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44》의 한 대목
“주민들은 모두 아나톨리를 좋아했어요. 좋은 사람이었어요.”
“브로츠키는 스파이야. 그런데 그런 놈을 좋은 사람이라고 한단 말이야? 반역이 미덕인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지나는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내 말은 그 사람이 시끄럽게 하지 않으려고 아주 조심했다는 뜻이에요. 아주 공손했죠.”
그녀는 더듬더듬 그런 특징을 주절거렸지만 지금 상황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말이었다. 레오는 듣는 둥 마는 둥했다. 그는 종이철을 하나 꺼내어 그녀가 실수로 내뱉은 말을 일부러 커다랗게 썼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어요.
레오는 그녀가 그 글씨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지금 쓰인 문장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삶에서 15년이란 시간이 지워질 수 있었다. 이적 행위자로 고발한들 그녀는 항변조차 못할 것이다. 정치범으로 장기형을
선고받고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히면, 오십대의 그녀가 그곳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러나 레오는 그런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이 정도는 기본적인 상식이었던 것이다.
(중략)
그녀는 죄책감에 목이 메는 것 같았다. 밖으로 드러난 감정을 보이는 대로 받아들일 순 없지만 레오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그간의 신뢰를 배반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레오는 그녀를 유죄로 만들 수 있는 페이지를
노트에서 찢어서 건넸다. 그녀는 배신에 대한 대가로 그 종이를 받았다. 그녀의 눈에 서린 경멸 어린 표정을 보았지만 더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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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 차일드 44를 표절했다고 단정짓기는 어려운 거 같습니다. 그러나 차일드 44의 이런 배경들은 무대를 북한으로 옮겨도 별 위화감은 없어 보이네요.