와 별 관계 없는 죽음들이라도, 한 명이라도 더 기억해 준다면.

좋은 거 아니겠어요.




    • 저는 지난학기에 법의학 수업을 들으면서 정말 많은 시체사진을 봤어요.
      친구와 만나기도 하고, 어디선가 밥을 먹으며 일상생활을 영위했을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 한구의 시체가 되어 있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마치 제가 딛고 있던 땅이 갑자기 꺼지는, 혹은 발 밑 어딘가에서 찬 바람이 불어와 발목을 휘감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아이들의 시체사진을 볼 때면 마음이 더욱 아팠죠.
      그 아이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 그리고 살아있었더라면 그 아기가 누렸을 백지와 같은 인생이 생각나서.

      잊어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공감합니다.
      저도 그들을 한 카데바가 아니라 분명하게 살아있었던 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어요.
    • 전 죽음을 영원한 이별을 보장하는 거대한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거대한 힘을 제대로 목격하게 되면 그에 관해 계속 생각하게 되더군요.

      죽은 사람들을 계속 마음에 담아두는 행위만이 영원한 이별의 힘을 거스르는 대적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잊기 시작하면 정말 그 존재가 이곳에 있었다는 사건은 영원히 사라지는 거겠죠. 그런 의미로 그분들을 기억해주시는 님의 인간미가 느껴져서 저는 이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갑니다(??)
    • 장례식장에 가거나 누군가의 부음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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