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저질 신토호(新東宝)의 세계, 도카이도 요츠야 괴담

싸구려, 저질은 제가 지어낸 말 아닙니다. 막 나가는 신토호의 1950-60년대 영화가 테마인 영화제 주최측이 그랬어요. 전후 정치적 배경, 토호와 신토호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너네들 착각하면 안됨. 신토호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영화랑 다름. 혹시 신토호 영화가 명작이라면 우연히 명작이 된 거임.


하여간, 온 몸이 쑤시는데 일 끝나고 화장 다시 하고 치렁치렁한 목걸이 하고 힐 갈아신고 영화보러 가기 잘했어요. 저는 이 영화에서 꼭꼭꼭 보고 싶었던 장면이 있었어요. 말 그대로 글로 배운 영화라서 (가부키 대본 영어 번역을 수업에서 읽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상상한 장면들이 상상보다 훨씬 저질, B급, 키치더군요 (칭찬입니다). 확실히 제 감성이 B급인지, 정말로 몰입해서 어떤 장면에선 주먹 꼭 쥐고, 어떤 장면에선 입으로만 오물오물 거짓말쟁이! 하지마! 하고 리액션 해가며 봤습니다. 아시아계 반, 비 아시아계 반 정도의 관객 반응도 참으로 좋더군요. 유명한 유비쿼터스 유령 출몰 장면에선 탄식과 감탄과 폭소가 함께 터져나오는 신기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마디만 더하면, 악인 남성 둘 (타미야 이에몬과 나오스케)의 외모는 참으로 제 취향. 오이와-오소데 자매는 하늘하늘한 몸매를 던져가며 연기하는 게 무척 예뻤습니다.


워낙 혼자 볼 계획이었지만 주변 한국인, 미국인, 일본인 지인들한테 같이 가자고 꼬셨다가 실패하고 (줄거리 아는 사람 반응: 무서워서 싫음, 모르는 사람 반응: 그게 뭐임) 혼자 갔는데요. 전 비행기든 극장이든 기차든 옆자리에 혼자온 남성이 앉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근데 오늘은 붙임성 상당히 좋은 남성이 옆에 앉았습니다. "너 무섭다고 막 우는 거 아님?" 이러길래 낯선사람한테 친절한 저는 "안울테니 걱정마" 해줬습니다. 어디사냐고 물어보길래 대답하려고 했더니 영화시작... 뭐 그렇다고요.


영화 끝나고는 밴드 공연이 있었습니다.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면서 조금 봤어요. 엔카를 락 편곡해서;; 연주하는 그 밴드는 그렇게 잘한단 생각은 안들었지만 꽃가지 막 붙여놓고 배경에는 털달린 괴물, 늪에서 삐죽 솟아나온 손 뭐 이런 영화 장면 틀어주면서 공연하는 게 센스 만점이더군요. 결론은, 어 한 주 중간의 스트레스가 확 풀렸습니다.

    • 영화도 보고 쇼도 보고 와인도 주는군요 별일이야 극장이.
    • 붙임성 좋은 그 남성분은 혹여 자기가 무서웠던거 아닐까요? ^^ 그래서 너 무섭지 하며 남한테 떠넘기기 후훗
      락 편곡한 엔카라니, 영화와는 잘 어울렸겠다 싶으면서도 괘, 괜찮을까.. 싶네요. ㅋㅋㅋ
    • 텐더/ 그게 아님 (뉴욕에 오래 살았지만) 남아프리카 출신이래서 자동반사로 Pistarious 재판...하고 얘기를 꺼내서 욱하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음악은 보컬언니의 구성진 목소리랑 연주가 아주 조금 따로 노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밴드 실력때문인지 아니면 공간이 개방되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가영/ 아아 영화제 개막행사입니다. 센스 좋더라고요.
    • 뭔가 이국적 풍경이 묘사되길래 읭 한국이 아니네.. 하고 봤더니 역시나 토끼님[...]
      근데 토호라길래 일본인줄 알았는데 뒤쪽 묘사가 일본도 아니더라구요. (소심한 일본인이 저런 적극적 대화를 걸어올 리 없어! 라는 편견..<-)
    • 이런 영화는 혼자 가서 보는 것이 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변에 50-60년대 일본 영화 광팬이 있지않는한 (사실, 거의 드물지요).
      호오가 갈리거나 취향타는 영화일 수록 그렇죠.
      저도 5월 5일에 미국에서 에반게리온 Q 상영하면 혼자 가서 볼 생각이에요. 우리 회사에서는 제가 에바 오덕인 거, 아무도 모릅니다. 가서 코스프레하는 양덕들과 사진이나 많이 찍으려고 계획중.
      • 정말, 에바와 남성향은 일코의 양대산맥
    • cadenza/ 생각해보면 저도,
      대사: 원통하구나... 왜 아무 죄도 없는 나에게...
      저: 꺅 *_* 이거 너무 좋아! 우하하하 통쾌해!
      이런 모습이 부끄럽지도 않지만 또 남한테 딱히 보여줄 필요도 없단 생각은 들어요.
      문제의 개봉이 5월이군요. 그때까지 두근두근하시겠슴다.

      01410/ 일본인 추정 관객들은 장년층이 많더라고요. 근데 등장인물 외모나 개그센스는 지금 내놓아도 훌륭한 수준! (개인적 평가입니다)
    • 으으 재미있겠어요. 보고 싶다ㅠㅠ



      보고 싶으셨던 장면이 뭔지 궁금해요. 가부키에서 나온 장면인가요?

      전 해학미 넘치는 판소리도 좋지만 변태돋는 가부키도 좋더라구요. 경극도 좋고요.

      한국에서도 했으면 좋겠어요ㅠㅠ
      • 보고 싶었던 장면은요, 머리빗는 장면입니다. 가부키에서 무서워서 실신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그 장면 맞아요.
    • 현실을 글로 배운 것이

      스스로의 체험으로

      현실에 다시 구현될 때 느끼는 쾌감이야말로



      독서에 빠져들게 하는 마약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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