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 입양. 어떤 생명과의 인연이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

1. 한 두달 전인가요. 어느 분의 할머니 집에  들일 강아지 추천 요청 글을 보았습니다.  글쓴 분의  할머니와 가족이 일산에서 큰 동생이 모친을 모시고 있는 저의 상황과 너무

    흡사해서 심각하게 강아지를 들일까 한달동안 고민했더랬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인가 큰 동생하고 통화하다 슬쩍 운을 떼 보았지요. 근데 이 놈이 속말로 필 받았는지 그 주

    토요일  오후에 유기견 센타의 입양자 모집 행사에서 유기견 한마리를 덜렁 업어 왔습니다. 제가 그걸 강력 추천했거든요( 본 듀게글 댓글에서  유기견 추천한다는 조언

    때문에요).

 

2. 데리고 온 강아지 견종은 페키니즈 암놈 2년생입니다. 좀 드문 케이스지 싶은데 중성화 수술까지 완료된 강아지입니다. 오늘로서  6일째 모친 집에 있는 셈이지요. 심장

   사상충이 있는  데 아마 초기 상태지 싶습니다. 유기될 때 상태가 안 좋았는지 병원에서 기백만원어치 치료를 받았다 했습니다(고양시 유관 동물병원).

 

3. 중성화 수술까지 한 암놈이 유기되었다는 것을 저는 그렇게 추론합니다. 주인이 무슨 사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유기되었나 보다라구요. 실제로 모친과 동생의 전언에 의하면

    배변 훈련도 되어 있어서 지가 다 알아서 한다네요. 낯선 사람에 대한 적대감 같은 것도  없고 모친 집에서 하룻밤 자고 나자 바로 배를 보이고 만지는 걸 허용했다는 군요.

 

    일요일날 강아지를 무지 좋아하는 큰 조카(여자애,고3)가 근처 개 카페로 데리고 가서 한 3-4시간 놀다가도 왔어요. 할머니 집에서 헤어지니깐 그 놈이 현관문에서 한동안

    애처롭게  있더라 하더군요. 동생이 가끔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모친 댁에 오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합니다. 인터넷에서 본 바로는 견종이 좀 자기 중심적이고 까칠하다 하던데

    저는 이 강아지가 사람과의 관계 형성이 기본적으로 잘 된 놈이라 생각합니다.

 

4.  모친께선 지금 한참 갈등 중입니다. 당신 몸이 그닥 좋지 못하시고 좀 예민한 성격이기도 하고 깔끔한 스타일이라서 "조놈 참 신통하네. 별로 귀찮게도 안하고" 하시면서도

     혼자 지내시다 좋던 나쁘던 신경쓰이는 놈이 들어 온 이 상황이 조금 힘드신가 봅니다.  통화하면  힘들다 하소연 하시거나 짜증도 내십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미리

     말씀을 드려 놓았어요 " 2주만 한번 키워 보세요. 정 안되면 내가 데리고 갑니다. 한 생명이 이렇게 온 것도 다 인연인데 할매나 내가 키우게 되면 죽을 목숨하나 건진

     거잔수?"라구요.

 

     사실 처음부터 안되면 제가 키울 생각이었어요. 집사람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했더니 " 내는 몬 키운다. 당신이 키우면 그거야 어쩔 수 없지만" 이라는 정도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5.  고민이 좀 됩니다. 생명을 들인다는 게 또 다른 의미로요. 사실 아주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 본 기억이 있어요. 국민학교 2년 쯤에 죽은 강아지를 신문지에 싸서

     어느 빈 공터에서 묻고 어둑어둑해질때까지 정말 정말 목놓아서 울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처음 겪은 죽음은 무섭다기 보다 너무 너무 서러웠어요.

 

     제대하고선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다 너무 외로워서 였는지 근처 시장에서 우연히 파는 고양이 한마리를 들여서 한 6개월 있다가 저 세상에 보낸 상처도 있어요. 그 놈

     학교 뒤 공터에 묻고 소주 2병 병나발 불고는 그 빈병 묘비석 삼아 꽂아두고 내려왔어요.  어려서인지 덩치가 너무  작아서 그냥 "반"이라고 이름 붙였었는데 온놈이 되는 걸

     못보았네요. 그놈은 저에게 "고양이를 위한 조곡" 기타 한곡을 남기고 갔어요.

 

6.  어떻게든 해야 겠지요. 모친께서 키우든 제가 키우게 되던 간에 이 인연은 한 생명과 더불어 사는 또 다른 이야기일테니깐요. 바라건데 이 강아지가 그의 삶을 행복하고

     이기적으로 보냈으면 합니다.  듀게에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어떻든 최선을 다해서 저 생명과 함께 하겠다는 제 다짐이기도 합니다.

 

 

    

 

 

 

 

 

   

    • 그 다짐 마음을 다해 응원합니다. '행복하고 이기적으로'가 마음에 와닿네요. 종종 강아지 이야기 들려주세요:-)
    • 가끔 부모님이 키우는 강아지(구 유기견)이 저희 집에 와서 제 냥이와 뽈뽈거리면서 노는 모습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듭니다.
      너는 어쩌다가 버림받아서 험한 몸으로 여기저기 센터를 전전하다가 우리에게 왔을까.. 우리 가족이 보지 못하는 동안 얼마나 아픈일을 격었을까..
      워낙에 천성이 밝고 해맑은 아이라서 붙임성도 좋은데, 그 작은 몸을 의탁할 곳 하나 없었을까.. 그런저런 생각들을 합니다.
      이제 가족이 되었으니 아이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함께 합시다요. 무도님도 저도 저희 부모님도 말이지요.
    • 뭔가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읽었는데 다 읽고나니 어느 방향으로든 그 패키니즈는 행복한 여생을 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아름다운 다짐 잘 읽었습니다. 저도 키우던 개들을 떠나보낸 슬픔을 가지고 있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강아지도 어머님도, 무도님도 다 같이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 저도 응원합니다! 아직 6일 되셨으니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지켜봐주심이...
      저도 제가 강력하게 원해서 강아지를 데리고 왔는데... 서로 적응하는데 1달 이상 걸렸어요ㅠㅠ
      완전히 가족이 되었다는 느낌은 6개월 정도.... 지나서야 비로소..^^
    • 댓글 달아 주신 분 모두 고맙습니다^^ 열심히 해볼께요.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6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0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7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4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8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8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7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3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